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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9년 – 1402년

오스만 제국의 발흥

아나톨리아 변방의 작은 나라로 1299년경 시작한 오스만이 100여 년 만에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강국으로 성장한 과정이다. 무라트 1세바예지드 1세는 발칸을 정복하고 세르비아 세력과 유럽 십자군을 무찔렀으며 비잔티움의 수도를 포위했지만, 1402년 앙카라 전투에서 정복자 티무르에게 크게 패해 무너질 뻔했다가 다시 일어섰다.

위치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
교전국오스만 제국, 비잔티움 제국, 세르비아 제국, 불가리아 제2제국 등 발칸 제국, 십자군 연합(헝가리 왕국, 프랑스 왕국 등), 티무르 제국
주변국에피로스 전제군주국, 아테네 공국, 아카이아 공국, 베네치아 공화국, 테살리아

배경 및 맥락

14–15세기

격변하는 세계

이 시기는 낡은 강자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세력이 떠오르던 시대였다. 고대 로마를 이은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은 수도만 겨우 남을 만큼 쪼그라들어 있었다. 발칸의 기독교 왕국들 — 세르비아, 불가리아 등 — 은 서로 갈라져 자주 다투었다. 멀리 서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백년전쟁에 매여 있었다. 이렇게 분열된 세계로 오스만이 떠오르는 세력으로 걸어 들어와, 갈라진 경쟁자들을 하나씩 차례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

전개 과정

오스만의 발흥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전해져 내려옵니다. 젊은 오스만이 어느 날 신비로운 꿈을 꾸었는데, 그의 가슴에서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더니 그 가지를 온 세상으로 뻗어 웅장한 산과 강을 시원한 그늘로 덮었다고 합니다. 현자들은 이 꿈을 오스만의 후손들이 아주 넓은 제국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풀이했고, 훗날 오스만 사람들은 이 꿈을 자신들의 위대한 운명이 시작된 순간으로 기억했습니다.

1299년경, 몽골의 침략으로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튀르키예)를 지배하던 셀주크 튀르크가 무너지자 이 지역은 여러 작은 나라(베이국)로 쪼개져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나톨리아 북서쪽 구석에서 오스만이라는 우두머리가 작은 나라를 세웠습니다. 오스만의 나라는 마침 힘이 쫙 빠져 있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과 바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곳은 이슬람 세계의 끄트머리에서 정복과 전리품을 찾아 모여든 자유로운 전사들인 '가지(Ghazi)'들에게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오스만이 이끄는 전투가 연달아 성공하자 수많은 전사들이 앞다투어 모여들었고, 오스만은 이들을 하나로 묶어 거대한 정복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오스만의 아들 오르한은 1326년 아주 중요한 도시 부르사를 점령해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는 단순히 땅을 뺏는 것을 넘어 제대로 된 정부를 세우고 자기 이름으로 돈을 찍어냈으며 훈련받은 직업 군대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1354년에는 지진으로 무너진 갈리폴리 요새를 차지하면서 좁은 바다를 건너 마침내 유럽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발칸반도(유럽 남동부)에 마련한 이 발판은 오스만에게 끝없는 정복의 길을 열어주었고, 스스로 갈라져 끊임없이 다투던 기독교 세계 깊숙이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고 통치자를 뜻하는 '술탄'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무라트 1세는 1371년 마리차 강 전투에서 크게 이겨 발칸으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고, 이어서 1389년 코소보 평원에서 세르비아의 라자르 공이 이끄는 대규모 연합군과 맞붙었습니다. 이 코소보 전투는 너무나 치열해서 무라트 1세(전설에 따르면 세르비아 기사 밀로시 오빌리치가 항복하는 척 숨어들어 찔렀다고 합니다)와 라자르 공이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도자가 죽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승리하여 발칸의 주인이 된 것은 오스만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가 이처럼 강했던 이유는 어릴 때부터 데려와 오직 술탄에게만 충성하도록 엄격하게 훈련시킨 정예 보병 부대인 '예니체리' 덕분이었습니다.

무라트 1세의 아들 바예지드 1세는 전쟁터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고 해서 '이을드름(번개)'이라는 멋진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거침없는 진격에 깜짝 놀란 유럽의 교황과 왕들은 1396년 헝가리와 프랑스 등 기독교 기사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십자군을 다뉴브 강가의 니코폴리스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자만심에 빠져 있던 프랑스 중무장 기사들은 동맹을 기다리지 않고 저희들끼리 언덕 위로 돌격하다가 말들의 힘을 다 빼버렸고, 언덕 뒤에서 조용히 기다리던 바예지드의 훈련된 군대에 포위되어 사로잡혔습니다. 이 '마지막 대십자군'은 이렇게 어이없는 참패로 끝이 났고, 오스만이 콘스탄티노플마저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오스만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유럽이 아니라 동쪽에서 나타난 훨씬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바로 중앙아시아의 넓은 땅을 차지한 무적의 정복자 티무르였습니다. 1402년 두 황제는 앙카라에서 엄청난 규모의 전투를 벌였습니다. 바예지드 군대는 티무르의 뛰어난 전략에 말려들었고, 전투 도중 아나톨리아 병사 상당수가 티무르 편에서 싸우던 옛 지방 영주들에게로 돌아섰다. 바예지드 1세는 전투에서 져 포로로 잡히는 굴욕을 겪었고 끝내 붙잡힌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왕좌를 두고 아들들이 싸우는 '공위 시대' 동안 오스만 제국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스만은 수십 년 만에 다시 하나로 뭉쳐 이전보다 훨씬 강한 제국으로 부활했고,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선조들이 꾸었던 거대한 꿈을 완성하게 됩니다.

