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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왕국

근현대 수도: 소피아

역사

칸 쿠브라트의 화살 묶음 전설과 차르국의 부활

불가리아 건국 전승에 따르면, 7세기 대불가리아의 통치자 칸 쿠브라트가 임종 직전 다섯 아들에게 화살 다발을 건네며 '하나씩은 쉽게 부러지지만 함께 묶여 있으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라는 교훈을 남겼고, 셋째 아들 아스파루흐가 다뉴브강을 건너 오늘날의 불가리아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약 500년간 이어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끝내고 자치 공국이 된 불가리아는 1908년 페르디난트 1세가 중세 제국의 칭호인 '차르(국왕)'를 선언하며 완전한 독립 왕국이 되었습니다.

발칸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의 상흔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일대의 영토 통합을 추구했던 불가리아는 제2차 발칸 전쟁(1913)과 제1차 세계 대전(1915~1918)에서 잇달아 패전국의 자리에 놓이며 에게해 출구와 남부 도브루자 등 주요 영토를 잃고 실지 회복을 국가적 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제한적 추축국 가담과 유대인 구출

보리스 3세 국왕이 이끈 불가리아는 남부 도브루자와 마케도니아·서트라키아 회복을 조건으로 1941년 3월 추축국에 가입해 독일군의 그리스·유고슬라비아 진격 통로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국민 정서상 러시아(소련 -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 국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주역이자 냉전 시대 초강대국이었다.)와의 전통적 유대가 깊었던 보리스 3세는 히틀러의 거듭된 요구에도 소련에 선전포고하거나 동부전선에 군대를 보내는 것을 끝까지 거부했으며, 의회와 정교회·시민사회의 반대로 본토 내 약 4만 8천 명의 불가리아 국적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1944년 9월 소련군 진주와 함께 연합국 측으로 돌아서 전쟁 말기 대독일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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