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9월 1일 새벽, 독일 국방군이 폴란드 - 123년간의 외세 분할 통치를 끝내고 1918년 부활했으나, 1939년 독일과 소련의 양면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의 첫 전장이 된 공화국. 국경을 넘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독일군은 기갑사단의 전차 - 두꺼운 장갑과 무한궤도를 장착하여 적의 총탄과 험난한 지형을 뚫고 대포나 기관총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중무장 전투 차량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참호와 철조망, 기관총 진지로 막힌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영국에서 극비리에 개발되었습니다. 개발 당시 기밀 유지를 위해 전선에 보내는 급수용 물탱크(Tank)로 위장했던 것에서 '탱크'라는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1916년 솜 전투에서 '마크 I' 전차가 최초로 실전에 투입되었으며, 초기 잦은 고장에도 불구하고 보병 돌격을 이끄는 지상전의 핵심 주역으로 발전했습니다. 부대와 급강하 폭격기 슈투카 - 슈투카(Stuka)는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을 상징한 대표적인 급강하 폭격기(정식 명칭 융커스 Ju 87)입니다. 아래로 꺾인 독특한 '역갈매기 날개'와 튼튼한 고정식 바퀴를 갖추었으며, 독일어로 급강하 폭격기를 뜻하는 '슈투르츠캄프플루크초이크(Sturzkampfflugzeug)'를 줄여 슈투카라고 불렀습니다. 목표물을 향해 70도 이상의 가파른 각도로 내리꽂히며 투하하는 정밀 폭격으로 적의 다리, 요새, 전차를 파괴했습니다. 특히 급강하할 때 바퀴에 달린 풍력 사이렌 '예리코의 나팔'에서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굉음은 지상의 적군에게 엄청난 심리적 공포를 안겼으며, 전차 부대의 진격을 하늘에서 직접 돕는 근접 항공 지원으로 전격전 신화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행 속도가 느리고 공중전 능력이 취약하여, 영국 본토 항공전처럼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적 전투기의 손쉬운 표적이 되었습니다. 전쟁 후반기에는 37mm 대전차포 두 문을 날개 밑에 장착한 지상 공격기(Ju 87G)로 개조되어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 전차 수백 대를 파괴하는 등 대전 내내 활약했습니다.를 한곳에 집중해 적의 지휘소와 보급선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는 전격전 - 전격전(독일어로 '번개 전쟁'이라는 뜻의 블리츠크리크)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독일군이 선보인 기동전 전술로, 전차(기갑부대)와 급강하 폭격기, 무전 통신을 하나로 묶어 적의 방어선을 순식간에 뚫고 들어가는 작전 방식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기관총과 철조망에 막혀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했던 참호전의 교착을 깨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하늘에서는 급강하 폭격기가 적의 통신망과 보급로를 먼저 타격하고, 땅에서는 무전기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는 수백 대의 전차 부대가 적 방어선의 가장 약한 한 점을 집중 돌파해 후방의 사령부를 포위·마비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독일군은 이 전술을 앞세워 1939년 폴란드와 1940년 프랑스를 단 몇 주 만에 무너뜨리며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국토가 광대하고 방어 종심이 깊은 소련과의 전쟁에서는 보급선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후 연합군도 기갑 합동 전술을 습득해 반격에 나섰습니다.(블리츠크리그) 전술을 선보였습니다. 영국 - 압도적인 해군력과 산업력을 바탕으로 지구 표면의 4분의 1을 지배했던 '해가 지지 않는 제국'과 프랑스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수립되어 벨 에포크와 제1차 세계 대전 승리를 이끈 공화국가 독일에 선전포고했으나 실제로는 공격에 나서지 않는 가짜 전쟁이 이어지는 사이, 폴란드는 서쪽의 독일군과 독소 불가침 조약 - 독소 불가침 조약(양국 외무장관의 이름을 따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라고도 부름)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을 불과 일주일 앞둔 1939년 8월 23일,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 연방(소련)이 모스크바에서 깜짝 체결한 상호 불가침 조약입니다. 원래 파시즘을 내세운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은 서로를 가장 적대시하던 앙숙이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영국·프랑스와 싸우는 동안 동쪽의 소련이 개입하는 양면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아돌프 히틀러와, 군대를 재정비할 시간을 벌고 동유럽 완충 지대를 확보하려던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이 조약에는 폴란드와 발트 3국 등 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절반씩 나누어 차지한다는 '비밀 의정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조약 체결 9일 만인 9월 1일 독일이 서쪽에서, 이어 9월 17일 소련이 동쪽에서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2년 뒤인 19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기습 침공하면서 조약은 파기되었습니다. 비밀 의정서에 따라 동쪽에서 진입한 소련 -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수립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연방 국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승리의 주역이자 냉전 시대 초강대국이었다.군에게 분할 점령당했습니다. 