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건국하여 스스로 한나라 황실의 진정한 후계자임을 내세웠던 중국 남서부 촉(지금의 쓰촨성 방면) 지방의 국가입니다. 삼국 중 가장 영토가 작고 국력이 약했지만, 제갈량의 지휘 아래 끈질기게 북벌(북방 공격)을 시도했습니다.옛 민담과 시에 따르면 촉으로 향하는 험준한 산길은 너무나도 가파르고 위험하여 훗날 위대한 시인 이백조차 '촉으로 가는 길은 푸른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어렵다(촉도난)'고 노래했을 정도로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삼국 중 가장 강력했던 위나라는 조조의 아들 조비에 의해 정식으로 건국되었습니다. 인구가 가장 많은 북중국 평원을 차지하여 압도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했지만, 훗날 사마씨 가문에게 권력을 빼앗기게 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조조가 업성 땅에서 우연히 고대의 '구리로 만든 새(동작)'를 파내게 되었고, 이를 하늘의 뜻이라 여겨 자신의 천하 통일 야망을 상징하는 거대한 '동작대'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풍요로운 강남 지방(양쯔강 이남)을 다스리던 손권의 오나라(동오)는, 양쯔강이라는 거대한 자연 방패와 무적의 수군을 이용해 북쪽 위나라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삼국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국가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오나라의 존망이 걸렸던 적벽대전 당시 제갈량이 은밀한 도교 의식을 치러 기적처럼 '동남풍을 빌려왔고', 그 바람을 탄 오나라의 거대한 불화살 공격이 쇠사슬로 묶여있던 조조군의 대함대를 모조리 불태웠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나라는 초나라 항우를 물리친 유방(고조)이 세운 중국의 두 번째 통일 제국입니다. 400년 넘게 이어지며 중국 역사상 가장 눈부신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 종이가 발명되었고, 서양과 물건을 주고받는 무역로인 '실크로드(비단길)'가 열렸으며, 유교가 나라의 기본 가르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나라의 영향력이 워낙 커서,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민족은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부르고, 중국의 글자도 '한자(漢字)'라고 부른답니다.
사마염이 세운 서진은 기나긴 삼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 왕조입니다(266-316). 전설에 따르면 사마씨 가문의 부상은 하늘의 계시로 예견되었으며, 280년 오나라를 정복하고 거둔 통일은 천명을 다시 얻은 일로 칭송받았습니다. 하지만 통일의 기쁨도 잠시, '8왕의 난'이라 불리는 황족 간의 처절한 내분이 일어나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북방 유목 민족들에게 밀려 멸망하면서 다시 긴 혼란기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후한의 승상, 위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무장
위나라의 대장군, 촉한 정벌의 영웅
동오의 백전노장, 적벽대전의 결사대장
촉한의 초대 황제
천하무적의 맹장, 호로관의 사신
위나라의 대도독, 진나라의 기초를 닦은 거물 정치가
동오의 초대 황제
진나라의 대장군, 오나라 정복의 주역
동오의 대도독, 적벽대전의 영웅
촉한의 승상, 천재 군사 전략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