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티무르 제국

14세기 ~ 16세기수도: 1400년 사마르칸트(Samarkand) / 1470년 헤라트(Herat)

역사

14세기 후반 튀르크-몽골계 군사 지도자 티무르가 세운 거대한 유목·정착 융합 제국입니다. 칭기즈 칸의 후예를 자처한 티무르는 중앙아시아의 트란스옥시아나 -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땅입니다. 마와라안나흐르는 아랍어로 '강 너머의 땅'이라는 뜻이고, 그리스·로마식 이름인 트란스옥시아나도 같은 뜻입니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남부 일대에 해당합니다.두 강에서 끌어온 물 덕분에 사막 한가운데에 사마르칸트, 부하라 같은 오아시스 도시가 자랐고, 이 도시들은 비단길의 중간 기착지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도시의 세금과 상인의 이익이 워낙 컸기 때문에, 몽골 제국이 갈라진 뒤에는 여러 칸국이 이 땅을 서로 차지하려 다투었습니다. 1269년 탈라스 쿠릴타이도 결국 이곳의 목초지와 세금을 어떻게 나눌지를 정한 회의였습니다.사마르칸트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합니다. 이 도시를 처음 세운 이가 페르시아 서사시에 나오는 투란의 왕 아프라시압이라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사마르칸트의 옛 도시 터에는 지금도 아프라시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서아시아 일대에서 번영한 역사적인 지역이자 위대한 문명의 이름입니다. 오늘날의 이란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아우르며,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부터 사산 왕조, 일 칸국, 사파비 왕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제국이 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자그로스 산맥과 거대한 사막, 비옥한 오아시스가 어우러진 지형 속에서 독창적인 건축과 정원(낙원을 뜻하는 '파라다이스'의 어원), 화려한 양탄자(페르시아 카펫)와 세밀화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신비한 새 시무르그의 깃털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샤나메(왕들의 책)'에는 산꼭대기에 사는 지혜롭고 거대한 영조(신령한 새) 시무르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무르그는 태어날 때부터 온몸이 백발이어서 산에 버려진 아기 '잘(로스탐의 아버지)'을 둥지로 데려가 지혜와 힘으로 키워 냈습니다. 잘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때, 시무르그는 자신의 깃털 하나를 주며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이 깃털을 태우면 구름처럼 날아와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뒷날 거구의 아기 로스탐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위험에 빠지자, 잘은 깃털을 태워 시무르그를 불렀고 그 지혜 덕분에 로스탐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영웅 로스탐의 일곱 가지 모험어른이 된 로스탐은 천하무적의 괴력을 지닌 영웅이 되어, 충직하고 날쌘 명마 '라흐슈'와 함께 페르시아를 지켰습니다. 마왕에게 사로잡힌 페르시아의 왕과 군대를 구하기 위해 나선 로스탐은 무시무시한 일곱 가지 시험(하프트 칸)을 거쳤습니다. 자는 동안 덤벼든 사나운 사자를 물리치고, 타는 듯한 사막의 갈증을 이겨 냈으며, 거대한 용과 사악한 마녀, 괴물 디브(악마)를 차례로 꺾었습니다. 마침내 가장 깊은 동굴에 살던 무시무시한 '백마귀'를 쓰러뜨리고 왕을 구출하며 페르시아의 가장 위대한 수호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캅카스, 메소포타미아, 북인도(델리), 아나톨리아까지 정복하며 유라시아의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푸른 보석 사마르칸트 -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입니다.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정복된 후, 이슬람 학문과 상업의 주요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와 티무르 르네상스

티무르는 정복지의 뛰어난 건축가, 장인, 학자들을 수도 사마르칸트로 데려와 화려한 푸른빛 돔과 모스크, 궁전을 세웠습니다. 거대한 비비하눔 모스크와 레기스탄 광장, 구르 아미르 묘당은 오늘날까지도 그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이 시기 페르시아의 문학, 세밀화 예술, 천문학, 수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티무르 르네상스'라 불리는 문화적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별을 보던 군주 울루그 베그

티무르의 손자 울루그 베그는 정복자 대신 학자의 길을 걸은 군주였습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거대한 천문대를 짓고 거대한 육분의를 사용해 1,000개가 넘는 별의 위치를 정밀하게 측정한 성도(천문표)를 완성했습니다. 그의 천문표는 훗날 유럽 학계에도 전해져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황제의 사위 '구르간'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직계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칸의 칭호를 쓰지 못하고 '아미르(사령관)'로 남았습니다. 대신 칭기즈 칸 가문의 공주와 혼인하여 '황실의 사위'를 뜻하는 '구르간(Gurkan)'이라는 존칭을 자신의 권위로 삼았고, 명목상의 칭기즈 칸 가문 칸을 형식적으로 옹립해 정통성을 내세웠습니다.

구르 아미르의 저주

티무르가 잠든 사마르칸트의 구르 아미르 묘비에는 '내가 무덤에서 일어나면 세상이 떨릴 것이다', '무덤을 어지럽히는 자는 나보다 무서운 침략자를 맞이하리라'는 경고가 새겨져 있다고 전합니다. 1941년 6월 소련의 인류학자들이 그의 유골을 발굴하기 위해 관을 연 지 불과 사흘 만에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바르바로사 작전)하면서, 이 경고는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