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장 / 문신
"비록 몸은 전장에서 스러질지언정, 우리의 넋은 영원히 이 땅을 지킬 것이다."— 전국 각지에 의병 궐기를 촉구하며 발표한 격문의 구절.
고경명(高敬命)(1533~1592)은 호남 출신의 이름난 문신이자 유학자로, 임진왜란 발발 직후 6천 여 명의 대규모 의병을 모아 금산 전투에서 아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의병장입니다.
155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한 고경명은 성균관 직강, 동래부사 등 여러 요직을 거친 대문장가였습니다. 곧은 절개와 시문(詩文)에 뛰어났으며, 관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전라도 광주에서 학문 진흥과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터지고 수도 한양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60세의 고령이었던 고경명은 주저 없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는 전국 각지의 수령과 사대부, 백성들에게 감동을 주는 격문(檄文)을 써서 보냈습니다. 이 격문에 감동하여 광주에 모여든 의병이 불과 며칠 만에 6,000여 명에 달했으며, 호남 최초의 대규모 의병 부대가 결성되었습니다.
고경명은 일본군 고바야카와 다카카게 부대가 전라도로 진격하기 위해 금산에 성을 쌓았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이끌고 진격했습니다. 1592년 7월 금산 전투에서 일본군 성채를 공격하였으나 적의 기습 사격과 카운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장수들이 후퇴를 권했으나 고경명은 "나 죽을 자리는 바로 여기다"라며 끝까지 성을 공격하다 둘째 아들 고인후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그의 희생은 호남 곡창 지대를 사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국 의병 항전의 정신적 촛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