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모스크바 대공국은 13세기 후반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작은 분국으로 시작하여, 점차 루스 전역을 통합하고 거대한 러시아 국가의 기틀을 마련한 나라입니다. 모스크바강이 지나는 유리한 지리적 위치 덕분에 무역로가 교차하며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유리 돌고루키와 모스크바의 창건 전설
전설에 따르면 12세기 중반 수즈달의 공 유리 돌고루키는 숲속 언덕에서 신비로운 세 머리 짐승이 나타나는 환상을 보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져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1147년 보로비츠키 언덕에 나무로 요새(초기 크렘린)를 짓고 동맹자들을 초대했는데, 이것이 모스크바라는 이름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돈자루' 이반과 세금 징수관의 지혜
13세기 몽골의 침략 이후 킵차크 - 킵차크 초원(데슈트 이 킵차크)은 서쪽의 다뉴브 강 북쪽에서부터 동쪽의 알타이 산맥 인근까지 끝없이 펼쳐진 거대한 대초원입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러시아 남부, 그리고 카자흐스탄에 걸쳐 있으며, 오랫동안 쿠만족과 킵차크족 같은 유목 민족들의 무대였습니다. 초원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옛이야기에 따르면, 이 거대한 풀의 바다에는 바람을 타고 달리는 보이지 않는 정령의 말들이 살고 있어서, 조용한 밤이면 수만 마리의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린다고 합니다. 훗날 칭기즈 칸의 손자 바투가 유럽 원정을 마치고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비옥한 풀밭과 끝없는 평원은 말을 키우고 이동하기에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여, 수백 년 동안 강력한 유목 제국의 심장부 역할을 했습니다. 칸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모스크바의 군주 이반 1세(이반 칼리타, '돈자루'라는 뜻)는 칸에게 충성을 바치며 루스 공국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바치는 전권을 얻어냈습니다. 그는 세금을 걷으며 축적한 막대한 재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주변 영지를 사들였으며, 몽골의 약탈을 피해 평화를 유지하면서 모스크바를 루스 땅 - 루스 지역 또는 루스 땅은 중세 시대 동슬라브족이 터를 잡고 살아가던 역사적인 동유럽의 넓은 영토를 뜻합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 서부 지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끝없이 넓은 평원과 울창한 숲, 그리고 남북을 가르는 거대한 강들이 많아 일찍부터 무역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루스라는 이름에는 신비로운 건국 전설이 깃들어 있습니다. 옛 슬라브 부족들이 매일 싸움을 벌이자, 이들은 싸움을 말리고 법을 세워줄 현명한 지도자를 찾아 바다 건너 북유럽의 바이킹 부족인 류리크 형제들을 초대했습니다. 이때 지도자로 온 이들이 속한 부족 이름이 바로 '루스'였고, 이들이 다스리는 땅을 '루스의 땅'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또 다른 전설에는 레흐(폴란드의 조상), 체흐(체코의 조상), 루스 삼 형제가 있었는데, 그중 맏형인 루스가 동쪽으로 걸어가 개척한 땅이 바로 루스 땅이 되었다는 민담도 전해집니다. 이 지역은 키예프 루스라는 거대한 연합 국가로 발전하여 번영했지만, 왕공들이 힘을 합치지 않고 분열되면서 쇠퇴했습니다. 결국 1223년 칼카강 전투에서 침공해 온 몽골군에게 대패하면서 몽골 제국의 기나긴 지배를 받게 되는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중심지로 키워냈습니다.