이듬해인 1940년 5월, 히틀러 - 대공황과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독일 내 불만을 이용해 나치 독재 체제를 수립하고,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으며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나치 독일의 총통입니다.는 서쪽으로 눈을 돌려 프랑스가 독일 국경에 쌓아 올린 거대한 지하 요새 마지노선 - 마지노선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를 겪은 프랑스가 독일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1930년대에 프랑스-독일 국경을 따라 건설한 거대한 콘크리트 지하 요새 방어선입니다. 건설을 주도한 프랑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지상에는 두꺼운 강철 포탑과 기관총 진지만 노출되어 있고, 땅속 깊은 곳에는 발전소와 병원, 탄약고, 병사들의 숙소, 심지어 물자를 나르는 지하 전철까지 갖춘 당대 최고 기술의 난공불락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벨기에와의 국경에 자리한 험준한 아르덴 숲으로는 독일군 전차가 지나올 수 없다고 믿어 그 구간에는 요새를 허술하게 지었습니다. 1940년 5월 독일군 기갑부대가 마지노선을 정면 공격하는 대신 아르덴 숲을 우회해 프랑스군 배후를 기습하면서 마지노선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무력화되었고, 오늘날 '절대 안전하다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소용없는 방어선'을 뜻하는 관용어로 쓰이게 되었습니다.을 정면 공격하는 대신, 전차가 통과하기 어렵다고 여겨졌던 벨기에·룩셈부르크의 울창한 아르덴 숲 - 아르덴(아르덴 숲)은 벨기에 동남부와 룩셈부르크 북부, 프랑스 동북부 국경 지대에 걸쳐 넓게 펼쳐진 울창한 고대 삼림과 험준한 구릉·협곡 지대입니다. 굽이치는 뫼즈강과 스무아강을 따라 깊게 패인 V자형 계곡과 가파른 바위 능선이 얽혀 있어, 예로부터 대규모 군대가 진격하기 매우 까다로운 천혜의 자연 장벽으로 꼽혔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전 프랑스 군부는 이곳을 전차가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자연의 요새'라고 확신했습니다. 굵은 고목이 빽빽한 원시림 탓에 전차가 나무 사이 야지(오프로드)로 기동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통행로는 절벽과 계곡을 낀 구불구불한 1차선 비포장 산길뿐이었습니다. 전차 한 대만 고장 나거나 폭파되어도 뒤따르던 수천 대의 차량 전체가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옴짝달싹 못 하는 치명적인 병목 현상에 갇히게 되므로, 프랑스 수뇌부는 설령 독일군이 진입하더라도 숲을 빠져나오는 데 최소 9~15일이 걸릴 것이며 협곡에 갇힌 독일군은 프랑스 포병과 공군의 손쉬운 표적이 될 것이라 여겨 마지노선 축성에서도 제외하고 2선급 예비군에게 방어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1940년 5월 독일군은 만슈타인의 '낫질 작전'에 따라 하인츠 구데리안의 기갑집단을 아르덴 숲으로 은밀히 밀어 넣었습니다. 공병대의 신속한 도로 개척과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의 지원 아래 주야간 강행군을 감행한 독일 기갑사단은 프랑스의 예상을 비웃듯 단 70시간(사흘) 만에 험준한 숲을 뚫고 뫼즈강을 건너 프랑스군 주력의 배후를 단숨에 포위했습니다. 이후 1944년 12월에도 히틀러가 연합군을 상대로 최후의 기습 공세인 벌지 전투를 감행하면서, 아르덴 숲은 서부 전선의 운명을 가른 가장 극적인 격전지로 역사에 남았습니다.을 돌파했습니다. 허를 찔린 연합군은 북부 해안 도시 됭케르크 - 됭케르크(영어로 덩케르크)는 프랑스 최북단, 벨기에 국경 인근의 도버 해협에 면한 항구 도시입니다. 영국 해안과 불과 수십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중세부터 북해 무역과 해군 전략의 요충지였습니다. 1940년 5월 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 침공 당시, 아르덴 숲을 돌파한 독일 기갑부대에 포위된 영국 원정군과 프랑스·벨기에군 약 40만 명이 바다를 등지고 이곳 됭케르크 해변에 갇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때 영국 해군 군함뿐 아니라 어선, 요트, 유람선 등 영국의 민간 소형 선박 수백 척('작은 배들')이 포탄이 쏟아지는 해협을 건너와 아흐레 동안 33만 8천여 명의 병사를 기적적으로 구출해 냈습니다(다이나모 작전). 비록 중장비는 모두 잃었으나 숙련된 병력을 보존한 덕분에 영국은 전쟁을 계속 이어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극적인 탈출 실화는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Dunkirk)로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해변의 육군(일주일), 바다의 민간 선박(하루), 하늘의 공군(한 시간)이라는 세 가지 시간대를 긴박하게 교차 편집하며 당시 고립된 장병들의 사투와 평범한 시민들의 용기 있는 구조 활동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에 포위되었으나, 영국 해군 함정과 민간 어선 800여 척이 포화 속을 뚫고 33만 8천 명의 장병을 영국 본토로 구출하는 다이나모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함락되었고 프랑스는 개전 6주 만에 휴전 협정에 서명했습니다. 이때 개전 초기 군비와 자원 부족으로 참전을 미루고 관망하던 이탈리아 왕국 - 1861년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로 탄생하여 1922년 파시스트 정권 수립과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친 뒤 1946년 공화국으로 전환된 왕국.의 베니토 무솔리니 - 이탈리아에 세계 최초의 파시즘 독재 정권을 수립하고 나치 독일·일본 제국과 추축국 동맹을 맺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으나, 연이은 군사적 패배 끝에 실각하고 최후를 맞은 독재자입니다.는, 프랑스가 예상 밖으로 빠르게 무너지자 전쟁이 곧 끝나 독일 혼자 유럽의 패권을 차지할 것이라는 조급함에 사로잡혔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을 되살려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제국을 건설하려던 무솔리니는 승전국의 지분을 챙겨 강화 테이블에 앉기 위해 프랑스 함락 직전인 1940년 6월 10일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변변한 준비 없이 뛰어든 이탈리아군은 알프스 국경에서 프랑스 수비대에 가로막혔습니다. 