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1368년 명군이 다가오자 원의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는 수도 대도 - 대도는 쿠빌라이 칸이 1267년부터 지은 원의 수도로, 지금의 베이징 자리에 있었습니다. 몽골 사람들은 '칸의 도시'라는 뜻으로 칸발리크라고 불렀습니다.바둑판처럼 반듯한 길과 네모난 성벽을 갖춘 계획도시였고, 대운하를 도시까지 끌어들여 남쪽의 곡식을 배로 실어 올 수 있게 했습니다. 초원의 지배자가 중국식 수도를 세운 셈입니다.마르코 폴로가 다녀갔다고 전하는 도시가 바로 이곳입니다. 1368년 명군이 다가오자 원의 마지막 황제는 이 도시를 버리고 초원으로 떠났고, 명은 이름을 북평으로 바꾸었다가 뒷날 다시 베이징이라 했습니다.(지금의 베이징)를 비우고 북쪽 초원으로 물러났습니다. 나라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조정이 통째로 옮겨 간 것이어서, 사람들은 이 나라를 원의 북쪽 조정이라는 뜻으로 북원이라 불렀습니다. 북원은 자기 나라를 여전히 대원(大元)이라 불렀고, 중국을 되찾는 것이 자기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초원으로 돌아간 대칸 - 카간(대칸)은 투르크어와 몽골어에서 황제에 해당하는 최고 통치자의 칭호로, '칸들의 칸'(왕 중의 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칭기즈 칸이 유목 부족들을 통합한 후 몽골 제국의 최고 군주를 가리키는 공식 직함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몽골 전설에 따르면 대칸은 푸른 하늘의 신인 '텡그리'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 '영원한 푸른 하늘'의 권위를 받아 지상을 다스린다고 여겨졌습니다.
토곤 테무르는 상도를 거쳐 응창까지 물러났다가 1370년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 조정은 칭기즈 칸 시절의 옛 수도 카라코룸 - 카라코룸은 1235년 오고타이 칸이 오르혼강 가에 세운 몽골 제국의 수도입니다. 지금의 몽골 하르호린 부근에 있었습니다.초원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도시를 먹여 살릴 곡식을 남쪽 농경지에서 실어 와야 했습니다. 이 약점 때문에 1261년 쿠빌라이가 보급로를 막자 성을 지키던 아릭 부케는 싸워 보지도 못하고 무너졌습니다.세계 곳곳에서 사람이 모여든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잡혀 온 금세공사 기욤 부셰가 은으로 만든 커다란 나무를 궁궐에 세웠는데, 나무의 관에서 포도주와 마유주가 흘러나왔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폐허만 남았고 그 돌로 지은 에르덴 조 사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을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초원으로 돌아간 북원은 오히려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1372년 명이 대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 초원 깊숙이 들어왔을 때, 북원의 장수 코케 테무르는 물러나는 척하며 명군을 사막 안쪽으로 끌어들인 뒤 크게 이겼습니다. 이 패배 뒤 명은 초원을 정복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만리장성 - 중국의 역사적인 북방 국경을 따라 유라시아 초원의 다양한 유목 세력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축조된 거대한 성곽 방어선입니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진나라, 한나라, 그리고 명나라에 이르기까지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해서 건설 및 보수되었습니다.이 거대한 성벽에 얽힌 가장 유명한 민담으로 '맹강녀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진나라 시기 가혹한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장성을 쌓다 숨진 남편의 소식을 들은 아내 맹강녀가 슬픔에 겨워 장성 밑에서 며칠 밤낮을 울부짖자, 그녀의 눈물과 통곡에 하늘이 감복하여 장성 수백 리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고 그 아래 묻혀 있던 남편의 유골이 드러났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만리장성은 거대한 문명의 방벽이자, 그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희생된 수많은 민초들의 눈물이 서려 있는 복합적인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을 고쳐 쌓으며 국경을 지키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대칸의 자리가 흔들리다
1388년 부이르호에서 명의 장수 남옥에게 기습을 당해 크게 무너진 것이 큰 고비였습니다. 대칸 토구스 테무르는 싸움터를 빠져나갔지만 얼마 뒤 몽골 안의 다른 세력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때부터 쿠빌라이의 후손이 대칸 자리를 잇던 흐름이 끊기고, 몽골은 동쪽의 타타르와 서쪽의 오이라트로 갈라져 서로 대칸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었습니다.
초원의 여걸 만두하이
몽골 사람들이 지금도 즐겨 이야기하는 전설의 주인공이 이 시기에 나옵니다. 15세기 후반, 만두하이 카툰이라는 여인은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일곱 살 소년 바투 뭉케를 지켜 대칸으로 세우고, 자신이 직접 갑옷을 입고 군대를 이끌어 흩어진 몽골 부족들을 다시 하나로 모았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전투 중에 말에서 떨어졌는데도 다시 올라타 싸움을 이어 갔다고 합니다. 이 소년이 자라서 몽골을 다시 통일한 다얀 칸입니다.
200년을 더 이어지다
북원은 명과 200년 넘게 이웃하며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말과 비단을 주고받는 무역을 했습니다. 1449년에는 오이라트의 지도자 에센이 명의 황제를 사로잡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몽골 대칸의 계보는 1635년, 마지막 대칸의 아들이 만주족에게 옥새를 넘길 때까지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