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필리프 페탱

프랑스 육군 원수

프랑스 1856년 ~ 1951년 (나이: 95세)
"용기를 내라! 우리가 기필코 그들을 꺾을 것이다! (Courage! On les aura!)"
— 1916년 4월 10일 베르됭 참호 속의 프랑스 장병들에게 내린 일일 명령문.

생애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 1856~1951)은 제1차 세계 대전 최악의 소모전이었던 베르됭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병사들의 생명을 아껴 프랑스 국민적 영웅인 육군 원수에 올랐으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협력한 비시 정권의 수반이 되어 반역자로 생을 마친 인물입니다.

'화력이 사람을 죽인다': 군부의 이단아

북프랑스 파드칼레주의 농가에서 태어난 페탱은 생시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장교가 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군부는 병사의 정신력과 과감한 총검 돌격만 있으면 어떤 방어선도 뚫을 수 있다는 '극단적 공세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군대학 교관이었던 페탱은 현대의 기관총과 속사포 앞에서는 정신력이 아니라 '화력이 사람을 죽인다(Le feu tue)'고 단언하며, 철저한 포격 준비와 방어 화력 구축이 우선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 때문에 상부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은 그는 58세가 된 1914년 여름까지도 장군이 되지 못한 채 대령 계급으로 은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베르됭의 구원자와 1917년 항명 사태 수습

1914년 8월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붉은 바지를 입은 프랑스 보병들이 독일군 기관총 앞에서 수십만 명씩 쓰러지자, 페탱의 경고가 옳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단숨에 장군으로 승진한 그는 1916년 2월 독일 참모총장 에리히 폰 팔켄하인이 베르됭에 대공세를 퍼붓자 긴급히 방어 사령관으로 투입되었습니다.

페탱은 포병 지휘 체계를 통합하는 한편, 베르됭과 후방을 잇는 단 하나의 좁은 도로를 생명선으로 삼아 밤낮없이 14초마다 보급 트럭 한 대가 지나가도록 관리했습니다. 훗날 '신성한 길(Voie Sacrée)'이라 불린 이 보급로와 함께, 그는 한 사단이 전멸할 때까지 참호에 방치하던 기존 방식 대신 며칠만 싸우면 즉시 후방으로 빼내 휴식을 주는 '노리아(물레방아) 순환 교대제'를 도입해 베르됭을 끝내 지켜냈습니다.

1917년 봄 니벨 장군의 무모한 공세가 참패로 끝나고 프랑스군 전체 사단의 절반이 명령을 거부하는 대항명 사태가 터지자, 총사령관에 임명된 페탱은 대규모 총살 대신 직접 90개 사단을 찾아다니며 병사들의 고충을 들었습니다. 그는 전차와 압도적인 포병 지원 없이는 무모한 돌격을 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따뜻한 식사와 정기 휴가를 보장하여 무너진 프랑스군의 사기를 기적적으로 되살려냈습니다.

영웅의 비극적 몰락

1918년 종전과 함께 프랑스 육군 원수로 추대된 페탱은 전간기 내내 '병사들의 아버지'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았습니다. 그러나 84세의 고령이던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군의 기갑 부대에 프랑스가 무너지자 총리가 되어 독일과 휴전 협정을 맺고 남부 휴양 도시 비시에 권위주의 정권(비시 프랑스)을 세웠습니다. 프랑스를 보존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 나치 독일의 통제에 협력한 그는 1945년 해방 이후 열린 재판에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한때 그의 부하였던 샤를 드골 장군이 그의 고령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전공을 참작해 종신 금고형으로 감형했고, 페탱은 대서양의 외딴섬 일디외 요새 감옥에서 95세로 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