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세르비아

중세 수도: 크루셰바츠

역사

발칸반도의 떠오르는 별

중세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크고 강한 나라 중 하나였습니다. 12세기 후반에 독립된 나라를 세운 세르비아는 특히 14세기 스테판 두샨(Stefan Dušan) 황제 시절에 발칸반도의 넓은 땅을 차지하며 '세르비아 제국'을 선포했습니다. 당시 세르비아는 산에서 캐내는 은광을 바탕으로 아주 부유해졌고, 동로마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비잔티움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멋진 교회를 많이 지었습니다.

코소보 평원의 전설

14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의 작은 튀르크 부족에서 시작해, 동남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세 대륙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지배한 강력한 이슬람 제국입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을 장악하고 중요한 무역로를 통제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오스만의 위대한 꿈과 건국전설에 따르면, 13세기 후반 제국을 세운 오스만 1세는 어느 날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존경하는 이슬람 학자의 가슴에서 달이 떠올라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오더니, 배꼽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그 가지가 온 세상을 덮는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꿈을 오스만과 그의 후손들이 세상을 다스릴 거대한 제국을 세울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로 믿었습니다.콘스탄티노플 함락오스만 군대의 핵심은 엄격한 훈련을 받은 최정예 보병대 예니체리였습니다. 이들과 거대한 화약 대포를 앞세워, 1453년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천 년을 버텨온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역사적인 승리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고, 도시는 오스만의 새롭고 화려한 수도가 되었습니다.황금기를 이끈 쉴레이만 대제제국은 16세기 쉴레이만 1세(대제)의 통치 아래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할 정도로 유럽 깊숙이 영토를 넓힌 뛰어난 정복자였을 뿐만 아니라, 법을 훌륭하게 정비하고 예술을 사랑한 성군이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문화와 건축, 과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쇠퇴와 제국의 멸망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17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내부의 부패와 기술 발전의 정체로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등 강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세기에는 '유럽의 병자'라는 슬픈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에서 패배한 제국은 영토가 갈기갈기 찢기며 1922년에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도 아래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이 유럽으로 쳐들어오면서 세르비아는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여러 작은 나라로 갈라져 있던 세르비아의 영주들은 힘을 모아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과 맞서 싸웠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세르비아의 지도자 라자르(Lazar) 공은 천사로부터 '이 세상에서의 승리'와 '영원한 천국' 중 하나를 고르라는 제안을 받고 천국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전투 중에는 기사 밀로시 오빌리치(Miloš Obilić)가 항복하는 척하며 적의 진영에 들어가 오스만 술탄(무라트 1세)을 찔러 암살하는 엄청난 용기를 보여주기도 했죠. 두 나라의 지도자가 모두 목숨을 잃은 이 전투 이후, 세르비아는 결국 오스만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이야기는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나중에 세르비아가 다시 독립을 꿈꾸는 끈질긴 힘이 되었습니다.

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