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케는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바투의 동생으로, 형이 죽은 뒤 킵차크 칸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오가다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는데, 몽골 지배자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개인의 신앙에 그치지 않고 칸국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이슬람 상인과 학자들이 사라이로 모여들었고, 칸국은 이슬람 세계와 가까워졌습니다.
1258년 사촌 훌라구가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이슬람 세계의 지도자인 칼리프를 처형하자 베르케는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는 같은 몽골 사람인 훌라구를 상대로, 이집트의 맘루크 술탄국과 손을 잡았습니다. 몽골 왕족이 몽골 왕족을 치기 위해 바깥 세력과 동맹한 첫 사례였습니다.
그가 다스린 킵차크 칸국은 볼가강을 오르내리는 뱃길과 초원의 카라반 길을 함께 쥐고 있었습니다. 수도 사라이에는 모피와 소금, 곡식이 모였고, 이집트의 맘루크와 맺은 동맹은 신앙 때문만이 아니라 이 무역과도 이어져 있었습니다. 맘루크는 초원의 젊은이들을 병사로 데려가야 했고, 그 길목을 쥔 것이 바로 베르케였기 때문입니다.
1262년부터 두 사람은 캅카스에서 맞붙었습니다. 1263년 1월 테렉강에서 그의 군대는 훌라구를 크게 꺾었는데, 얼어붙은 강을 건너 물러나던 적군의 발밑에서 얼음이 깨져 많은 병사가 물에 빠졌다고 전합니다. 베르케는 1266년 다시 일 칸국을 치러 나섰다가 티플리스로 가는 길 위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조카의 손자인 뭉케 테무르가 뒤를 이었습니다. 몽골 왕족이 신앙을 따라 갈라선 이 싸움의 자국은 그 뒤로도 오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