쿨리코보 - 쿨리코보는 러시아 툴라주 남동부의 돈강과 네프랴드바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역사적인 들판입니다. 1380년 모스크바의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이끄는 루스 연합군이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 군대를 격파한 '쿨리코보 전투'가 벌어진 장소로,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성지 중 하나입니다. 이 들판에는 가슴을 울리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결전 직전, 성 세르기우스 수도사의 축복을 받은 러시아의 수도사 용사 알렉산드르 페레스베트와 타타르 최고의 거인 전사 첼루베이가 양군 진영 사이에서 창을 들고 1대1 결투를 벌였습니다. 두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려와 서로의 심장에 창을 꽂았고 첼루베이는 말에서 굴러떨어졌으나, 페레스베트는 숨을 거두면서도 말안장에 꼿꼿이 앉은 채 아군 진영으로 돌아와 승리의 길조를 알렸다고 합니다. 또한 붉은 참나무 숲에 숨어 있던 예비 기병대가 바람을 타고 적의 측면을 덮쳐 전세를 뒤집은 일화는 '참나무 숲의 기적'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 이곳에는 거대한 기념비와 국립 군사 역사 박물관이 세워져 있습니다.의 승리와 타타르 멍에 - '타타르의 멍에'는 1237년 바투의 몽골 침공으로 키예프 루스가 무너진 때부터 1480년 우그라강 대치로 모스크바가 독립할 때까지, 약 240년 동안 루스의 여러 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가혹한 지배와 조공을 받던 시기를 가리키는 역사적 표현입니다. '멍에'란 소나 말의 목에 씌워 무거운 쟁기를 끌게 하는 나무 굴레를 뜻하는 말로, 러시아인들이 겪었던 혹독한 억압과 고통을 비유한 것입니다. 몽골은 루스 땅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공들에게 '야를릭(통치 허가증)'을 내려 세금을 걷어 바치게 했습니다. 세금을 바치지 않거나 반항하면 가차 없이 군대를 보내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노예로 끌고 갔습니다. 이 긴 멍에의 세월 동안 러시아는 서유럽의 르네상스와 단절되는 큰 아픔을 겪었지만, 역설적으로 칸을 대신해 세금을 걷던 모스크바가 힘을 키워 1480년 마침내 이 무거운 멍에를 끊어내고 강력한 통일 국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의 종결
1380년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쿨리코보 전투에서 칸국의 군대를 물리치며 루스 민족이 힘을 합치면 몽골에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이어 1480년 대공 이반 3세(이반 대제)는 우그라강 - 우그라강은 러시아 서부 스몰렌스크주와 칼루가주를 흐르는 오카강의 왼쪽 지류로, 울창한 숲과 구불구불한 물길이 아름다운 길이 약 399km의 강입니다. 역사적으로 1480년 모스크바 군대와 몽골 대칸국의 군대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섰던 '우그라강 대치'의 무대로 매우 유명합니다. 당시 러시아인들은 적의 침략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켜준 이 강을 성모 마리아의 가호가 깃든 강이라 하여 '성모의 허리띠'라는 신성한 별칭으로 불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모스크바 군대가 우그라강의 모든 여울목에 대포와 총통을 배치해 철통같이 방어하자, 몽골군은 강을 건너지 못하고 겨울 추위 속에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큰 유혈 충돌 없이 끝난 이 대치를 통해 모스크바 대공국은 240년 동안 이어졌던 몽골의 가혹한 지배('타타르의 멍에')를 마침내 완전히 끝내고 완전한 독립 국가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대치에서 대칸국의 군대를 피 흘리지 않고 물리치며 마침내 240년에 걸친 '타타르 - 타타르는 원래 몽골 고원 북동부에 살던 유목 부족의 이름이었으나, 13세기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 이후 유럽과 러시아에서는 몽골군과 킵차크 칸국의 유목민들을 통틀어 '타타르'라고 불렀습니다. 중세 유럽인들은 이들이 번개처럼 몰아닥쳐 무시무시한 기마술을 펼치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가장 깊은 지옥인 '타르타로스'에서 기어 나온 악마 같은 군대라 여겨 '타르타르(Tartars)'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킵차크 칸국의 몽골 지배층은 현지의 투르크계 유목민들과 융합하고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15세기 칸국이 분열된 뒤 카잔, 크림, 아스트라한 칸국 등을 세웠으며, 오늘날에도 러시아의 타타르스탄 공화국과 크림반도 등에 살아가며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켜오고 있습니다.의 멍에'를 완전히 끝냈습니다. 이반 3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공주 소피아 팔레올로기나와 결혼하여 쌍두독수리 문장을 받아들이고,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로서 정교회의 수호자가 되었음을 선언했습니다. 이후 1547년 이반 4세(이반 뇌제)가 차르로 즉위하면서 모스크바 대공국은 러시아 차르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