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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영국 수학자 · 암호 해독가 / 컴퓨터 과학의 개척자

영국 1912년 ~ 1954년 (나이: 42세)
" 때로는 아무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내기도 한다."
—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계산 기계와 암호 해독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튜링의 삶과 업적을 상징하게 된 문구에서.

생애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정부 암호학교(블레츨리 파크)에서 나치 독일의 최고 기밀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자동 연산 기계를 고안해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쓰는 모든 컴퓨터와 인공지능(AI)의 이론적 기틀을 마련한 영국의 천재 수학자입니다.

컴퓨터가 탄생하기 전에 컴퓨터의 원리를 상상한 청년

영국 런던에서 인도 식민지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튜링은 어릴 때부터 숫자와 과학 실험에 남다른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열네 살 때 대중교통 파업이 일어나자 96km 떨어진 기숙학교까지 홀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 등교했을 만큼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공부한 그는 1936년, 불과 스물네 살의 나이에 인류 지성사를 바꾼 논문 〈계산 가능한 수에 관하여〉를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 같은 전자 컴퓨터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튜링은 긴 종이 테이프에 적힌 기호를 규칙에 따라 읽고 쓰는 가상의 장치인 '보편 튜링 기계(Universal Turing Machine)'를 고안했습니다. 하나의 기계에 명령어(프로그램)만 바꾸어 넣으면 세상의 모든 수학적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 아이디어는 현대 컴퓨터 구조(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결합)의 직접적인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블레츨리 파크와 에니그마 암호 해독 전쟁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튜링은 1939년 9월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한 바로 다음 날, 런던 북쪽의 시골 저택인 '블레츨리 파크'에 차려진 영국 극비 암호 해독 본부에 합류했습니다. 당시 독일군은 타자기 모양의 기계 안에 회전 바퀴(로터)와 배선판을 복잡하게 연결한 에니그마 암호기를 사용해, 가능한 조합의 수가 무려 15경(京) 가지가 넘는 암호문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은 매일 자정 정각마다 암호 설정을 통째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람이 손으로 계산해서는 하루 안에 암호를 푸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튜링은 '기계가 만든 암호는 기계로만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폴란드 수학자들의 초기 연구를 발전시켜, 독일군 전문에 자주 반복해서 등장하는 단어('날씨 예보', '하일 히틀러' 등)를 단서로 삼아 모순되는 로터 조합을 초고속으로 걸러내는 거대한 전기기계식 연산 장치 '봄브(Bombe)'를 설계했습니다. 특히 그는 가장 복잡하다고 알려진 독일 해군 유보트(잠수함) 부대의 암호 체계를 담당하는 '8번 오두막(Hut 8)' 팀을 이끌며 대서양에서 연합군 보급선단을 사냥하던 유보트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냈습니다. 역사가들은 튜링과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울트라' 정보)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최소 2년에서 4년 앞당겨 끝내고 1,4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인공지능의 선구자와 뒤늦은 사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블레츨리 파크의 활약은 국가 일급비밀로 묶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튜링은 영국 국립물리연구소와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세계 최초의 내장 프로그램 방식 전자 컴퓨터 개발에 참여했고, 1950년에는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 인공지능의 기준이 된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영웅이었던 그에게 비극이 닥쳤습니다. 1952년 자택 도난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는 과정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당시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던 영국 법률에 따라 체포된 것입니다. 감옥에 가는 대신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는 화학적 거세 처분을 택한 그는 보안 인가마저 취소되는 큰 고통을 겪다가, 1954년 6월 자택에서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와 함께 마흔한 살의 나이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2009년 영국 정부가 공식 사과를 발표했고,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실 특별 사면을 내렸으며, 현재 영국의 최고액권인 50파운드 지폐에는 인류 문명을 바꾼 과학자 앨런 튜링의 초상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