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독일 총통 (퓌러)
"베르사유 조약이라는 사슬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독일의 재건도, 미래도 있을 수 없다."— 1920~1930년대 대공황과 전후 배상금에 시달리던 독일 대중의 불만을 파고들며 반복했던 연설 구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을 이끌고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을 통치한 독재자(총통)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국경 마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난 히틀러는 젊은 시절 수도 빈으로 건너가 미술 아카데미에 두 차례 지원했으나 모두 낙방했습니다. 빈의 빈민 합숙소를 전전하며 엽서 그림을 그려 팔던 시기에 그는 당시 빈 사회에 퍼져 있던 극단적인 범게르만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1913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한 그는 이듬해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바이에른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서부 전선 최전방의 연대 전령(연락병)으로 4년간 복무했습니다. 독가스 공격을 받아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1918년 11월 독일의 항복 소식을 들은 그는, 독일군이 전선에서 진 것이 아니라 후방의 정치인들과 유대인들이 등을 찔렀다는 이른바 '배후 중상설'을맹신하게 되었습니다.
전후 뮌헨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한 히틀러는 특유의 격정적인 연설 솜씨로 당권을 장악하고 당 이름을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으로 바꾸었습니다. 1923년 무력으로 정권을 잡으려던 '뮌헨 맥주홀 폭동'이 실패해 감옥에 갇힌 동안 자신의 인종주의 사상과 동방 영토 확장('생존권' 확보) 구상을 담은 책 《나의 투쟁》을 구술했습니다.
출소 후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기로 전략을 바꾼 히틀러에게 1929년 세계 대공황은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습니다. 실업자가 600만 명으로 치솟고 기존 민주 정당들이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자, 베르사유 조약 파기와 경제 부흥을 약속한 나치당은 원내 제1당으로 급부상했습니다. 1933년 1월 총리에 임명된 히틀러는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모든 야당을 해산하고, 이듬해 대통령 직책까지 합친 절대 권력자 '총통(퓌러)'에 올라 군비 재무장과 대외 팽창을 밀어붙였습니다.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합병을 영국·프랑스가 묵인(유화 정책)하자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습니다. 1940년 기갑부대의 전격전으로 프랑스를 6주 만에 굴복시키며 권력의 정점에 섰으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실패한 뒤 1941년 6월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바르바로사 작전)하고 그해 12월 미국에까지 선전포고하면서 독일을 감당할 수 없는 소모전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동부 전선에서는 장군들의 후퇴 건의를 거부하고 현지 사수를 고집하다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제6군을 잃었으며, 나치 정권은 유럽 전역에 강제 수용소와 절멸 수용소를 세워 유대인 약 600만 명과 소수 집단을 학살하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했습니다. 1944년 서부 노르망디 상륙과 동부 소련군의 진격으로 독일 본토가 압축되자, 히틀러는 소련군 포탄이 떨어지는 베를린 총통 관저 지하 벙커에서 1945년 4월 3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