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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무르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

티무르 제국 1336년 ~ 1405년 (나이: 69세)
"하늘에 신이 오직 한 분이듯, 땅 위에도 군주는 오직 한 사람이어야 한다."
— 세계를 호령하는 단일 대제국 건설의 야망을 밝히며

생애

티무르(1336년 ~ 1405년)는 14세기 후반 몽골 제국 붕괴 이후 분열된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델리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정복자이자 티무르 제국의 창건자입니다.

탄생과 소년 시절, 별칭의 유래

티무르는 1336년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남쪽의 샤흐리사브즈(케시) 부근에서 튀르크화된 몽골계 바를라스 부족의 유력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티무르'라는 이름은 튀르크-몽골어로 '철(쇠)'을 의미합니다. 당시 중앙아시아는 몽골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차가타이 칸국이 내분으로 분열되던 혼란기였습니다. 청년 시절 부족 간의 세력 다툼과 전투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에 깊은 화살 부상을 입어 평생 절뚝거리게 되었는데, 페르시아어로 '절름발이 티무르'를 뜻하는 '티무르 랑(Timur-i Lang)'이라는 별칭이 유럽에 전해져 '타메를란(Tamerlane)'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권력 장악과 구르간(사위) 칭호

탁월한 무용과 치밀한 지략을 지녔던 티무르는 동차가타이 칸국의 투글루크 티무르, 그리고 처남이자 라이벌이었던 아미르 후사인과 동맹과 대립을 거듭하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마침내 1370년 발흐 공방전에서 후사인을 꺾고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아 서차가타이 지역의 최고 권력자로 우뚝 섰습니다. 티무르는 자신이 칭기즈 칸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기에 '칸'을 자칭하지 않고, 칭기즈 칸 가문의 왕족을 명목상의 허수아비 칸으로 세운 뒤 자신은 '아미르(총사령관)'로 통치했습니다. 또한 칭기즈 칸 가문의 공주와 혼인하여 '사위'를 뜻하는 '구르간(Gurgan)'을 칭호로 쓰며 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했습니다.

페르시아 통일과 북방 초원 원정

1380년대부터 본격화된 '3년 원정'과 '5년 원정'을 통해 티무르는 일칸국 붕괴 후 갈라져 있던 호라산과 페르시아 전역의 제후국들을 차례로 무릎 꿇렸습니다. 한편 자신이 킵차크 칸국의 칸으로 옹립해 주었으나 배반하고 영토를 침범한 톡타미시를 응징하기 위해 북방 초원으로 대원정을 감행했습니다. 1391년 쿤두르차강 전투와 1395년 테레크강 전투에서 티무르는 치밀한 전술로 톡타미시의 대군을 연달아 격파했습니다. 이어 킵차크 칸국의 수도 사라이와 주요 무역 도시들을 철저히 파괴하여 볼가강 무역로를 붕괴시켰고, 이는 훗날 러시아가 몽골의 '타타르의 멍에'에서 벗어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도 델리 원정과 서아시아 제패

1398년 티무르는 험준한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 델리 술탄국으로 진격했습니다. 델리 군대가 내세운 120마리의 무장 전투 코끼리 부대에 맞서, 티무르는 낙타 등 위에 마른 짚을 얹고 불을 붙여 돌진시키는 기상천외한 화공 전술로 코끼리들을 공황에 빠뜨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서아시아로 회군한 그는 맘루크 술탄국의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를 점령했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성벽에서 내려온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 이븐 할둔과 만나 유목민의 연대성(아사비야)과 제국의 흥망성쇠를 논하기도 했습니다. 1401년에는 반란을 일으킨 바그다드를 재함락하여 서아시아 전역의 패권을 확립했습니다.

1402년 앙카라 전투와 오스만 제국 궤멸

1402년 티무르는 앙카라 평원에서 당대 오스만 제국의 술탄 바예지트 1세와 세기의 결전을 벌였습니다. 기동력을 발휘해 식수원을 차단하고 적진의 타타르 용병들을 회유한 티무르는 정예 기병과 전투 코끼리로 오스만군을 완파하고 술탄을 생포했습니다. 이 승리로 오스만 제국은 십수 년간의 내전에 빠졌고, 오스만의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가 50년가량 늦춰지면서 비잔티움 제국의 학자와 고문서들이 서유럽으로 유입되어 르네상스를 가속하는 역사적 결과를 낳았습니다. 델리에서 아나톨리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한 티무르는 유라시아 스텝 군사력으로 세계를 뒤흔든 '마지막 유목 대정복자'였습니다.

티무르 르네상스와 사마르칸트의 건축

티무르는 전장에서는 저항하는 적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무자비한 군주였으나, 내정에서는 학문과 예술, 건축을 열정적으로 후원한 교양인이었습니다. 정복지 곳곳에서 최고의 건축가, 석공, 도예공, 천문학자, 문인들을 사마르칸트로 데려와 도시 전체를 화려한 푸른빛 타일의 궁전과 사원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웅장한 비비하눔 모스크와 왕실 영묘 구르 아미르를 세웠고, 체스의 일종인 '샤트란지'의 고수였으며 문학 발전을 장려하여 눈부신 '티무르 르네상스'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마지막 원정과 오트라르에서의 서거, 무덤의 전설

1404년 말 68세의 티무르는 마지막 정복 목표였던 명나라 원정에 나섰으나, 1405년 2월 매서운 겨울 혹한 속에 시르다리야강가의 오트라르에서 병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유해는 사마르칸트의 구르 아미르 영묘에 안치되었습니다. 1941년 6월 소련의 인류학자들이 그의 무덤을 발굴했을 때 관 덮개에 '누구든 내 무덤을 어지럽히는 자는 나보다 더 끔찍한 침략자를 볼 것이다'라는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는데, 관을 연 지 불과 이틀 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는 신비로운 일화가 오늘날까지 널리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