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明朝, 1368년~1644년)는 태조 주원장(홍무제)이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북쪽 몽골 평원으로 몰아내고 한족 중심의 통일 제국을 다시 세운 정통 제국입니다. 276년 동안 중국 대륙을 다스리며 자금성 건립, 대운하 정비, 만리장성 중건, 정화의 대항해를 통한 국제 무역망 확립 등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극적인 인생을 산 인물 중 하나입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가뭄과 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황각사라는 사찰의 구걸 승려(탁발승)로 구걸하며 목숨을 연명했습니다. 붉은 수건을 머리에 동여맨 홍건적의 난에 합류한 주원장은 뛰어난 용맹과 지략으로 군사를 이끌었으며, 사찰 전설에 따르면 자줏빛 구름이 집 위를 감싸고 무지개가 피어올라 장차 천하를 통일할 천자(황제)가 될 것임을 예언했다고 전해집니다.
3대 황제 영락제 시기 명나라는 최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수도를 남경(난징)에서 북경(베이징)으로 옮기고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을 건설했습니다. 또한 환관 정화(鄭和)에게 대규모 탐험 함대를 주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7차례나 항해하게 했습니다. 정화의 함대는 수백 척의 거대한 보선(寶船)과 2만 7천 명의 승무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서양의 대항해 시대보다 100년 앞서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의 항로 및 조공 무역망을 확립했습니다.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자, 13대 황제 만력제(신종)는 "조선은 명나라의 입술과 같으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순망치한)"라며 이여송, 진린 등 대군과 수군을 파견하여 조명 연합군을 형성했습니다. 명나라 구원병의 참전은 평양성 탈환 등 임진왜란 승리에 기여하였으나, 막대한 군사비 지출로 인해 명나라 재정이 크게 악화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7세기 들어 임진왜란 파병으로 인한 재정 악화, 조정 내부 환관 정치의 부패, 그리고 북방에서 새로 부흥한 만주족(후금/청나라)의 압박이 겹치면서 명나라는 위기에 처했습니다. 1644년 이자성의 농민 기민군에게 베이징이 함락되며 숭정제가 자결함으로써 명나라가 멸망하였으나, 명대 완성된 만리장성과 백자 도자기, 삼국지연의·수호전 같은 통속 소설 문화는 동아시아 전체에 깊은 영향을 남겼습니다.
명나라 수군 도독 / 장수
한을 세운 반란군 지도자
의병장 / 문신
의병장 / 홍의장군
도원수 / 조선 육군 총지휘관
일본 장수 / 다이묘 (제2군 선봉장)
일본 제1군 선봉장 / 다이묘
의기 (의로운 기생 / 최경회의 후처)
일본 전국시대 다이묘 / 통일의 초석
승병장 / 고승
일본 다이묘 / 사쓰마의 맹장
삼도순변사 / 조선 무신
원의 마지막 황제
일본 태합 / 통일자
경상우수사 / 삼도수군통제사
명의 북벌군 총사령관
삼도수군통제사 / 덕수 이씨
일본 첩보원 / 대마도 무사
명의 초대 황제 (홍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