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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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경상우수사 / 삼도수군통제사

조선 1540년 ~ 1597년 (나이: 57세)
"수군 정비와 조류 태세 없이 섣부른 출전은 위험하다."
— 정유재란 초기 조정의 출전 압박을 받으며 머뭇거리던 상황.

생애

원균(元均)(1540~1597)은 임진왜란 때 경상우수사로서 이순신과 합류해 초반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오른 뒤 칠천량 해전에서 패배하고 전사한 무신입니다.

북방 무관 근무와 경상우수사 임명

무과에 급제하여 함경도 부령 등 국경 지대에서 여진족을 방어하며 군사 경력을 쌓았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 직전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부임했습니다. 1592년 5월 일본군 대함대가 부산포에 기습 상륙하자 관하 함선 일부를 파파하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 요청을 보냈습니다.

이순신과의 연합 해전 및 갈등

이순신의 전라 수군과 합류한 원균은 옥포, 사천, 당포, 한산도 대첩 등 초기 남해 해전에 참전하여 수군 합동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해전 전공 배분 문제와 전술적 의견 차이로 이순신과의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조정에 의해 충청도 병마절도사 등 육군 보직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칠천량 해전과 전사

1597년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 도해 첩보 공작(요시라)과 조정의 오해로 이순신이 파직되자, 원균이 제2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원균 역시 수군 정비 부족과 일본군의 유인책을 우려해 해상 출전을 주저했으나, 조속한 공격을 독촉하는 조정의 강력한 압박과 처벌 위협에 밀려 출전했습니다. 칠천량 해역에서 휴식 중 일본 수군의 야간 기습을 받아 조선 함선 160여 척이 파괴되었고 원균 자신도 거제도 육지에서 전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