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대 미국 대통령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 (The Buck Stops Here)."— 트루먼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두고 국정의 최종 결정과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음을 되새겼던 유명한 문구.
해리 S.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4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제33대 미국 대통령에 올라 원자폭탄 투하 결단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고, 전후 초기 냉전 시대의 국제 질서를 설계한 미국의 정치가입니다.
미국 미주리주 라마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트루먼은 20세기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대학을 나오지 않은 자수성가형 인물이었습니다. 지독한 근시여서 어린 시절 안경을 쓰고 피아노와 역사책을 읽으며 자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철도 회사 시간 기록원, 은행 점원, 가족 농장 운영 등 궂은일을 도맡았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시력 검사표를 통째로 외워 육군에 자원입대한 그는 프랑스 서부 전선에서 포병 중대장(대위)으로 복무하며 겁에 질린 부하들을 독려해 단 한 명의 전사자도 없이 부대를 이끌어 통솔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후 고향에서 친구와 함께 차린 남성 잡화점이 불황으로 문을 닫았을 때도 파산 신청을 거부하고 15년에 걸쳐 빚을 모두 갚은 강직한 성품을 지녔습니다. 이후 미주리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트루먼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막대한 국방 예산의 낭비와 군수품 불량 문제를 조사하는 '트루먼 위원회'를 이끌며 약 150억 달러의 세금을 아껴 전국적인 신뢰를 얻었고, 1944년 대선에서 루스벨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되었습니다.
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82일째이던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트루먼은 제33대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그는 취임 다음 날 기자들에게 '달과 별과 모든 행성이 한꺼번에 내 어깨 위로 떨어져 내린 기분이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무거운 책임을 떠안았습니다. 대통령 선서를 마친 직후에야 그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추진해 온 극비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존재를 처음으로 보고받았습니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트루먼은 7월 독일 포츠담 회담에서 윈스턴 처칠, 이오시프 스탈린과 전후 질서를 논의하며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촉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당시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미군 사상자가 속출하자, 군 수뇌부는 일본 본토 상륙 작전을 감행할 경우 미군과 일본인 모두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의 추가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고심 끝에 트루먼은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 사용을 최종 승인했고,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뒤 일본이 항복하면서 6년간의 세계 대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트루먼은 과거 제1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이 고립주의로 돌아섰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제연합(유엔) 창설을 적극 주도했습니다. 한편 소련이 동유럽을 공산화하며 팽창하자, 그는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자유 진영 국가들을 지원하는 '트루먼 독트린(봉쇄 정책)'을 천명하고, 폐허가 된 서유럽의 경제를 되살리는 대규모 원조 계획인 '마셜 플랜'과 서방 군사 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탄생시켰습니다. 또한 1948년에는 미군 내 인종 차별과 부대 분리 제도를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렸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군 파병을 신속히 결정했습니다.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 항상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The Buck Stops Here —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다)'라는 팻말을 올려두었던 트루먼은 퇴임 후 경호원도 없이 부인과 함께 직접 승용차를 몰고 고향 미주리주 인디펜던스로 돌아가 소박하게 살다가 1972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