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
"조피, 죽으면 안 되오! 우리 아이들을 위해 살아남아 주시오!"— 사라예보에서 치명상을 입은 직후 아내 조피에게 남긴 마지막 절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이자 오스트리아-에스테 대공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 루트비히 대공의 장남으로 그라츠에서 태어난 그는 군사 훈련을 받으며 엄격한 귀족 교육을 이수했습니다. 1889년 사촌인 루돌프 황태자가 마이얼링 사건으로 급서하고, 1896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의 뒤를 이을 제국의 공식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신분 차이가 나는 보헤미아 귀족 가문의 조피 호테크 백작영애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황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에게 황위 계승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귀천상혼' 서약을 맺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정치적으로 그는 독일계와 헝가리계 중심의 이중 제국 체제가 슬라브계 민족들의 불만을 키워 제국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슬라브족을 포함한 모든 민족에게 동등한 자치권을 보장하는 연방제 모델인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구상을 준비했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 육군 총검열관 자격으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를 공식 방문했습니다. 군사 훈련을 참관한 뒤 시청으로 향하던 중 '검은 손' 비밀결사의 폭탄 테러를 모면했으나, 일정을 변경해 부상자들이 입원한 병원으로 가던 중 길을 잘못 든 차량 앞에서 19세의 세르비아 민족주의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저격을 받았습니다. 대공과 부인 조피는 그 자리에서 치명상을 입고 숨을 거두었으며, 이 충격적인 암살 사건은 7월 위기를 거쳐 한 달 만에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참화인 제1차 세계 대전으로 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