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917~971)은 5대 10국 시대 중국 남해안의 광동과 광서 지역을 지배했던 왕조입니다. 당나라 말기 절도사였던 유은의 기반을 바탕으로, 그의 동생 유암이 광주(번우)를 수도로 삼아 스스로 황제라 칭하며 세워졌습니다.
처음에는 나라 이름을 '대월'이라 했으나, 이후 한나라의 정통성을 잇겠다는 의지로 '대한(남한)'으로 바꾸었습니다. 남한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수도 광주는 당시 아랍 상인들과 동남아시아 각국이 드나드는 거대한 국제 항구였으며, 상아, 코뿔소 뿔, 공작 깃털 같은 진귀한 물건들이 활발하게 거래되었습니다. 특히 '청지'라 불리는 남해의 진주 채취 산업이 발달하여 막대한 부를 쌓았으며, 황제들은 이 부를 바탕으로 금과 진주로 장식된 화려한 궁전과 정원을 지어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렸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독특하고도 잔혹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남한의 황제들은 사대부들을 믿지 못해 조정의 관리들을 거세하여 내시(환관)로 만들었으며, 그 수가 무려 2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기이한 통치 방식과 더불어 매우 엄격하고 잔인한 형벌을 집행하여 공포 정치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내부적인 모순과 행정의 부패로 인해 점차 국력이 약해졌고, 971년 북방에서 내려온 송나라의 대군에게 항복하며 멸망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마지막 황제 유창은 도망칠 때 보석을 가득 실은 배를 준비했지만, 평소 믿었던 내시들이 보석만 챙겨 도망가는 바람에 빈손으로 송나라 군대를 맞이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