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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차크 칸국 (금장 칸국)

13세기 ~ 16세기수도: 사라이(Sarai)

역사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가 러시아와 동유럽을 휩쓴 뒤, 볼가강 - 볼가강은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러시아 서부를 가로질러 카스피해로 흘러갑니다. 몽골의 침공 당시 이 강은 군대 이동과 물자 수송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원정을 이끈 바투 칸은 볼가강 하류에 킵차크 칸국의 수도인 사라이를 세웠습니다.러시아 문화에서 볼가강은 생명과 힘의 원천으로서 '어머니 볼가'(볼가 마투슈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많은 민요와 전설의 무대가 되었고, 슬라브 신화 속 전설적인 거인 영웅인 볼가 부슬라예비치와 얽힌 이야기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류에 자리를 잡고 세운 거대한 유목 국가입니다. 서양에서는 칸의 천막이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해서 '황금 군단(금장 칸국)'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타타르의 멍에

킵차크 - 킵차크 초원(데슈트 이 킵차크)은 서쪽의 다뉴브 강 북쪽에서부터 동쪽의 알타이 산맥 인근까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대초원입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걸쳐 있으며, 오랫동안 쿠만족과 킵차크족 같은 유목 민족들의 무대였습니다. 초원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옛이야기에 따르면, 이 거대한 풀의 바다에는 바람을 타고 달리는 보이지 않는 정령의 말들이 살고 있어서, 조용한 밤이면 수만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린다고 합니다. 훗날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가 유럽 원정을 마치고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비옥한 풀밭과 끝없는 평원은 말을 키우고 이동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여, 수백 년 동안 강력한 유목 제국의 심장부 역할을 했습니다. 칸국의 몽골 기병대(루스인들은 이들을 타타르라 불렀습니다)는 얼어붙은 강을 말을 타고 건너며 루스 공국들을 차례로 무너뜨렸습니다. 몽골 제국 중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유목 생활을 유지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습니다.

이들은 수도 사라이 - 사라이는 13세기 중반 바투 칸이 볼가강 하류에 건설한 킵차크 칸국(금장칸국)의 수도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대한 무역 도시로 번창했으며,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과 궁전, 공중목욕탕을 갖춘 부유한 도시였습니다.전설에 따르면, 칸의 위세를 뽐내기 위해 실물 크기의 순금 말 두 마리가 사라이 성문 앞을 지키고 있었으나, 제국이 멸망할 때 감쪽같이 사라져 지금도 볼가강 인근 평원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전해집니다.를 중심으로 루스 공국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두며 약 250년 동안 군림했는데, 러시아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타타르의 멍에'라고 부릅니다.

종이 한 장으로 다스리기

칸은 루스의 땅을 직접 다스리는 대신, 공들에게 '야를릭'이라는 허가장을 주어 대신 다스리게 했습니다. 세금을 잘 거두어 오는 공에게 야를릭을 주었기 때문에, 루스의 공들은 서로 칸의 눈에 들려고 다투었습니다. 이 경쟁 속에서 세금을 걷는 일을 맡은 모스크바가 조금씩 힘을 키웠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인 초원

바투의 동생 베르케는 몽골 지배자 가운데 처음으로 이슬람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 뒤 사라이에는 이슬람 상인과 학자가 모여들었고, 칸국은 같은 몽골인 일 칸국 - 훌라구가 페르시아와 중동에 세운 몽골 칸국으로, 이름부터 대칸에게 복종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이 아니라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볼가강을 오르내리는 배와 카라반이 모피, 소금, 곡식을 실어 나르며 나라를 살찌웠습니다.

멍에가 풀리기까지

1380년 쿨리코보 싸움에서 모스크바가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1480년 우그라강에서 두 군대가 마주 선 채 물러나면서 지배는 사실상 끝났습니다. 칸국은 카잔, 아스트라한, 크림 같은 여러 칸국으로 갈라졌고, 그 가운데 크림 칸국은 18세기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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