이에 조급해진 무솔리니는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의 핵심 해상 생명선인 수에즈 운하를 끊고 중동 유전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집트를 침공했고, 발칸반도에서 독일의 독주를 견제하며 동지중해 패권을 굳히고자 히틀러와 상의도 없이 그리스 - 고대 헬라스 문명의 유산을 이어받아 1832년 독립한 지중해 왕국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침공을 격퇴하며 연합국의 초기 사기를 드높였다.를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허약한 보급과 지휘 실패로 이탈리아군은 영국군의 반격과 그리스 산악 방어선에 가로막혀 연이어 참패를 당했습니다. 결국 히틀러가 이탈리아를 구원하기 위해 발칸반도로 군대를 보내고 북아프리카에 롬멜 - 제2차 세계 대전 프랑스 침공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대담하고 신출귀몰한 기갑 기동전을 펼쳐 적군으로부터도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독일 국방군 원수입니다.의 아프리카 군단을 급파해야 했으며, 이는 추축국의 전쟁 역량을 분산시켜 소련 침공 일정에 차질을 빚고 전선을 지중해 전역으로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서유럽 대륙의 주요 지역이 독일의 통제하에 들어가고 영국만 섬에 홀로 남자, 새로 취임한 윈스턴 처칠 -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해군장관으로서 대함대 동원과 최초의 전차(탱크) 개발을 주도했으며, 야심 차게 기획한 갈리폴리 상륙 작전이 참패하자 장관직에서 물러나 서부 전선 참호의 대대장으로 직접 참전한 뒤 훗날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 정치가입니다. 총리는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 줄 것이 없다며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는 국민의 항전 의지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1940년 여름, 히틀러는 영국 상륙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루프트바페(독일 공군)를 동원해 영국 본토 항공전을 개시했습니다. 수적 열세에 놓인 영국 왕립공군은 해안을 따라 설치된 최첨단 전파 탐지 장치인 레이더 - 레이더(RADAR, 전파를 이용한 탐지 및 거리 측정)는 안테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를 쏘아 보낸 뒤, 멀리 있는 비행기나 배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전파를 분석해 목표물의 방향과 거리, 높이를 알아내는 기술입니다. 레이더가 발명되기 전에는 적 폭격기가 다가오는 것을 망원경이나 소리 수집기에만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구름이 끼거나 한밤중에는 적기가 머리 위에 나타날 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영국은 해안선을 따라 세운 세계 최초의 방공 레이더망('체인 홈') 덕분에 독일 폭격기 편대가 해협을 건너기도 전에 미리 위치를 파악하고 스핏파이어 전투기를 출격시켜 본토를 방어해 냈으며, 이후 야간 폭격과 대잠수함 작전, 태평양 해전의 승패를 가른 핵심 과학 기술이 되었습니다.망으로 독일 폭격기 편대의 접근을 미리 파악하고 스핏파이어 - 스핏파이어(Supermarine Spitfire)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왕립공군(RAF)을 상징한 전설적인 단발 단좌 전투기입니다. 아름다운 타원형 날개와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장착하여 뛰어난 선회력과 빠른 속도를 자랑했습니다. 1940년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독일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메세르슈미트 Bf 109와 대등하게 맞서 싸우며 도그파이트(근접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민첩성으로 영국 하늘을 지켜냈습니다. 윈스턴 처칠 총리가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빚을 진 적이 없다'고 칭송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주역이었습니다. 전쟁 기간 내내 엔진과 무장을 꾸준히 개량하며 육상 기지뿐 아니라 항공모함 함재기(시파이어)로도 활약했으며, 대전 종전까지 연합군의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와 허리케인 전투기 - 허리케인(Hawker Hurricane)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영국 왕립공군(RAF)의 실질적인 뼈대를 이룬 주력 전투기입니다. 화려한 스핏파이어의 그늘에 가려지기 쉬우나,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영국 전투기 전력의 약 60%를 차지하며 독일 폭격기를 가장 많이 격추한 숨은 주역입니다. 금속 골조 위에 천을 씌운 전통적인 구조 덕분에 생산과 정비가 매우 쉬웠고, 적의 총탄을 맞아도 기체 손상이 적어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했습니다. 스핏파이어가 빠른 속도로 독일 호위 전투기(Bf 109)의 발을 묶는 사이, 허리케인은 안정적인 8정의 기관총 화망으로 독일의 하인켈 He 111, 도르니에 Do 17 등 대형 폭격기 편대를 집중 사냥하는 완벽한 팀워크를 선보였습니다. 영국 본토 방어 이후에도 북아프리카 사막 전선과 동남아시아, 지중해 등 전 세계 전선에서 지상 공격기이자 야간 전투기로 맹활약하며 연합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를 적시에 출격시켜 하늘을 지켜냈으며, 영국 블레츨리 파크의 앨런 튜링 - 제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블레츨리 파크에서 해독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자동으로 풀어내는 기계 '봄브'를 설계해 연합군의 승리를 앞당긴 영국의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입니다. 등 과학자들은 독일군의 최고 기밀 암호기인 에니그마 - 에니그마(Enigma)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육·해·공군이 군사 작전 명령을 비밀리에 주고받기 위해 사용한 휴대용 회전식 기계 암호기입니다. 