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 훗날 오스만 제국으로 성장하는 작은 나라를 세운 변경의 전사로, 제국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의 발흥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옵니다. 젊은 오스만이 어느 날 신비로운 꿈을 꾸었는데, 그의 가슴에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그 가지를 온 세상으로 뻗어 웅장한 산과 강을 시원한 그늘로 덮었다고 합니다. 현자들은 이 꿈을 오스만의 후손들이 아주 넓은 제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풀이했고, 훗날 오스만 사람들은 이 꿈을 자신들의 위대한 운명이 시작된 순간으로 기억했습니다.
1299년경, 몽골의 침략으로 아나톨리아 - 소아시아라고도 불리는 서아시아의 거대한 반도로, 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에 해당합니다. 역사적으로 문명의 발상지이자 동서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히타이트, 로마, 비잔티움, 셀주크 제국 등 다양한 문명이 거쳐갔습니다. 십자군 전쟁 당시 서유럽의 군대들이 성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험난한 육로이기도 했습니다.(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지배하던 셀주크 튀르크가 무너지자 이 지역은 여러 작은 나라(베이국 - 베이국은 '베이'라고 불리는 우두머리가 다스리던 작은 나라, 곧 작은 영지를 뜻합니다. '베이'는 튀르크어로 '우두머리'나 '영주'라는 뜻입니다. 1200년대에 몽골의 공격으로 아나톨리아를 다스리던 셀주크 튀르크가 무너지자, 이 지역은 수십 개의 작은 베이국으로 쪼개졌습니다. 각 베이는 자기 땅과 군대를 다스렸고, 서로 싸우거나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이 작은 변경 베이국 가운데 하나가 오스만이라는 전사의 나라였습니다. 비잔티움 제국과 맞닿은 국경에 자리 잡은 덕분에 정복할 땅이 끊이지 않았고, 약 100년에 걸쳐 강대한 오스만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주 작은 나라도 위대해질 수 있음을 보여 준 셈입니다.)로 쪼개져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나톨리아 북서쪽 구석에서 오스만이라는 우두머리가 작은 나라를 세웠습니다. 오스만의 나라는 마침 힘이 쫙 빠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 -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천 년 넘게 로마 제국을 계승한 중세 제국입니다. 1453년 멸망할 때까지 기독교와 로마법의 수호자이자 고대 지식의 보존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동로마 제국)과 바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슬람 세계의 끄트머리에서 정복과 전리품을 찾아 모여든 자유로운 전사들인 '가지(Ghazi) - 가지(Ghazi)는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 등 이교도 국가와의 국경 지대에서 성전(지하드)에 참여한 자유로운 이슬람 전사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특히 13~14세기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튀르키예) 변방에서 크게 활약했습니다. 당시 몽골의 침략을 피해 서쪽으로 밀려난 수많은 튀르크계 유목민 전사들은 쇠퇴해가는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의 국경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인 열정과 더불어, 적의 땅을 정복하고 새로운 영토와 전리품을 얻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창립자인 오스만 1세 역시 이러한 가지 전사들의 지도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오스만이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자, 더 많은 전리품과 성공을 원했던 수많은 가지들이 그의 깃발 아래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의 용맹함과 기동력은 훗날 오스만 제국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들에게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오스만이 이끄는 전투가 연달아 성공하자 수많은 전사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고, 오스만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정복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오스만의 아들 오르한 - 오스만의 아들로, 부르사를 점령하고 제대로 된 정부와 군대를 세웠으며 오스만을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시켰습니다.은 1326년 아주 중요한 도시 부르사 - 아나톨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1326년 오스만 제국의 2대 군주 오르한이 점령한 뒤 제국의 첫 번째 주요 수도가 되었습니다. 부르사를 수도로 삼으면서 오스만은 단순한 유목 전사 무리를 넘어 정식 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비단길의 주요 종착지 중 하나로 무역과 상업이 크게 발달했습니다.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땅을 뺏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고 자기 이름으로 돈을 찍어냈으며 훈련받은 직업 군대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354년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갈리폴리 - 갈리폴리(튀르크어로 겔리볼루)는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쪽의 길고 좁은 반도에 있는 도시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가느다란 바닷길인 다르다넬스 해협에 맞닿아 있습니다. 갈리폴리를 차지한 쪽이 에게해와 마르마라해 사이를 오가는 배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은 언제나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1354년 지진으로 갈리폴리 요새의 성벽이 무너지자 오스만이 그 요새를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오스만은 유럽에 첫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은 교두보에서 오스만은 발칸으로 쏟아져 들어가 제국을 세우는 정복을 시작했습니다. 요새를 차지하면서 좁은 바다를 건너 마침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발칸반도(유럽 남동부)에 마련한 이 발판은 오스만에게 끝없는 정복의 길을 열어주었고, 스스로 갈라져 끊임없이 다투던 기독교 세계 깊숙이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고 통치자를 뜻하는 '술탄'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무라트 1세 - 발칸반도의 상당 부분을 정복하고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전사한 오스만의 위대한 술탄입니다.