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장군 / 튀르키예 초대 대통령
"나는 너희에게 공격을 명령하지 않는다. 죽을 것을 명령한다. 우리가 죽기까지 버티는 그 시간 동안 다른 부대와 지휘관들이 올라와 우리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1915년 4월 25일 갈리폴리 고지에서 탄약이 떨어진 오스만 제57보병연대 장병들에게 내린 명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갈리폴리 전역에서 연합군의 상륙을 막아낸 오스만 제국의 불패 명장이자, 제국 붕괴 이후 독립 전쟁을 이끌어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한 국부입니다.
오스만 제국의 항구 도시 살로니카(오늘날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난 그의 본래 이름은 '무스타파'였으나, 군사학교 시절 수학에 워낙 뛰어난 재능을 보여 선생님으로부터 '완벽함'을 뜻하는 '케말'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1905년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참모대학을 졸업한 그는 쇠퇴하는 오스만 제국을 근대화하려는 청년 장교 운동에 가담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리비아에서 이탈리아군과 싸웠고, 발칸 전쟁(1912~1913)에서는 갈리폴리 반도 방어 작전에 참여하며 이 지역의 지형을 손바닥 보듯 익혔습니다.
1915년 봄, 영국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이 주도한 영·프 연합군과 호주·뉴질랜드군(ANZAC)이 오스만 제국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의 갈리폴리 반도에 대규모 상륙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예비대인 제19사단을 이끌던 무스타파 케말 중령은 상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독단으로 전 병력을 이끌고 핵심 요충지인 추누크바이르 능선으로 달려갔습니다. 탄약이 바닥나 후퇴하던 오스만 병사들을 마주친 그는 총검을 꽂고 땅에 엎드리게 한 뒤, '나는 너희에게 공격을 명령하지 않는다. 죽을 것을 명령한다'라는 유명한 명령으로 고지를 사수해 연합군의 내륙 진격을 멈춰 세웠습니다.
같은 해 8월 최전선에서 반격을 지휘하던 중 날아온 포탄 파편이 그의 왼쪽 가슴을 강타했으나, 군복 주머니에 넣어둔 회중시계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을 막아주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갈리폴리 승리로 국민적 영웅인 '파샤(장군)'가 된 그는 이후 캅카스 전선과 시리아 전선에서도 연이어 군대를 지휘하며 오스만 제국에서 유일하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장군으로 전쟁을 마쳤습니다.
1918년 동맹국의 패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항복하고 연합군이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열강은 세브르 조약을 통해 튀르크인의 본토인 아나톨리아마저 조각조각 분할하려 했습니다. 이에 1919년 5월 흑해 연안의 삼순에 상륙한 무스타파 케말은 술탄 정부의 굴종을 거부하고 앙카라에 대국민회의를 세워 3년간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1923년 10월 29일, 그는 600년 역사의 오스만 술탄제를 폐지하고 튀르키예 공화국을 선포하여 초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는 세속주의 개혁을 단행하고, 아랍 문자 대신 배우기 쉬운 로마자 알파벳을 도입해 문맹률을 낮췄으며, 유럽 주요국보다도 앞서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을 부여했습니다. 1934년 튀르키예 의회는 그에게 '튀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Atatürk)'라는 성씨를 헌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