겉모습은 타자기와 비슷하지만, 글자판의 키를 누를 때마다 내부의 톱니바퀴(로터)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알파벳을 수조 가지의 다른 조합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독일군은 매일 자정마다 암호 설정표를 바꾸었기 때문에 에니그마 암호는 인간이 절대 풀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폴란드 수학자들의 초기 연구를 이어받은 영국의 비밀 암호 해독 본부 '블레츨리 파크'에서 수학자 앨런 튜링 등이 전기 기계식 해독 장치인 '봄베(Bombe)'를 발명하며 에니그마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울트라(Ultra)'라는 극비 암호명으로 불린 이 해독 정보 덕분에 연합군은 대서양에 숨은 독일 잠수함(유보트)의 위치와 독일군의 공격 계획을 미리 읽고 대처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탄생한 기계식 연산 기술은 오늘날 현대 컴퓨터가 탄생하는 직접적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블레츨리 파크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과 암호 해독 팀의 치열한 암호 전쟁 실화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으로 생생하게 그려졌습니다. 영화는 풀리지 않는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거대한 기계 '크리스토퍼(실제로는 봄베)'를 설계하는 고뇌의 과정과, 전쟁 후 비운의 삶을 살아야 했던 튜링의 비극적인 생애를 조명하여 제87회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를 해독해 연합군 작전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영국 굴복에 실패한 히틀러는 서부 전선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동맹이었던 소련을 공격하는 위험을 무릅쓴 결단을 내렸습니다. 히틀러는 영국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가장 큰 이유가 동쪽의 거대한 소련이 언젠가 독일을 공격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라고 보았기에, 대륙에 남은 유일한 잠재적 강국인 소련을 먼저 무너뜨려야 영국의 항전을 단념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해상 봉쇄 속에서 장기전을 치르려면 우크라이나의 광대한 곡창 지대와 코카서스의 유전 등 소련의 풍부한 자원이 절실했습니다. 무엇보다 동유럽과 소련 땅을 차지해 독일 민족의 '생존 공간(레벤스라움)'을 확보하고 공산주의를 절멸시키는 것은 히틀러가 처음부터 품어온 궁극적 목표였으며, 직전 겨울 전쟁에서 작은 나라 핀란드 - 수천 개의 호수와 자작나무 숲을 품은 북유럽 공화국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을 상대로 겨울전쟁과 계속전쟁을 치르며 독립을 지켜냈다.에 고전한 소련 붉은 군대를 대숙청 여파로 쉽게 무너질 허약한 집단으로 얕잡아 본 치명적인 오판도 작용했습니다. 그리하여 히틀러는 1941년 6월 독소 불가침 조약을 파기하고 300만 대군을 동원해 소련을 기습 침공하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한편 아시아와 태평양에서도 전쟁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습니다. 1937년 시작된 중일 전쟁이 장기화되자, 일본 제국 - 1868년 메이지 유신으로 수립되어 서구식 근대화와 군사 팽창을 추구하다가 1945년 패전으로 해체된 제국.은 서방 연합국의 대중국 원조 통로를 차단하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된 틈을 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진주했습니다. 이에 미국 - 1776년 독립 선언으로 탄생한 북아메리카의 연방 공화국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민주주의의 병기고' 역할을 수행하며 세계 초강대국으로 등극했다.이 일본의 팽창을 억제하고자 미국 내 일본 자산을 전면 동결하고 석유와 고철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석유의 8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은 비축유가 바닥나 군대와 산업이 완전히 마비될 국가적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미국은 경제 제재를 푸는 조건으로 중국 - 1911년 신해혁명으로 2천 년 황제 체제를 끝내고 아시아 최초로 수립된 공화국으로, 8년간의 대일 항전을 통해 연합국 승리에 기여했다.과 인도차이나에서의 전면 철수를 요구했으나, 침략 성과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일본 지도부는 굴복 대신 석유와 고무가 풍부한 네덜란드령 동인도(인도네시아)와 영국의 말라야 등 동남아시아를 무력 점령하는 남진 정책을 결정했습니다. 이때 동남아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하와이에 전진 배치된 미국 태평양 함대였습니다.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 미국의 압도적인 공업력을 직접 목격해 대미 전쟁에 반대했으나, 개전이 결정되자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앞세운 진주만 기습과 미드웨이 해전을 입안·지휘한 일본 제국 해군 연합함대 사령장관입니다.를 비롯한 일본 수뇌부는 국력 차이로 미국과 장기전을 치르면 승산이 없음을 알면서도, 하와이 진주만 - 진주만(펄 하버)은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미국 하와이 제도 오아후섬 남쪽 해안에 자리 잡은 천연의 석호(만) 항구이자, 미국 태평양 함대의 핵심 해군 기지입니다. 입구는 좁지만 안쪽 바다가 깊고 넓어 거대한 전함과 항공모함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요충지입니다.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아침, 동남아시아 유전 지대 진출을 앞두고 미국 함대의 개입을 막으려던 일본 해군 기동부대가 항공모함 6척에서 발진한 함재기 350여 대를 동원해 진주만을 기습 공습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애리조나호 등 미군 전함 8척이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2,400여 명의 미국 군인과 민간인이 숨졌습니다. 