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칸국 - 훌라구가 페르시아와 중동에 세운 몽골 칸국으로, 이름부터 대칸에게 복종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은 훌라구가 페르시아 -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서아시아 일대에서 번영한 역사적인 지역이자 위대한 문명의 이름입니다. 오늘날의 이란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아우르며,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부터 사산 왕조, 일 칸국, 사파비 왕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제국이 이 땅에서 일어났습니다.자그로스 산맥과 거대한 사막, 비옥한 오아시스가 어우러진 지형 속에서 독창적인 건축과 정원(낙원을 뜻하는 '파라다이스'의 어원), 화려한 양탄자(페르시아 카펫)와 세밀화 문화가 꽃을 피웠습니다.신비한 새 시무르그의 깃털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샤나메(왕들의 책)'에는 산꼭대기에 사는 지혜롭고 거대한 영조(신령한 새) 시무르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시무르그는 태어날 때부터 온몸이 백발이어서 산에 버려진 아기 '잘(로스탐의 아버지)'을 둥지로 데려가 지혜와 힘으로 키워 냈습니다. 잘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때, 시무르그는 자신의 깃털 하나를 주며 '큰 위기가 닥쳤을 때 이 깃털을 태우면 구름처럼 날아와 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뒷날 거구의 아기 로스탐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위험에 빠지자, 잘은 깃털을 태워 시무르그를 불렀고 그 지혜 덕분에 로스탐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영웅 로스탐의 일곱 가지 모험어른이 된 로스탐은 천하무적의 괴력을 지닌 영웅이 되어, 충직하고 날쌘 명마 '라흐슈'와 함께 페르시아를 지켰습니다. 마왕에게 사로잡힌 페르시아의 왕과 군대를 구하기 위해 나선 로스탐은 무시무시한 일곱 가지 시험(하프트 칸)을 거쳤습니다. 자는 동안 덤벼든 사나운 사자를 물리치고, 타는 듯한 사막의 갈증을 이겨 냈으며, 거대한 용과 사악한 마녀, 괴물 디브(악마)를 차례로 꺾었습니다. 마침내 가장 깊은 동굴에 살던 무시무시한 '백마귀'를 쓰러뜨리고 왕을 구출하며 페르시아의 가장 위대한 수호자로 이름을 남겼습니다.에 세운 나라로, 1295년 가잔 칸 - 1295년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고, 무너져 가던 세금 제도와 화폐를 정비해 일 칸국을 되살린 칸입니다.이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뒤 문화와 경제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몽골이 세운 네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무너진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붕괴의 시작은 1335년이었습니다. 마지막 칸 아부 사이드 - 제8대 칸 울제이투의 아들로, 열두 살에 칸이 되어 실권자 추판을 꺾고 친정을 폈지만 후계자 없이 서른에 죽어 일 칸국의 붕괴를 불렀습니다.가 캅카스 - 코카서스 산맥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산맥입니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나누는 경계선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해발 5,000미터가 넘는 높은 봉우리들이 많고 매우 험난해서, 옛날 사람들은 인간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장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산맥은 고대 그리스 신화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한 거인 프로메테우스가 그 벌로 이 산맥의 차가운 바위 절벽에 묶여,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무시무시한 벌을 받았던 전설적인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또한 깊은 계곡과 험한 숲이 많아, 수많은 부족이 저마다의 독특한 언어를 쓰며 살아왔기 때문에 '언어의 산'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 험난한 산맥은 어떤 대군도 함부로 통과하지 못하는 천연 방어 성벽이었습니다. 그러나 1222년, 제베와 수부타이가 이끄는 몽골군은 혹독한 추위와 거친 바위 지형을 극복하고 이 코카서스 산맥을 횡단하는 기적적인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몽골군이 산맥을 넘어 갑자기 나타나자, 산맥 북쪽 초원에 살고 있던 알란족과 쿠만족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국경으로 나갔다가 진중에서 갑자기 죽었는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훌라구에서 이어져 온 직계 혈통이 끊긴 것입니다.
몽골 사회에서 칸은 아무나 될 수 없었다. 칭기즈 칸의 피를 이어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군대를 쥔 장군 집안들은 저마다 먼 친척을 찾아내 칸으로 세우고 그 이름으로 싸웠다. 1336년 자가투강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아르파 케운 - 1335년 아부 사이드가 후계자 없이 죽자 추대된 칸으로, 킵차크 칸국의 침입을 물리쳤으나 이듬해 군벌 장군들의 반란으로 패해 처형되었습니다.이 패해 죽은 뒤로, 22년 동안 열 명이 넘는 칸이 세워졌다 사라졌다. 이름만 칸이고 실제 주인은 그를 앞세운 장군이었다.
싸움의 중심에는 두 집안이 있었다. 바그다드 - 762년 아바스 칼리프국의 수도로 건설된 바그다드는 학문, 문화, 교역의 세계적 중심지였습니다. '평화의 도시'라 불린 이곳은 '지혜의 집'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이슬람의 황금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된 사건은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뼈아픈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를 근거지로 삼은 잘라이르 왕조와, 타브리즈 - 타브리즈는 지금의 이란 북서쪽에 있는 도시로, 일 칸국의 수도였습니다. 캅카스와 아나톨리아, 페르시아를 잇는 길목에 있어 상인과 사절이 늘 오갔습니다.가잔 칸 때 크게 정비되어 병원과 도서관, 천문 관측 시설을 갖춘 학문의 중심이 되었고, 중국에서 온 그림 기법이 페르시아 화가들의 손을 거쳐 새로운 세밀화로 자라난 곳이기도 합니다.일 칸국이 갈라진 뒤에도 이 도시를 차지하는 쪽이 아제르바이잔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여러 세력이 번갈아 이곳을 두고 다투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타브리즈의 큰 바자르(시장)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를 쥔 추판 왕조였다. 1338년 알라타그 부근 전투에서 두 집안이 정면으로 맞붙었고, 이후에도 승패가 엎치락뒤치락하며 국경이 계속 바뀌었다. 그사이 남쪽 시라즈에서는 무자파르 왕조가, 호라산 - 이란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드넓은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부를 포함합니다. 이름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8세기경 이곳은 아바스 혁명의 발원지 역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계 개종자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섞여 살던 이곳의 역동적인 분위기는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습니다.에서는 사르바다르라는 세력이 각각 독립했다. 하나였던 나라가 다섯 조각으로 나뉜 것이다.
끝을 맺은 것은 바깥에서 온 손이었다. 1357년 킵차크 칸국 - 바투가 볼가강 하류에 세운 유목 국가로, 약 250년 동안 루스 공국들에게 세금을 거두며 군림했습니다.의 자니 베크 - 킵차크 칸국의 전성기를 이끈 칸으로, 1357년 캅카스를 넘어 타브리즈를 정복해 일 칸국의 잔재를 끝냈습니다.가 캅카스를 넘어 내려와 추판 왕조의 타브리즈를 차지했다. 일 칸국이라는 이름을 쓰던 마지막 세력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자니 베크가 이듬해 죽자 잘라이르 왕조가 타브리즈를 되찾았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일 칸국이라 부르지 않았다. 몽골이 페르시아에 세운 나라는 그렇게 100년 만에 문을 닫았고, 그 자리는 반세기 뒤 티무르 제국 - 14세기 후반 정복자 티무르가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세운 제국으로, 중앙아시아와 페르시아를 아우르며 찬란한 이슬람 문화를 꽃피웠습니다.이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