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 - 남북조 시대(420년~589년)는 5호 16국 시대 이후 중국이 유송을 비롯한 남쪽 왕조들과 북위를 중심으로 한 북쪽 왕조들로 나뉘어 대립한 시기입니다. 북조에서는 선비족 등 유목 민족의 한화(漢化)가 진행되었고, 남조에서는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었으며, 589년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키며 끝이 났습니다.는 북위 - 북위는 5호 16국 시대에 선비족 탁발부가 건국한 왕조로, 3대 황제 태무제 시기에 경쟁국들을 모두 정복하고 화북 지역을 완전히 통일했습니다. 이로써 대혼란의 16국 시대를 끝맺고 남북조 시대의 북조를 열었습니다. 선비족 탁발부에게는 먼 옛날 조상들이 북쪽 끝의 거대한 동굴(가선동)에서 태어나 신비로운 동물의 인도를 받아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건국 신화가 전해 내려오며, 이는 그들이 중원을 다스릴 운명을 타고났음을 상징합니다.가 화북을 통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북위와 국경을 맞댄 남조의 유송 - 유송은 남북조 시대 강남에 세워진 남조의 첫 번째 왕조로, 동진으로부터 권력을 이어받았습니다. 화북을 통일한 북위와 대립하며 강남의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Liu Song)은 한족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강남 지역을 방어했습니다. 450년, 북위의 태무제가 대규모 기병을 이끌고 남조를 침공하여 양쯔강 - 양쯔강 혹은 장강(長江)은 아시아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중국 역사,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 강은 '천험의 요새'라고 불리며 북조의 강력한 기병대가 남하하는 것을 막아주는 천연 방어선 역할을 했습니다. 589년 수나라가 거대한 함대를 앞세워 이 강을 도하하기 전까지 장강은 남조 왕조들의 생명줄과 같았습니다. 북안까지 이르는 끔찍한 파괴를 자행했습니다. 이 대규모 전쟁을 통해 북조는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지만 남조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북조의 북위 제국은 내부의 불만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효문제의 극단적인 한화 정책 - 한화 정책(漢化政策)은 비한족 계열의 유목 민족들이 한족의 언어, 복장, 성씨, 정치 체제 및 유교적 가치관을 받아들여 동화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북위의 효문제가 추진했으며,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하고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으나 유목 민족 고유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세력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에서 소외된 변방의 선비족 군인들이 523년 '육진의 난'을 일으켰고, 이 거대한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위는 결국 동위(이후 북제 - 북제는 위진남북조 시대 북조의 왕조 중 하나로 동위를 계승했습니다. 막강한 정예 기병대를 보유하여 힘이 강했으나, 황실의 잔인함과 내부 부패로 인해 정치가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결국 577년 서쪽의 경쟁국인 북주에 의해 멸망했습니다.)와 서위(이후 북주 - 북주는 위진남북조 시대 북조의 왕조 중 하나로 서위를 계승했습니다. 부병제(Fubing System)라는 강력한 군사 제도를 통해 정예병을 육성했으며, 무제의 영도 아래 577년 라이벌인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통일했습니다. 이는 이후 수나라가 중국 전체를 통일하는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라는 두 개의 나라로 쪼개졌습니다. 534년 무렵부터 두 나라는 화북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이 처절한 다툼을 벌였습니다.
북조가 분열되어 싸우는 동안 남조의 양(Liang)나라는 무제(Emperor Wu)의 통치 아래 잠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548년, 북조에서 투항해 온 장군 후경 - 북조에서 투항해 온 뒤 양나라를 상대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강남 지역을 초토화하고 남조의 국력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뜨린 잔인한 무장입니다.(Hou Jing)이 일으킨 '후경의 난'으로 인해 남조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후경의 반란군은 수도 건강(난징)을 포위하고 무제를 굶겨 죽였으며 강남의 부유한 도시들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남조의 국력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화북에서는 서위가 기틀을 잡은 후 북주(Northern Zhou) 왕조로 진화했습니다. 북주의 무제는 '부병제 - 부병제는 서위에서 시작되어 북주 시대에 완성된 군사 제도입니다.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나면 직접 무기를 챙겨 전장에 나가는 '병농일치'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부병으로 선발된 가문은 세금을 면제받는 대신 군 복무를 수행했으며, 이 강력한 군사 조직은 수나라와 당나라 초기 제국 팽창의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습니다.(Fubing)'라는 강력한 군사 제도를 도입하여 막강한 정예병을 키워냈습니다. 마침내 577년, 북주의 규율 잡힌 군대는 사치와 부패에 빠져 있던 동쪽의 경쟁국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이것은 남조 정벌을 위한 거대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581년, 화북을 통일한 북주의 대승상이자 군부의 실력자였던 양견(Yang Jian)이 어린 황제에게서 제위를 빼앗고 스스로 황제(문제)에 올라 수(Sui)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양견은 매우 실용적이고 치밀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빠르게 경제를 안정시켜 군수 물자를 비축하고, 양쯔강 일대에서 거대한 전함들을 극비리에 건조하며 남조의 마지막 국가인 진(Chen)나라를 정복할 완벽한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588년, 마침내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의 50만 대군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양쯔강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는 양쯔강이라는 천혜의 방어선만 믿고 술과 음악에 빠져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수나라의 전함들은 강폭의 장애물을 부수고 거침없이 도하했고, 결국 589년 수도 건강이 함락되었습니다. 우물에 숨어 있던 진숙보가 사로잡히면서, 무려 300년에 달하는 끔찍한 분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국은 다시 거대한 하나의 통일 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