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원나라 (대원)

13세기 ~ 14세기수도: 대도(Dadu)

역사

쿠빌라이 칸이 세운 거대한 몽골-중국 제국입니다. 몽골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대칸 - 카간(대칸)은 투르크어와 몽골어에서 황제에 해당하는 최고 통치자의 칭호로, '칸들의 칸'(왕 중의 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칭기즈 칸이 유목 부족들을 통합한 후 몽골 제국의 최고 군주를 가리키는 공식 직함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몽골 전설에 따르면 대칸은 푸른 하늘의 신인 '텡그리'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 '영원한 푸른 하늘'의 권위를 받아 지상을 다스린다고 여겨졌습니다.'의 나라로, 국호를 주역에서 따온 '대원(大元)'으로 정했습니다. 나라 이름을 몽골식이 아니라 중국 고전에서 가져왔다는 점부터가, 이 나라가 어떤 길을 걸을지 보여 주는 신호였습니다.

중원을 지배한 푸른 늑대

전설에 따르면 몽골족의 시조는 하늘이 보낸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후손인 원나라는 유목 민족의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남송을 무너뜨리고 중국 전역을 통일했습니다.

대도 - 대도는 쿠빌라이 칸이 1267년부터 지은 원의 수도로, 지금의 베이징 자리에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칸의 도시'라는 뜻으로 칸발리크라고 불렀습니다.바둑판처럼 반듯한 길과 네모난 성벽을 갖춘 계획도시였고, 대운하를 도시까지 끌어들여 남쪽의 곡식을 배로 실어 올 수 있게 했습니다. 초원의 지배자가 중국식 수도를 세운 셈입니다.마르코 폴로가 다녀갔다고 전하는 도시가 바로 이곳입니다. 1368년 명군이 다가오자 원의 마지막 황제는 이 도시를 버리고 초원으로 떠났고, 명은 이름을 북평으로 바꾸었다가 뒷날 다시 베이징이라 했습니다.와 역참

쿠빌라이는 초원의 카라코룸 - 카라코룸은 1235년 오고타이 칸이 오르혼강 가에 세운 몽골 제국의 수도입니다. 지금의 몽골 하르호린 부근에 있었습니다.초원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도시를 먹여 살릴 곡식을 남쪽 농경지에서 실어 와야 했습니다. 이 약점 때문에 1261년 쿠빌라이가 보급로를 막자 성을 지키던 아릭 부케는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습니다.세계 곳곳에서 사람이 모여든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잡혀 온 금세공사 기욤 부셰가 은으로 만든 커다란 나무를 궁궐에 세웠는데, 나무의 관에서 포도주와 마유주가 흘러나왔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폐허만 남았고 그 돌로 지은 에르덴 조 사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대신 지금의 베이징 자리에 새 수도 대도를 지었습니다. 곡식이 많이 나는 남쪽과 가까워 사람을 먹이기 쉬웠고, 중국을 다스리기에도 알맞은 자리였습니다. 대도는 마르코 폴로가 감탄했을 만큼 화려했고, 세계 각지에서 상인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제국을 하나로 묶은 것은 역참이었습니다. 하루 거리마다 말과 먹을거리를 갖춘 역을 두어, 통행패를 가진 사람은 어디서든 말을 갈아타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소식과 물건, 그리고 여행자들이 오갔습니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

원나라는 몽골인, 서역에서 온 색목인, 옛 금나라 땅의 한인, 옛 남송 땅의 남인으로 사람을 나누어 벼슬과 세금을 다르게 매겼습니다. 소수의 몽골인이 훨씬 많은 사람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아래에 놓인 사람들의 불만이 쌓이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종이돈인 교초를 널리 쓰고 티베트 불교를 받들며, 서역의 천문학자와 기술자를 불러들이는 열린 면도 있었습니다.

초원으로 돌아간 뒤

14세기 중반 홍수와 흉년, 무거운 세금이 겹치며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1368년 원은 대도를 내주고 초원으로 물러났습니다. 그 뒤로도 몽골 고원에서 나라를 이어 갔는데, 이 시기를 북원이라고 부릅니다.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