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의 발흥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옵니다. 젊은 오스만이 어느 날 신비로운 꿈을 꾸었는데, 그의 가슴에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그 가지를 온 세상으로 뻗어 웅장한 산과 강을 시원한 그늘로 덮었다고 합니다. 현자들은 이 꿈을 오스만의 후손들이 아주 넓은 제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풀이했고, 훗날 오스만 사람들은 이 꿈을 자신들의 위대한 운명이 시작된 순간으로 기억했습니다.
1299년경, 몽골의 침략으로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지배하던 셀주크 튀르크가 무너지자 이 지역은 여러 작은 나라(베이국)로 쪼개져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나톨리아 북서쪽 구석에서 오스만이라는 우두머리가 작은 나라를 세웠습니다. 오스만의 나라는 마침 힘이 쫙 빠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과 바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슬람 세계의 끄트머리에서 정복과 전리품을 찾아 모여든 자유로운 전사들인 '가지(Ghazi)'들에게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오스만이 이끄는 전투가 연달아 성공하자 수많은 전사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고, 오스만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정복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오스만의 아들 오르한은 1326년 아주 중요한 도시 부르사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땅을 뺏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고 자기 이름으로 돈을 찍어냈으며 훈련받은 직업 군대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354년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갈리폴리 요새를 차지하면서 좁은 바다를 건너 마침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발칸반도(유럽 남동부)에 마련한 이 발판은 오스만에게 끝없는 정복의 길을 열어주었고, 스스로 갈라져 끊임없이 다투던 기독교 세계 깊숙이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고 통치자를 뜻하는 '술탄'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무라트 1세는 1371년 마리차 강 전투에서 크게 이겨 발칸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이어서 1389년 코소보 평원에서 세르비아의 라자르 공이 이끄는 대규모 연합군과 맞붙었습니다. 이 코소보 전투는 너무나 치열해서 무라트 1세(전설에 따르면 세르비아 기사 밀로시 오빌리치가 항복하는 척 숨어들어 찔렀다고 합니다)와 라자르 공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도자가 죽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승리하여 발칸의 주인이 된 것은 오스만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가 이처럼 강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데려와 오직 술탄에게만 충성하도록 엄격하게 훈련시킨 정예 보병 부대인 '예니체리' 덕분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 1세는 전쟁터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이을드름(번개)'이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진격에 깜짝 놀란 유럽의 교황과 왕들은 1396년 헝가리와 프랑스 등 기독교 기사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십자군을 다뉴브 강가의 니코폴리스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만심에 빠져 있던 프랑스 중무장 기사들은 동맹을 기다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언덕 위로 돌격하다가 말들의 힘을 다 빼버렸고, 언덕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바예지드의 훈련된 군대에 포위되어 사로잡혔습니다. 이 '마지막 대십자군'은 이렇게 어이없는 참패로 끝이 났고,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마저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스만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유럽이 아니라 동쪽에서 나타난 훨씬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넓은 땅을 차지한 무적의 정복자 티무르였습니다. 1402년 두 황제는 앙카라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예지드 군대는 티무르의 뛰어난 전략에 말려들었고, 전투 도중 아나톨리아 병사 상당수가 티무르 편에서 싸우던 옛 지방 영주들에게로 돌아섰다. 바예지드 1세는 전투에서 져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겪었고 끝내 붙잡힌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왕좌를 두고 아들들이 싸우는 '공위 시대' 동안 오스만 제국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만은 수십 년 만에 다시 하나로 뭉쳐 이전보다 훨씬 강한 제국으로 부활했고,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선조들이 꾸었던 거대한 꿈을 완성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