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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

러시아 제국 황제 (차르)

러시아 제국 1868년 ~ 1918년 (나이: 50세)
"약소국을 상대로 부당한 전쟁이 선포되었소. 러시아 국민의 분노는 엄청나며 나 역시 같은 마음이오. 머지않아 나에게 가해지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전쟁으로 이어질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 같소."
— 1914년 7월 29일 사촌인 독일 빌헬름 2세 황제에게 보낸 '윌리-니키 전보' 중에서.

생애

니콜라이 2세(Nicholas II, 1868~1918)는 로마노프 왕조의 제14대 군주이자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차르)입니다. 가정적으로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나 격변하는 시대에 전제 군주제를 고집하다가, 제1차 세계 대전의 총력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제국과 함께 몰락했습니다.

흔들리는 차르 체제와 라스푸틴

1894년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가 급서하자 26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른 니콜라이 2세는 황제의 절대 권력이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극동 팽창 정책 끝에 치른 러일 전쟁(1904~1905)에서 패배하고, 19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앞에서 빵과 개혁을 요구하던 비무장 노동자들에게 군대가 발포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 터지면서 제국은 거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여기에 황실 내부의 비극이 겹쳤습니다. 외아들 알렉세이 황태자가 피가 멈추지 않는 유전병인 혈우병을 앓고 있었는데, 시베리아 출신의 떠돌이 수도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기도로 황태자의 출혈을 멈추게 하자 알렉산드라 황후는 그를 맹신하게 되었습니다. 라스푸틴의 국정 개입은 귀족과 민중 모두에게 황실의 권위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윌리-니키 전보'와 1914년 총동원령

1914년 6월 사라예보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되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7월 최후통첩에 이어 선전포고를 감행하자, 슬라브 민족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니콜라이 2세는 깊은 고뇌에 빠졌습니다. 이미 1908년 보스니아 위기 때 한 차례 물러섰던 러시아가 이번에도 세르비아를 버린다면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잃을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 발발 직전인 7월 말, 니콜라이 2세('니키')는 외사촌 형제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윌리')와 영어로 된 개인 전보를 긴박하게 주고받으며(윌리-니키 전보) 파국을 막으려 시도했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독일을 자극하지 않으려 오스트리아 국경에만 부분 동원령을 내리려 했으나, 참모장군들이 '철도 시간표상 부분 동원을 하면 전체 기차 운행이 마비되어 총동원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며 강력히 간언하자, 결국 7월 30일 전면 총동원령에 서명했습니다. 이는 즉시 독일의 선전포고와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습니다.

전선 친정의 패착과 로마노프 왕조의 최후

개전 직후 러시아군은 동프로이센의 탄넨베르크에서 대패하고 1915년 폴란드 영토를 내주며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 2세는 1915년 9월 직접 군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 사령부로 떠나는 치명적인 실책을 범했습니다. 황제가 직접 군대를 지휘하자 이후 벌어지는 모든 패전의 책임이 차르 본인에게 돌아갔고, 황제가 비운 수도 페트로그라드의 행정은 황후와 라스푸틴의 손에 넘어가 마비되었습니다.

결국 1917년 3월(러시아 구력 2월), 극심한 기근과 물가 폭등, 전쟁의 참상에 지친 노동자들의 파업에 수도 수비대 군인들까지 합류하면서 2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전선에서 돌아오던 기차 안에서 장군들마저 퇴위를 권고하자 니콜라이 2세는 미련 없이 제위에서 물러났고, 304년간 이어진 로마노프 왕조는 무너졌습니다. 이후 10월 혁명으로 집권한 블라디미르 레닌의 볼셰비키 정권에 의해 우랄산맥 인근 예카테린부르크의 이파티예프 저택에 감금된 그는, 백군이 도시에 접근해 오던 1918년 7월 17일 새벽 지하실에서 황후 및 다섯 자녀와 함께 총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