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공산당 서기장 / 인민위원회의 의장
"우리는 선진국들보다 50년 내지 100년 뒤처져 있습니다. 우리는 이 거리를 10년 안에 주파해야만 합니다."— 1931년 2월 소련 산업 경영자 회의에서 급속한 중공업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며(딱 10년 뒤인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함).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 본명 이오시프 주가슈빌리, 1878~1953)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3년 사망할 때까지 약 30년 동안 소비에트 연방(소련)을 통치한 최고 지도자로, 농업 국가였던 소련을 산업·군사 초강대국으로 변모시키고 제2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끈 인물입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조지아의 작은 마을 고리에서 가난한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바람으로 트빌리시 정교회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몰래 사회주의 금서를 읽다가 혁명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차르 정부의 경찰에 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과 탈출을 거듭하던 그는 러시아어로 '강철의 사나이'를 뜻하는 스탈린이라는 가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17년 10월 혁명과 러시아 내전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의 핵심 측근으로 활약한 그는 1922년 신설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에 임명되었습니다.
1924년 레닌이 사망하자 스탈린은 '소련 한 나라만으로도 사회주의를 완수할 수 있다'는 일국 사회주의론을 내세워 트로츠키 등 경쟁자들을 차례로 축출하고 독점적 권력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선진국들이 50~100년 걸린 길을 10년 안에 주파하지 못하면 짓밟히고 말 것'이라며 1928년부터 강력한 국가 주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였습니다. 우랄산맥과 시베리아에 거대한 제철소와 전차 공장이 세워졌으나, 강제적인 농장 집단화 과정에서 대기근이 발생했고, 1930년대 후반에는 당과 군부 지도자들을 대거 처형하거나 수용소(굴라크)로 보낸 '대숙청'을 단행해 적군의 지휘 역량이 일시적으로 크게 약화되기도 했습니다.
전쟁 준비 시간을 벌기 위해 1939년 8월 나치 독일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으나, 1941년 6월 아돌프 히틀러가 조약을 깨고 기습 침공해 오자 소련은 멸망의 위기에 몰렸습니다. 독일군이 수도 모스크바 턱밑까지 진격했을 때도 스탈린은 수도를 떠나지 않고 붉은 광장 열병식을 주관하며 군민의 항전 의지를 결집시켰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에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명령 제227호)'는 엄명을 내리고 게오르기 주코프 등 유능한 장군들에게 작전 지휘권을 맡겨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1945년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루스벨트·처칠과 함께 얄타·포츠담 회담을 통해 전후 세계 질서를 재편한 스탈린은, 동유럽 일대에 친소 공산주의 정권을 세우고 1949년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하며 미국과 맞서는 냉전 체제의 한 축을 세웠습니다. 그는 1953년 3월 모스크바 근교 별장에서 뇌출혈로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