그러나 이 기습은 그동안 전쟁 개입을 꺼리던 미국 국민들을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이튿날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하고 독일·이탈리아와도 전면전에 돌입하면서, 진주만 공습은 세계 최대의 산업 대국 미국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주역으로 끌어들이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1941년의 긴박했던 공습 당일과 이어진 미국의 반격을 다룬 작품으로 마이클 베이 감독, 벤 애플렉 주연의 2001년 영화 《진주만》(Pearl Harbor)이 유명합니다. 영화는 평화롭던 일요일 아침에 갑작스럽게 쏟아진 일본 함재기들의 폭격과 불타오르는 전함들 속에서 사투를 벌인 미 육군 항공대 조종사들의 실화를 장대한 스케일로 재현했으며, 이후 도쿄를 기습 폭격한 두리틀 공습까지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 아카데미 음향편집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습니다.을 선제 기습해 미 해군 주력을 일거에 마비시키면 미국이 전력을 재건하는 사이 동남아 자원 지대를 장악해 난공불락의 방어선을 치고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 협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습니다. 그리하여 1941년 12월 7일, 항공모함 - 항공모함은 배 위를 평평한 활주로(비행갑판)로 만들어 수십 대의 전투기와 폭격기, 뇌격기를 싣고 다니며 바다 위 어디에서나 비행기를 띄우고 착륙시킬 수 있는 '움직이는 해상 비행장'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바다의 주인은 거대한 대포를 장착한 '전함(배틀쉽)'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함의 대포는 사거리가 고작 30~40킬로미터에 불과했던 반면, 항공모함에서 날아오른 함재기는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어뢰와 급강하 폭탄으로 적의 군함을 정확히 타격할 수 있었습니다. 1941년 진주만 공습과 1942년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을 거치며 서로의 배는 그림자도 보지 못한 채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날아온 비행기들끼리 승패를 결정짓는 새로운 해전 시대가 열렸고, 항공모함은 전함을 밀어내고 현대 해군의 핵심 주력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6척에서 출격한 일본 함재기 편대가 하와이 진주만의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습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훈련차 출항 중이던 미국의 핵심 주력 항공모함들은 화를 면했고, 오히려 이 기습은 그동안 전쟁 개입을 꺼리던 미국 여론을 단번에 분노와 참전으로 결집시켰습니다. 결국 세계 최대의 산업 대국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고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서 연합국을 전폭 지원하면서, 전쟁은 진정한 세계 대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1942년 중반까지 전선은 독일·일본·이탈리아 동맹인 추축국에 유리해 보였으나, 태평양과 동부 전선에서 동시에 역전의 분수령이 찾아왔습니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국 해군은 일본군의 암호를 미리 해독해 미드웨이 환초 - 미드웨이 환초(미드웨이섬)는 북태평양의 한가운데, 북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의 정확히 중간 지점(Midway)에 자리 잡은 둥근 고리 모양의 산호초 섬입니다. 하와이 진주만에서 서북쪽으로 약 2,10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면적이 6제곱킬로미터 남짓한 아주 작은 섬이지만,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통신 케이블의 중계지이자 비행장이 건설되어 있어 이곳을 차지하는 쪽이 하와이와 중부 태평양의 하늘과 바다를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1942년 6월, 일본 연합함대는 미드웨이를 점령해 미군 항공모함들을 유인·격파하려 했으나, 일본군 암호를 미리 해독하고 매복해 있던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들의 반격으로 주력 항공모함 4척을 하루 만에 모두 잃었습니다. 이로써 미드웨이 환초는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근해에 매복했고, 급강하 폭격기로 일본의 주력 항공모함 4척을 하루 만에 격침하며 태평양 바다의 주도권(제해권)을 가져왔습니다. 같은 해 여름부터 겨울까지 소련 남부에서는 코카서스 유전 지대와 볼가강 - 볼가강은 유럽에서 가장 긴 강(약 3,530km)으로 러시아 서부를 관통해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러시아의 젖줄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볼가강은 소련에 있어 단순한 지리적 경계를 넘어 국가의 생존이 걸린 대체 불가능한 '전략적 생명선'이었습니다. 당시 소련은 카프카스(바쿠) 유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대부분과, 남부 이란 회랑을 통해 들어오는 미국의 방대한 무기대여법(랜드리스) 군수 물자를 볼가강 수운을 통해 모스크바와 우랄의 군수 공장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만약 볼가강 수송로가 끊기면 소련의 전차와 전투기, 트럭은 기름이 없어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1942년 여름 히틀러의 독일 제6군이 공업 도시 스탈린그라드를 집요하게 공격한 핵심 이유도 바로 이 볼가강 수송로를 차단하고 카프카스 유전을 장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실리 추이코프 장군이 이끄는 소련 제62군은 '볼가강 너머에 우리가 물러설 땅은 없다'는 결사항전의 각오로 독일군을 강변 수백 미터 앞에서 막아냈고, 얼어붙은 강을 건너 끊임없이 병력과 포탄을 보급받은 끝에 마침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수송로를 장악하려는 독일 제6군과 게오르기 주코프 -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파하고,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에서 모스크바 방어전, 스탈린그라드 포위 반격, 쿠르스크 전투, 베를린 함락을 모두 승리로 이끈 소련 최고의 명장입니다. 