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의 몫으로 주어진 영지에서 시작된 칸국으로, 중앙아시아의 초원과 오아시스 도시들을 지배했습니다.
초원의 법도
전설에 따르면 차가타이는 몽골의 전통 법전인 '야사'를 가장 엄격하게 지키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흐르는 물에 함부로 손을 씻지 못하게 한 조항까지 그대로 지키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할 만큼, 형제들 사이에서도 법을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차가타이 칸국 역시 오랫동안 유목 민족 고유의 거칠고 자유로운 생활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초원과 도시를 함께 가진 나라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 - 실크로드(비단길)는 아주 먼 옛날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길고 긴 무역로(물건을 사고파는 길)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아주 비싸고 예쁜 '비단'이 서양으로 많이 전해졌기 때문에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과 산을 넘으며 향신료나 보석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의 종교나 새로운 기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았습니다. 훗날 당나라나 몽골 제국 같은 거대한 나라들은 이 길을 안전하게 지키고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와 힘을 얻었답니다.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서쪽에는 사마르칸트 -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자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입니다. 712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에 의해 정복된 후, 이슬람 학문과 상업의 주요 중심지로 번영했습니다.와 부하라 -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로, 실크로드의 무역, 학문,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709년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의 정복을 통해 우마이야 칼리프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같은 마와라안나흐르 -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에 있는 중앙아시아의 땅입니다. 마와라안나흐르는 아랍어로 '강 너머의 땅'이라는 뜻이고, 그리스·로마식 이름인 트란스옥시아나도 같은 뜻입니다. 지금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남부 일대에 해당합니다.두 강에서 끌어온 물 덕분에 사막 한가운데에 사마르칸트, 부하라 같은 오아시스 도시가 자랐고, 이 도시들은 비단길의 중간 기착지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도시의 세금과 상인의 이익이 워낙 컸기 때문에, 몽골 제국이 갈라진 뒤에는 여러 칸국이 이 땅을 서로 차지하려 다투었습니다. 1269년 탈라스 쿠릴타이도 결국 이곳의 목초지와 세금을 어떻게 나눌지를 정한 회의였습니다.사마르칸트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합니다. 이 도시를 처음 세운 이가 페르시아 서사시에 나오는 투란의 왕 아프라시압이라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사마르칸트의 옛 도시 터에는 지금도 아프라시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의 오아시스 도시가, 동쪽에는 알말리크를 비롯한 초원의 목초지가 있었습니다. 도시의 세금은 탐났지만 유목 생활은 버리기 싫은 이 어정쩡한 자리가, 훗날 나라가 갈라지는 이유가 됩니다.
이웃에게 끌려다닌 시절
몽골 제국이 갈라진 뒤 차가타이 칸국은 이웃의 힘에 자주 휘둘렸습니다. 1269년 탈라스 쿠릴타이에서 카이두와 땅과 세금을 나누기로 했지만, 이듬해 바락이 서쪽 일 칸국 - 훌라구가 페르시아와 중동에 세운 몽골 칸국으로, 이름부터 대칸에게 복종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을 치다가 크게 지고 죽으면서 칸국은 오랫동안 카이두의 영향 아래 놓였습니다.
둘로 갈라지다
14세기 중반, 오아시스 도시에 정착하려는 서쪽과 초원에 남으려는 동쪽이 끝내 갈라섰습니다. 동쪽은 모굴리스탄이라 불렸고, 서쪽에서는 차가타이 가문의 칸을 앞세운 티무르가 힘을 잡아 새로운 제국을 세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