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년, 흉노족의 지도자 유원이 '한조(Han-Zhao)'를 세우면서 5호 16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는 서진 제국이 황족들 사이의 권력 싸움으로 국력이 매우 약해진 시기였습니다. 결국 311년과 316년, 한조의 군대가 서진의 수도인 낙양과 장안을 차례로 점령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사건을 '영가의 난'이라고 부르며, 흉노족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거대한 승리였지만, 서진에게는 제국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북쪽 땅은 여러 민족이 나라를 세우고 주도권을 다투는 역동적인 역사의 장이 되었습니다.
한조가 무너진 뒤, 장군이었던 석륵이 319년 '후조(Later Zhao)'를 세웠습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흩어졌던 북쪽 땅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시 통일하며 한동안 강력한 위세를 떨쳤습니다. 하지만 349년 강력한 황제였던 석호가 죽은 뒤, 후조는 처절한 권력 다툼으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이 틈을 타 350년 한족 장군 염민(Ran Min)이 반란을 일으켜 거대한 민족 갈등이 폭발했고, 중원은 한동안 주인이 없는 극심한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대혼란 속에서 351년경 동쪽에서 선비족이 세운 전연(Former Yan)과 서쪽에서 저족이 세운 전진(Former Qin)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이런 분열의 시대에 전진(Former Qin)의 부견 황제와 그의 영리한 신하 왕맹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전진을 대표하는 핵심 인물들로, 민족과 상관없이 백성들을 공평하게 보살폈고 전진을 북쪽에서 가장 강력하고 안정된 나라로 키워냈습니다. 370년, 왕맹이 이끄는 전진의 군대는 최대의 경쟁국이었던 동쪽의 전연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어 376년까지 서쪽의 전량과 북쪽의 대나라까지 모두 정복하며, 부견 황제는 마침내 수십 년 만에 북쪽 땅을 하나로 묶는 통일의 과업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명재상 왕맹이 세상을 떠난 뒤, 부견은 자신의 막강한 군사력만 믿고 지나친 자신감에 빠졌습니다. 그는 아직 나라의 기틀이 완벽하지 않다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남은 동진까지 정복해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는 87만 평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남쪽을 향하며 '병사들이 채찍만 던져도 양쯔강 물줄기를 막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383년, 두 나라는 비수라는 강가에서 운명적으로 마주쳤습니다. 동진의 지략과 전진 제국 내부의 분열로 인해 전진의 90만 대군은 허망하게 패퇴했습니다. 이 패배는 전진 제국의 급격한 붕괴로 이어졌으며, 천하는 다시 분열되었습니다.
전진 제국이 무너지는 혼란 속에서, 과거 전연의 황족이자 전진의 장수였던 모용수(Murong Chui)가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는 384년 흩어진 모용부를 결집하여 후연(Later Yan)을 건국했고, 화북의 동쪽 지방을 빠르게 장악하며 강력한 패권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후연의 등장은 화북의 지배권을 놓고 새롭게 떠오르는 북위(Northern Wei)와 피할 수 없는 정면 대결을 예고하는 서막이 되었습니다.
비수대전 이후 다시 대혼란에 빠진 화북에서, 전진에 의해 멸망했던 대(Dai)나라의 왕손 탁발규(Tuoba Gui)가 북쪽 끝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제국이 무너지자 그는 386년 흩어진 부족민들을 이끌고 옛 영토를 되찾아 나라를 재건한 뒤 이름을 북위(Northern Wei)로 바꿨습니다. 이것이 훗날 화북을 통일할 거대한 제국의 시작이었습니다. 북위는 차근차근 힘을 키우며 동쪽의 강자 후연과 대립했고, 395년 참합피 전투에서 후연의 대군을 궤멸시키며 마침내 화북의 패권을 거머쥐었습니다. 통일의 과업은 탁발규의 뒤를 이은 그의 손자 태무제(탁발도)에 의해 마침내 완성되었습니다. 그는 439년에 마지막으로 남은 북량까지 정벌하며 130년 넘게 이어진 5호 16국 시대를 끝맺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