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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근현대 수도: 베를린

역사

경제 대공황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출범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베르사유 조약 - 1919년 6월 파리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연합국과 패전국 독일 사이에 체결되어 제1차 세계 대전을 공식적으로 종결지은 평화 조약입니다.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14개조 평화 원칙을 바탕으로 국제 분쟁을 조정할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 창설을 결의했습니다. 하지만 조약은 전쟁의 모든 책임을 독일에 묻는 가혹한 조항을 담았습니다. 독일은 알자스-로렌 등 영토의 13%와 모든 해외 식민지를 상실하고, 군대 규모를 10만 명으로 제한당했으며,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굴욕과 경제적 파탄은 독일 국민들의 깊은 반발을 사 훗날 나치즘의 대두와 제2차 세계 대전의 불씨가 되었습니다.에 따른 막대한 전쟁 배상금과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극심한 물가 폭등과 실업난에 빠졌습니다. 사회적 불안 속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은 베르사유 체제 타파와 일자리 창출, 독일 민족의 부흥을 내세워 대중의 지지를 얻었고, 1933년 히틀러가 총리에 임명되면서 의회 민주주의를 해체하고 일당 독재 체제인 '제3제국'을 수립했습니다.

천년왕국 신화와 군비 재무장

나치 지도부는 신성 로마 제국(제1제국)과 독일 제국(제2제국)의 뒤를 이어 영원히 지속될 '천년왕국(제3제국)'을 건설한다는 정치적 신화를 내세웠습니다. 아우토반(고속도로) 건설과 대대적인 군수 산업 육성으로 실업률을 낮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징병제를 부활시켰으며, 기갑 전차 부대와 공군(루프트바페)을 중심으로 군대를 빠르게 현대화했습니다. 이어 '생존권(레벤스라움)' 확보를 명분으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체코슬로바키아 -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체 후 중부유럽의 모범적인 민주주의·공업 국가로 번영했으나, 1938년 뮌헨 협정과 독일의 점령을 겪으며 연합국 일원으로 저항한 공화국.의 주데텐란트를 차지하며 영토 팽창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체제의 종말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나치 독일은 초기 전격전 - 전격전(독일어로 '번개 전쟁'이라는 뜻의 블리츠크리크)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군이 선보인 기동전 전술로, 전차(기갑부대)와 급강하 폭격기, 무전 통신을 하나로 묶어 적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가는 작전 방식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기관총과 철조망에 막혀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던 참호전의 교착을 깨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하늘에서는 급강하 폭격기가 적의 통신망과 보급로를 먼저 타격하고, 땅에서는 무전기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수백 대의 전차 부대가 적 방어선의 가장 약한 한 점을 집중 돌파해 후방의 사령부를 포위·마비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독일군은 이 전술을 앞세워 1939년 폴란드와 1940년 프랑스를 단 몇 주 만에 무너뜨리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국토가 광대하고 방어 종심이 깊은 소련과의 전쟁에서는 보급선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후 연합군도 기갑 합동 전술을 습득해 반격에 나섰습니다.을 통해 프랑스와 서유럽 대부분을 석권했습니다. 또한 점령지 전역에서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유대인과 소수 집단 수백만 명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홀로코스트 -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 정권과 그 협력자들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유럽의 유대인 약 600만 명을 비롯해 로마인(집시), 장애인, 전쟁 포로, 정치적 반대파 등 수백만 명을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박해하고 학살한 사건입니다. 1935년 뉘른베르크 인종법으로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한 나치 정권은 점령지 곳곳에 유대인 강제 거주 구역(게토)을 만들었고, 1942년 반제 회의 이후 이른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이름 아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등 철도망과 연결된 수용소에서 대규모 살상을 자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수용소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제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통해 국가의 명령에 따른 행위라도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받는다는 국제법 원칙과 1948년 유엔 집단살해죄(제노사이드) 방지 협약,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를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1941년 소련 -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 국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주역이자 냉전 시대 초강대국이었다. 침공 이후 동부 전선의 소모전과 미국 - 1776년 독립 선언으로 탄생한 북아메리카의 연방 공화국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민주주의의 병기고'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극했다.·영국 연합군의 서부 전선 상륙으로 양면전쟁에 몰렸고, 1945년 5월 수도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12년 만에 무조건 항복으로 멸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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