장군이 이끄는 소련 붉은 군대가 공업 도시 스탈린그라드 - 스탈린그라드(현재의 러시아 볼고그라드)는 러시아 남부 볼가강 하류 서쪽 기슭을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거대한 공업 도시이자 수운·철도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원래 이름은 차리친이었으나 1925년 소련 지도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따서 스탈린그라드로 개칭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곳은 카스피해 연안의 바쿠 유전에서 생산된 석유가 볼가강을 따라 모스크바로 올라가는 핵심 보급 통로였으며, 트랙터 공장을 개조해 T-34 전차를 생산하던 군수 중심지였습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200일 동안 독일 제6군과 소련군이 무너진 건물과 공장, 언덕(마마예프 쿠르간) 하나를 두고 처절한 시가전을 벌였으며, 소련군이 천왕성 작전으로 독일군 30만 명을 역포위해 항복을 받아내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동부 전선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상징적 도시가 되었습니다.(현 볼고그라드)에서 맞붙었습니다. 건물마다, 층마다 벌어진 처절한 시가전으로 독일군의 발을 묶은 소련군은 그해 11월 T-34 전차를 앞세운 대규모 양익 포위 작전(천왕성 작전)을 펼쳐 1943년 2월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의 독일 제6군 30만 명을 섬멸하고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한편 나치 독일 - 1933년 아돌프 히틀러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수립한 전체주의 체제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은 점령지 전역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점령지 폴란드 남부 오시비엥침에 건립한 사상 최대 규모의 강제 노동 및 절멸 수용소 복합 단지입니다. 1940년 기존 군 막사를 개조해 만든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를 시작으로, 대규모 가스실과 시신 소각 시설을 갖춘 제2수용소(비르케나우), 화학 공장 강제 노동을 위한 제3수용소(모노비츠) 및 수십 개의 위성 수용소로 확장되었습니다. 1942년부터 나치 정권의 이른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홀로코스트)'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기차로 강제 수송된 유대인 약 100만 명을 비롯해 폴란드인, 로마인, 소련군 포로 등 11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사람들이 독가스(지클론 B)와 가혹한 노동, 영양실조, 생체 실험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1945년 1월 27일 소련 붉은 군대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었으며, 유엔(국제연합)은 이날을 '국제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로 지정해 비극을 기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반인도적 범죄 현장이었던 수용소 유적은 다시는 이러한 참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해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 평화로운 저택을 짓고 살아가던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 가족의 일상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서늘하게 고발한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2023년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제96회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깊은 충격과 성찰을 안겼습니다. 등 강제 노동을 시키는 수용소와 집단 학살을 위한 절멸 수용소를 세워 유대인 600만 명과 로마인 - 로마인은 10세기경 인도 북부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럽 각지에 정착한 유랑 민족입니다. 오랫동안 외부인들에게 '집시(Gypsy)'라 불렸으나 이는 이집트에서 왔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타칭이며, 로마니어(Romani)로 '인간'을 뜻하는 '롬(Rom)'에서 유래한 '로마(Roma)'가 공식 표준 명칭입니다. 독자적인 언어인 로마니어와 음악, 공예 기술을 보존하며 유럽 전역을 이동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없는 소수 집단이라는 이유로 중세 이후 유럽 각국에서 추방령과 정착 강요 등 오랜 차별과 배척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로마인을 절멸 대상으로 삼아 강제 수용소에서 20만~50만 명 이상을 학살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비극을 '포라이모스(Porajmos, 파괴)'라 부르며, 1971년 제1회 세계 로마인 회의를 통해 공식 명칭과 깃발을 제정하고 역사적 권리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을 비롯한 소수 집단을 학살하는 홀로코스트 - 홀로코스트(Holocaust)는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 정권과 그 협력자들이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유럽의 유대인 약 600만 명을 비롯해 로마인(집시), 장애인, 전쟁 포로, 정치적 반대파 등 수백만 명을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박해하고 학살한 사건입니다. 