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1군 선봉장 / 다이묘
"무익한 살생보다는 명나라와의 협상을 통해 평화를 맺는 것이 낫다."— 강화 회담 중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평화 조약을 추진하던 입장을 담은 표현.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1555~1600)는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크리스천) 다이묘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제1군 선봉장으로 참전하여 부산 상륙과 한양·평양 점령을 주도한 장수입니다.
사카이의 약재상 가문에서 태어난 고니시 유키나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에 들어 다이묘로 발탁되었습니다.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로서 교세 확장과 상업 정책을 추진했으나, 강경파이자 열렬한 불교 신자였던 가토 기요마사와는 극심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1592년 5월, 1만8천 명의 제1군 선봉대를 이끌고 부산포에 상륙했습니다. 조총 전술을 앞세워 부산진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의 조선 육군을 대파한 후 개전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했습니다. 이어 6월 평양성까지 점령했으나, 이순신의 수군 승리로 남해 보급선이 차단되고 명나라 구원병이 참전하면서 북진이 정지되었습니다.
1593년 평양성 탈환전에서 조·명 연합군에 패해 한양으로 후퇴한 후, 명나라 사신 심유경과 결탁하여 4년간 휴전 회담을 주도했습니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일본으로 복귀했으나,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에 섰다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에 패했습니다. 크리스천 교리에 따라 자결(할복)을 거부하고 교토 로쿠조가하라에서 처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