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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

도원수 / 조선 육군 총지휘관

조선 1537년 ~ 1599년 (나이: 62세)
"산성을 사수하라. 단 한 치의 땅도 적에게 내어줄 수 없다."
— 행주산성 전투에서 대군을 상대로 군민을 독려하며 남긴 말.

생애

권율(權慄)(1537~1599)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육군을 총지휘한 도원수(都元帥)로, 이치 전투와 행주대첩을 대승으로 이끌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명장입니다.

늦은 입신과 이치 전투의 승리

권율은 문관 가문 출신으로 46세라는 늦은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광주목사로 재직 중이었던 그는 곡창 지대인 호남(전라도)을 지키기 위해 군사를 모았습니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인 이치(배티재) 전투에서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의 일본 대군을 맞아 치열한 백병전 끝에 적을 퇴치했습니다. 이 승리로 전라도 곡창 지대를 보존하여 조선군과 수군의 식량 보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행주대첩: 2천3백 명으로 3만 대군을 물리치다

1593년 초, 권율은 한양 탈환을 목표로 2,300여 명의 관군과 승병을 이끌고 한강 변의 행주산성에 목책을 치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3월 14일, 한양에 모여 있던 우키타 히데이에와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군 3만 대군이 9개 부대로 나뉘어 7차례나 산성을 맹렬히 공격했습니다. 권율 장군은 신기전, 비격진천뢰 등 화약 무기를 총동원하여 적을 포격했으며, 성 안의 부녀자들까지 앞치마로 돌을 날라 투척하는 '행주치마' 협동으로 맞섰습니다. 1만 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일본군은 결국 남쪽으로 후퇴했으며, 이 전투는 한산도 대첩, 진주성 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조선 육군 도원수와 역사적 유산

행주대첩의 공로로 권율은 조선 육군 최고 지휘관인 도원수로 승진했습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국 육군 연합작전과 의병과의 협력을 총지휘했으며,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599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훗날 선무공신 1등에 서훈되며 조선을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