주요 사건

1299년

오스만 국가의 건국

비잔티움 국경에 가까운 작은 변경 마을에서, 가지의 우두머리 오스만이 무너져 가던 셀주크 질서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의 베이국을 세웠다. 비잔티움 제국의 국경과 바로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이웃의 약한 곳을 공격해서 전리품(전쟁에서 얻은 물건들)을 얻기 좋았다. 그 덕분에 아나톨리아 곳곳에서 전사들이 계속해서 몰려들었고, 오스만의 작은 나라는 점점 무서운 정복 국가로 커져 갔다.

휴전 / 공백기 (27년)
1326년

부르사 점령

오스만은 부르사의 튼튼한 성벽을 정면으로 치는 대신, 여러 해 동안 도시를 에워싸 식량을 끊으며 항복을 기다렸다. 오르한은 이 부유한 교역 도시를 수도로 삼았고, 갓 태어난 나라는 처음으로 진짜 정부의 자리와 국고, 화폐를 갖추게 되었다. 약탈 무리에서 어엿한 왕국으로 자라나는 데 꼭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결과오스만 승리
휴전 / 공백기 (45년)
1371년

마리차 강 전투

오스만을 유럽에서 몰아내려 세르비아 영주들의 대군이 진격했지만, 강가에 방심한 채 진을 쳤다. 오스만 기습대가 한밤중에 잠든 진영을 덮치자 병사들은 공포에 빠졌고, 많은 이가 마리차 강을 건너 달아나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 이 승리로 세르비아의 저항이 부서지며 발칸 전체가 오스만의 진격 앞에 활짝 열렸다.

결과오스만 승리
휴전 / 공백기 (18년)
1389년

코소보 전투

술탄 무라트 1세는 라자르 공이 이끄는 세르비아 연합과 코소보 평원에서 맞붙었다. 두 군대는 온종일 정면으로 부딪히며 치열하게 싸웠다. 전설에 따르면 세르비아 기사 밀로시 오빌리치가 항복하는 척 막사로 숨어들어 무라트를 단검으로 찔러 암살했다고 한다. 오스만 군대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포로로 잡혀 있던 세르비아의 지도자 라자르 공을 곧바로 처형했다. 두 지도자가 모두 죽음을 맞이했지만 전장을 지킨 것은 오스만이었다. 이 전투로 세르비아의 힘이 꺾였고, 두 민족 모두에게 전설적인 상징으로 남았다.

결과오스만 승리(양측 지도자 전사)
휴전 / 공백기 (7년)
1396년

니코폴리스 전투

오스만 제국이 이미 점령해 요새화한 주요 거점 니코폴리스를 탈환하기 위해, 헝가리·프랑스 등의 기사들로 이루어진 대십자군이 도시를 포위했다. 공을 세우려 안달이 난 프랑스 기사들은 오스만의 유인 전술에 속아 저희들끼리 언덕 위로 무작정 돌격해 앞줄을 뚫었지만, 언덕 뒤에서 기다리던 바예지드의 정예 예비 병력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결국 지친 상태로 겹겹이 포위된 십자군은 크게 패배했고, 중세 유럽의 '마지막 대십자군' 원정은 이렇게 참담하게 막을 내렸다.

결과오스만 승리
휴전 / 공백기 (6년)
1402년

앙카라 전투

바예지드 1세는 중앙아시아의 정복자 티무르와 앙카라 부근에서 맞붙었다. 티무르가 물길을 막아 놓은 탓에 오스만군은 한여름 더위 속에서 목마르고 지쳐 있었다. 전투 도중 바예지드의 아나톨리아 병사 상당수가 티무르 편에서 싸우던 옛 지방 영주들에게로 돌아섰다. 오스만군은 무너졌고 바예지드는 사로잡혔는데 — 포로가 된 유일한 술탄이었다 — 제국은 10년에 걸친 내전으로 빠져들었다.

결과티무르 승리

역사 퀴즈

1 / 5

오스만의 작은 베이국이 큰 정복 국가로 성장하기에 그토록 알맞은 곳이었던 까닭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