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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유럽 연합군 최고사령관 / 제34대 미국 대통령

미국 1890년 ~ 1969년 (나이: 79세)
"만약 이번 상륙 작전에 어떤 잘못이나 실패가 따른다면, 그 책임은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 1944년 6월 5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개시 직전, 작전이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아이젠하워가 직접 손으로 써서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성명서 초안에서.

생애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 애칭 '아이크')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 다국적 연합군을 하나로 묶어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서유럽 해방을 이끈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자, 훗날 미국의 제34대 대통령(1953~1961)을 지낸 인물입니다.

캔자스의 소년에서 탁월한 전략 기획가로

미국 텍사스주 데니슨에서 태어나 캔자스주 애빌린의 검소한 가정에서 일곱 형제 중 셋째로 자란 아이젠하워는 1915년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미국 본토에서 신설된 전차 훈련 캠프를 지휘하며 기갑전의 미래 가능성을 일찌감치 연구했습니다. 전간기 동안 존 퍼싱 장군,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그리고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 밑에서 일하며 방대한 군수 보급과 작전 계획을 입안하는 육군 최고의 기획·조정 전문가로 성장했습니다.

다국적 연합군을 하나로 묶은 최고사령관과 노르망디의 결단

1942년 유럽 전선 미군 사령관으로 발탁된 아이젠하워는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이 드센 영국과 미국, 자유 프랑스 장군들 사이의 갈등을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공정한 중재력으로 조율해 냈습니다. 북아프리카 상륙(횃불 작전)과 시칠리아·이탈리아 진격을 연이어 성공시킨 그는 1943년 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총리에 의해 연합군 원정군 최고사령관(SHAEF)에 임명되었습니다.

1944년 6월 초,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상륙을 앞두고 영국 해협에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자 모든 지휘관의 시선이 아이젠하워에게 쏠렸습니다. 기상 장교로부터 6월 6일 새벽에 잠시 날씨가 갠다는 보고를 받은 그는 고심 끝에 '좋소, 갑시다(OK, let's go)'라며 사상 최대의 상륙 작전 개시를 명령했습니다. 이때 그는 만일 상륙 작전이 실패할 경우 '모든 잘못은 오직 나 한 사람에게 있다'는 내용의 사과 성명서를 미리 주머니에 써서 넣어 두었을 만큼 막중한 책임감으로 작전을 지휘했고, 마침내 파리를 해방하고 1945년 5월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제34대 미국 대통령과 평화의 유산

전후 육군 참모총장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초대 최고사령관을 지낸 아이젠하워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대되어 1952년 대선에서 승리해 제34대 미국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재임 중 한국전쟁의 정전 협정을 매듭짓고, 전시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영감을 얻은 미국 전역의 주간고속도로망(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건설을 추진했으며, 미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했습니다. 1961년 퇴임 연설에서는 과도한 군비 확장을 경계하며 '군산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역사적인 말을 남겼고, 1969년 78세를 일기로 영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