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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주코프

소련 연방 원수 / 최고사령부 부사령관

소련 (러시아) 1896년 ~ 1974년 (나이: 78세)
"적의 주력이 도심 시가전에 발이 묶여 있을 때, 우리는 가장 약한 양 날개를 쳐서 거대한 그물로 감싸 안아야 한다."
— 1942년 가을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 제6군을 역포위하기 위한 '천왕성 작전'을 구상하며.

생애

게오르기 주코프(Georgy Zhukov, 1896~1974)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가장 위태로웠던 전선마다 투입되어 전세를 뒤집어 '승리의 원수'이자 '소방수'로 불린 소비에트 연방(소련) 최고의 군사 지휘관입니다.

가난한 모피 수습공에서 기갑 전술의 대가로

모스크바 남서쪽 칼루가 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주코프는 어린 시절 모스크바의 모피 공방에 보내져 혹독한 도제 생활을 견뎌냈습니다. 1915년 제1차 세계 대전에 기병으로 징집된 그는 용맹함으로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적군에 입대해 기병 연대장부터 군단장까지 승진했습니다. 그는 말 대신 전차와 기계화 부대가 미래 전장의 주역이 될 것임을 꿰뚫어 보고 기갑 합동 전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의 진가는 1939년 여름 몽골과 만주 국경에서 일본 관동군과 맞붙은 할힌골 전투에서 처음으로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주코프는 대담하게 수백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양 날개에 배치하여 일본군 제23사단을 완벽하게 포위·섬멸했습니다. 이 패배에 충격을 받은 일본 군부는 소련을 치려던 '북진론'을 포기하고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으로 눈을 돌리는 '남진론'으로 전략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를 구한 '소방수'

1941년 6월 나치 독일이 소련을 기습 침공하여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오자, 이오시프 스탈린은 가장 위급한 곳마다 주코프를 급파했습니다. 주코프는 함락 직전의 레닌그라드 방어선을 재건한 데 이어, 1941년 겨울 모스크바 코앞까지 다가온 독일군을 시베리아 사단과 혹한을 이용해 격퇴하며 독일의 무패 신화를 깨뜨렸습니다.

1942년 가을 볼가강 유역의 스탈린그라드에서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지는 동안, 주코프는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와 함께 극비리에 '천왕성 작전'을 기획했습니다. 독일 제6군이 도심 건물 하나하나에 매달려 있는 사이, 주코프는 방어가 허술한 독일군 양 측면의 루마니아군 진지를 100만 대군과 T-34 전차로 돌파해 거대한 독일 제6군 30만 명을 통째로 포위망(가마솥) 안에 가두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베를린 함락과 전후의 부침

1943년 역사상 최대의 전차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의 공세를 분쇄하고 1944년 백러시아 대공세(바그라티온 작전)로 독일 중부집단군을 궤멸시킨 주코프는, 1945년 봄 제1벨라루스전선군을 이끌고 베를린으로 진격해 나치 독일의 항복 문서에 소련 대표로 서명했습니다. 모스크바 승전 기념 열병식에서 백마를 타고 붉은 광장을 사열할 만큼 국민적 인기가 치솟자, 이를 경계한 스탈린에 의해 오데사 등 지방 군관구로 좌천되기도 했습니다. 스탈린 사후 국방장관으로 복귀해 명예를 회복한 그는 회고록 《회상과 성찰》을 남기고 1974년 영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