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주의 세종 시영은 양아버지 곽위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10년 동안 천하를 정복하고, 10년 동안 백성을 평안케 하며, 10년 동안 나라를 풍요롭게 하겠다'는 거대한 30년 계획을 세웠던 야심찬 지도자였습니다. 비록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짧은 통치 기간 동안 그 목표를 거의 달성해냈습니다.
954년, 즉위하자마자 북한과 요나라(거란)의 대규모 침공을 받은 그는 고평에서 운명적인 전투를 치렀습니다. 일부 장군들이 겁을 먹고 도망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시영은 직접 말을 타고 적진으로 돌격하여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고평 전투'의 승리는 그의 권위를 세우고 후주가 천하 통일의 주역이 될 것임을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시영은 용맹한 장수였을 뿐만 아니라, 화폐 제도를 정비하고 수로를 수리하는 등 경제 발전에도 힘쓴 현명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959년, 북방을 정벌하던 중 38세의 젊은 나이로 아쉽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닦아놓은 완벽한 기틀은 훗날 그의 믿음직한 장군이었던 조광윤이 송나라를 세워 천하를 통일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