는 1371년 마리차 강 전투에서 크게 이겨 발칸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이어서 1389년 코소보 평원에서 세르비아 - 중세 발칸반도를 주름잡았던 강력한 기독교 국가의 라자르 공이 이끄는 대규모 연합군과 맞붙었습니다. 이 코소보 전투는 너무나 치열해서 무라트 1세(전설에 따르면 세르비아 기사 밀로시 오빌리치가 항복하는 척 숨어들어 찔렀다고 합니다)와 라자르 공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도자가 죽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승리하여 발칸의 주인이 된 것은 오스만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가 이처럼 강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데려와 오직 술탄에게만 충성하도록 엄격하게 훈련시킨 정예 보병 부대인 '예니체리 - 예니체리(Janissary)는 오스만 제국의 최고 통치자인 술탄을 지키는 최정예 보병 부대이자 근위대입니다. 14세기 무라트 1세 때 창설된 이 부대는 '데브시르메'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정복한 기독교 지역(주로 발칸반도)에서 어린 소년들을 징집하여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고, 아주 엄격한 군사 훈련과 학문 교육을 시켰습니다. 가족과 완전히 떨어져 오직 술탄만을 아버지로 섬기도록 길러진 이들은 술탄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했습니다. 고도의 훈련을 마친 예니체리는 활과 총 등 당시 최고 수준의 무기를 다루며 유럽에서 가장 무서운 정예 부대가 되었고, 오스만 제국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제국을 건설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덕분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 1세 - 빠른 진격으로 '번개'라는 별명을 얻었고, 유럽 십자군을 무찔렀으나 앙카라 전투에서 티무르에게 사로잡혔습니다.는 전쟁터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이을드름(번개)'이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진격에 깜짝 놀란 유럽의 교황과 왕들은 1396년 헝가리와 프랑스 등 기독교 기사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십자군을 다뉴브 강가의 니코폴리스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만심에 빠져 있던 프랑스 중무장 기사들은 동맹을 기다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언덕 위로 돌격하다가 말들의 힘을 다 빼버렸고, 언덕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바예지드의 훈련된 군대에 포위되어 사로잡혔습니다. 이 '마지막 대십자군'은 이렇게 어이없는 참패로 끝이 났고,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마저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스만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유럽이 아니라 동쪽에서 나타난 훨씬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넓은 땅을 차지한 무적의 정복자 티무르 - 1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를 통일하고 델리에서 아나톨리아까지 유라시아 대륙을 석권한 정복 군주로,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화려한 티무르 르네상스를 꽃피웠습니다.였습니다. 1402년 두 황제는 앙카라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예지드 군대는 티무르의 뛰어난 전략에 말려들었고, 전투 도중 아나톨리아 병사 상당수가 티무르 편에서 싸우던 옛 지방 영주들에게로 돌아섰다. 바예지드 1세는 전투에서 져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겪었고 끝내 붙잡힌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왕좌를 두고 아들들이 싸우는 '공위 시대' 동안 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의 작은 튀르크 부족에서 시작해, 동남유럽,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등 세 대륙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지배한 강력한 이슬람 제국입니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양과 서양의 교차점을 장악하고 중요한 무역로를 통제하며 번영을 누렸습니다.오스만의 위대한 꿈과 건국전설에 따르면, 13세기 후반 제국을 세운 오스만 1세는 어느 날 놀라운 꿈을 꾸었습니다. 존경하는 이슬람 학자의 가슴에서 달이 떠올라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오더니, 배꼽에서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그 가지가 온 세상을 덮는 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꿈을 오스만과 그의 후손들이 세상을 다스릴 거대한 제국을 세울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로 믿었습니다.콘스탄티노플 함락오스만 군대의 핵심은 엄격한 훈련을 받은 최정예 보병대 예니체리였습니다. 이들과 거대한 화약 대포를 앞세워, 1453년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천 년을 버텨온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역사적인 승리로 비잔티움 제국은 멸망했고, 도시는 오스만의 새롭고 화려한 수도가 되었습니다.황금기를 이끈 쉴레이만 대제제국은 16세기 쉴레이만 1세(대제)의 통치 아래 가장 눈부신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할 정도로 유럽 깊숙이 영토를 넓힌 뛰어난 정복자였을 뿐만 아니라, 법을 훌륭하게 정비하고 예술을 사랑한 성군이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오스만 제국은 엄청난 부를 누렸으며, 문화와 건축, 과학이 크게 발달했습니다.쇠퇴와 제국의 멸망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17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은 내부의 부패와 기술 발전의 정체로 서서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 등 강해지는 유럽 국가들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9세기에는 '유럽의 병자'라는 슬픈 별명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결국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에서 패배한 제국은 영토가 갈기갈기 찢기며 1922년에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이후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영도 아래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새롭게 탄생하게 됩니다.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만은 수십 년 만에 다시 하나로 뭉쳐 이전보다 훨씬 강한 제국으로 부활했고,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선조들이 꾸었던 거대한 꿈을 완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