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기원은 9세기 후반 바이킹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소왕국의 군주였던 하랄 1세(미발왕 하랄)는 아름다운 공주 귀다에게 청혼했다가 '노르웨이 전역을 통일한 진정한 왕이 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랄은 노르웨이를 하나로 묶기 전까지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872년 하프르스피오르 해전에서 승리해 통일을 이룬 뒤에야 비로소 머리를 단정히 깎았다고 전해진다. 이후 중세 말 칼마르 동맹을 거쳐 덴마크와 스웨덴의 동군연합 아래 놓였던 노르웨이는 1905년 평화적인 국민투표를 통해 스웨덴과의 연합을 끝내고 호콘 7세를 국왕으로 추대하며 완전한 독립 왕국으로 거듭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노르웨이는 중립을 선언했으나, 스웨덴산 철광석의 부동항 수송로인 나르비크와 북대서양 해안선을 확보하려던 독일은 1940년 4월 9일 '베저위붕 작전'을 개시해 노르웨이를 기습 침공했다. 침공 첫날 오슬로 피오르 입구의 오스카르스보르그 요새 수비대는 구식 해안포와 어뢰로 독일의 최신예 중순양함 블뤼허호를 격침시켜, 호콘 7세와 내각, 그리고 왕실 금괴가 오슬로를 빠져나갈 결정적인 시간을 벌어 주었다. 노르웨이군은 연합군 원정군과 함께 북부 산악 지대와 나르비크에서 두 달간 분전한 끝에 본토가 점령당하자 런던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이후 노르웨이는 세계 4위 규모의 상선단(노르트라시프)을 연합군 보급선단으로 투입해 대서양 해전의 숨은 생명선 역할을 했으며, 본토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텔레마르크의 베모르크 중수 공장을 폭파해 독일의 핵 개발 시도를 저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치 독일 총통 (퓌러)
영국 수학자 · 암호 해독가 / 컴퓨터 과학의 개척자
이탈리아 왕국 총리 / 국가 파시스트당 지도자(두체)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 / 제34대 미국 대통령
독일 국방군 원수 / 아프리카 군단 사령관
제32대 미국 대통령
소련 연방 원수 / 최고사령부 부사령관
제33대 미국 대통령
일본 제국 해군 원수 / 연합함대 사령장관
소련 공산당 서기장 / 인민위원회의 의장
영국 해군장관 / 군수장관 /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