1935년 뉘른베르크 인종법으로 유대인의 시민권을 박탈한 나치 정권은 점령지 곳곳에 유대인 강제 거주 구역(게토)을 만들었고, 1942년 반제 회의 이후 이른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이름 아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등 철도망과 연결된 수용소에서 대규모 살상을 자행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수용소의 참상이 세상에 알려지자 국제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으며,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을 통해 국가의 명령에 따른 행위라도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받는다는 국제법 원칙과 1948년 유엔 집단살해죄(제노사이드) 방지 협약, 세계인권선언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를 자행해 인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전세의 주도권을 잡은 연합국은 1943년 북아프리카의 독일·이탈리아군을 항복시키고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해 무솔리니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동부 전선의 소련군도 사상 최대의 전차전인 쿠르스크 전투에서 승리하며 서쪽으로 진격했습니다. 마침내 1944년 6월 6일,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사상 최대의 상륙 작전인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휘해 서유럽을 해방시켰으며, 전후 미국의 제34대 대통령을 지낸 장군이자 정치가입니다. 장군의 지휘 아래 미국·영국·캐나다 등 연합군 15만 6천 명이 함정 5,000여 척과 항공기 1만 1,000여 대를 동원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 프랑스 서북부 영국해협에 면한 비옥하고 푸른 해안 지방입니다. 완만한 구릉과 풍요로운 목초지, 웅장한 백색 백악 절벽이 펼쳐진 곳으로 센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교통과 무역의 요충지입니다.911년 프랑크 왕국의 샤를 3세가 침입해 오던 바이킹(노르만인) 수장 롤로에게 센강 하류 땅을 내어주며 '노르망디 공국'이 시작되었습니다. 북방 바이킹 전사의 거친 기질과 대륙 프랑스의 기독교 신앙, 기병 전술이 융합되면서 유럽 최정예의 기사 집단인 '노르만족'이 탄생했습니다.1066년 이곳의 군주였던 윌리엄 공작이 영국해협을 건너 잉글랜드를 정복하면서 영국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진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합니다. 해안에 상륙하는 오버로드 작전을 단행했습니다. 치열한 해안 교전 끝에 독일이 해안을 따라 구축한 요새선인 대서양 방벽을 돌파한 연합군은 그해 8월 파리를 해방하고 라인강 - 라인강(라틴어: 레누스)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국경으로 확립되었고, 이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요새화되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제국 북부의 주요 경계선이었으나, 406년 강이 얼어붙으면서 반달족, 알란족, 수에비족의 대규모 연합군이 강을 건너 갈리아로 침입할 수 있었고, 이는 로마 방어선의 붕괴를 초래했습니다.을 건너 독일 본토로 진격했습니다. 동쪽에서는 소련군이 폴란드와 동유럽을 거쳐 독일을 압박해 들어갔고, 양측 군대는 1945년 4월 엘베강 - 엘베강(라틴어: 알비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전략적 목표였습니다. 그는 방어선을 단축하기 위해 로마의 국경을 라인강에서 엘베강으로 옮기고자 했습니다. 기원후 5년에 로마의 해군과 육군이 이 강에 도달했으나, 이후 토이토부르크 숲에서의 패배로 인해 로마는 다시 라인강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에서 역사적인 조우를 이루었습니다. 소련군이 수도 베를린을 완전히 포위하고 시가전을 벌이자 히틀러는 4월 30일 지하 벙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1945년 5월 8일 독일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유럽에서의 전쟁이 먼저 끝났습니다.
유럽 전선이 막을 내린 뒤에도 태평양에서는 일본군이 본토 결전을 외치며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가미카제 특공 공격을 감행해 양측 모두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잃는 치열한 소모전이 이어졌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뉴딜 정책으로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민주주의의 병기고'와 연합국 공조를 이끌어 승리의 기틀을 다진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은 전쟁 초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건의로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한 극비 핵무기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 맨해튼 계획(Manhattan Project)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이 영국·캐나다와 협력하여 인류 최초의 핵무기(원자폭탄)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극비 과학·군사 프로젝트입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이 먼저 원자폭탄을 만들지 모른다는 우려를 담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레오 실라르드의 편지를 받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구를 지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미 육군 공병대의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과 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지휘 아래 뉴멕시코주의 외딴 고원 마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등에서 13만 명이 넘는 인력과 약 2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었습니다. 1945년 7월 16일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원자력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여기서 제작된 우라늄 폭탄('리틀 보이')과 플루토늄 폭탄('팻 맨')이 그해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습니다.