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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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오스만 제국의 2대 베이(Bey)이자 국가의 기틀을 다진 군주

오스만 1281년경 – 1362년 (나이: 81세)
"유럽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라."
— 유럽으로의 진출(갈리폴리 점령)을 기념하며 후세에 남겨진 의의

생애

오르한 1세는 아버지가 물려준 작은 유목민 국가를 어엿한 왕국의 형태를 갖추도록 만들고, 오스만 역사상 처음으로 유럽 땅을 밟은 중요한 지도자입니다.

국가의 기틀을 다지다

오르한은 오스만 1세의 아들로 1281년경에 태어났습니다. 1326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무렵, 길고 길었던 포위 공격 끝에 마침내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 부르사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부르사를 첫 번째 정식 수도로 삼고, 단순히 전사들의 무리가 아닌 진짜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세금을 걷고, 국고를 만들고,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새겨진 은화를 찍어내며 정부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예니체리의 씨앗과 영토 확장

오르한은 영토를 더 넓히기 위해서는 규율 없는 유목민 전사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월급을 받는 정규 보병 부대를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훗날 오스만 제국을 최강으로 만든 군대인 '예니체리' 제도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는 니카이아(이즈니크)와 니코메디아(이즈미트) 등 비잔티움 제국의 중요 도시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아나톨리아 북서부 전체를 장악했습니다.

유럽 진출의 문을 열다

오르한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오스만 제국이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디디게 한 것입니다. 1354년 큰 지진이 일어나 갈리폴리 반도의 성벽이 무너지자, 그의 아들 쉴레이만 파샤가 이끄는 군대가 재빨리 바다를 건너 그곳을 차지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오르한은 이를 거절했고, 결국 이 좁은 땅은 오스만 제국이 이후 100년 넘게 발칸반도와 유럽으로 밀고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평생 전쟁과 국가 건설에 힘쓴 오르한은 1362년 세상을 떠났고, 부르사에 묻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