를 승인했고, 미국은 1945년 7월 뉴멕시코주 사막에서 인류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했습니다. 루스벨트 급서 후 취임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 -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급서로 제33대 미국 대통령에 올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을 종결짓고, 전후 마셜 플랜과 트루먼 독트린으로 냉전 질서를 정립한 지도자입니다.은 미군의 대규모 상륙 사상자를 줄이고 전쟁을 조기에 끝내기 위해 원자폭탄 - 원자폭탄(핵무기)은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처럼 무거운 원자의 핵이 쪼개질 때(핵분열 연쇄반응) 순간적으로 방출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이용한 대량 살상 무기입니다. 기존의 화약 폭탄 수천~수만 톤을 한꺼번에 터뜨린 것과 맞먹는 폭발력을 지니며, 강렬한 열선과 폭풍파로 반경 수 킬로미터 이내의 도시 건물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을 방출해 생존자들에게도 오랜 기간 심각한 후유증을 남깁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6일과 9일,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하면서 인류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전에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서로 핵전쟁이 일어나면 공멸한다는 '상호확증파괴'의 공포 속에 전후 냉전 시대의 군사 전략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투하를 결정했습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 히로시마는 일본 본토(혼슈) 서남부 세토 내해 연안의 삼각주 위에 발달한 항구이자 공업 도시입니다. 메이지 시대 이후 군사 지휘 본부와 군수 공장이 들어서며 일본 육·해군의 주요 거점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호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실전 원자폭탄 '리틀 보이'를 히로시마 상공에 투하했습니다. 단 한 발의 폭발로 도시 건물의 70% 이상이 파괴되었고, 당일과 그해 말까지 방사능 피폭과 화상으로 약 14만 명의 시민과 군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한국인 강제징용자 및 거주민 수만 명 포함). 전후 히로시마는 폭심지 가까이에 남아 있던 산업장려관 건물의 잔해('원폭 돔')를 허물지 않고 그대로 보존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으며, 핵무기의 참상과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에,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두 도시가 순식간에 파괴되고 소련군까지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침공하자,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고 9월 2일 미 전함 미주리호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인류는 다시는 이러한 참화를 겪지 않기 위해 그해 10월 유엔(국제연합 - 국제연합(UN, 유엔)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10월, 인류가 다시는 세계 대전과 같은 참혹한 전쟁을 겪지 않도록 국제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국가 간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된 세계 최대의 국제기구입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만들어졌던 '국제연맹'은 미국이 불참하고 모든 나라의 만장일치가 필요했으며 침략국을 제재할 군사력이 없어 제2차 세계 대전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 뼈아픈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유엔은 제2차 세계 대전 승전국인 미국·소련(현 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5개국을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삼고, 분쟁 지역에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주권 국가가 가입해 있는 유엔은 전쟁 방지와 안보 논의뿐 아니라 세계인권선언 채택, 난민 구호(UNHCR), 아동 보호(유니세프), 보건(WHO), 문화유산 보존(유네스코) 등 인류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 무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을 창설했으나, 세계는 곧이어 미국과 소련을 양대 축으로 하는 냉전 - 냉전(Cold War, 차가운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무렵부터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약 45년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사회주의 진영이 세계 패권을 두고 벌인 정치·이념·군사적 대립 시대를 말합니다. 미국과 소련 두 초강대국이 모두 수천 발의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면서, 두 나라가 직접 총과 폭탄을 쏘며 전면전을 벌이면 인류 전체가 멸망할 수 있었기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 대신 외교전, 첩보전, 우주 개발 경쟁, 그리고 한국전쟁·베트남 전쟁 같은 제3세계 대리전 형태로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유럽은 서방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동구권의 바르샤바 조약기구로 나뉘어 '철의 장막'과 베를린 장벽으로 가로막혔으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로 냉전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