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조 시대는 북위가 화북을 통일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습니다. 북위와 국경을 맞댄 남조의 유송(Liu Song)은 한족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강남 지역을 방어했습니다. 450년, 북위의 태무제가 대규모 기병을 이끌고 남조를 침공하여 양쯔강 북안까지 이르는 끔찍한 파괴를 자행했습니다. 이 대규모 전쟁을 통해 북조는 막강한 군사력을 과시했지만 남조를 완전히 정복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북조의 북위 제국은 내부의 불만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효문제의 극단적인 한화 정책에서 소외된 변방의 선비족 군인들이 523년 '육진의 난'을 일으켰고, 이 거대한 반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북위는 결국 동위(이후 북제)와 서위(이후 북주)라는 두 개의 나라로 쪼개졌습니다. 534년 무렵부터 두 나라는 화북의 주도권을 놓고 끊임없이 처절한 다툼을 벌였습니다.
북조가 분열되어 싸우는 동안 남조의 양(Liang)나라는 무제(Emperor Wu)의 통치 아래 잠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548년, 북조에서 투항해 온 장군 후경(Hou Jing)이 일으킨 '후경의 난'으로 인해 남조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습니다. 후경의 반란군은 수도 건강(난징)을 포위하고 무제를 굶겨 죽였으며 강남의 부유한 도시들을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이 끔찍한 사건으로 남조의 국력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쇠퇴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화북에서는 서위가 기틀을 잡은 후 북주(Northern Zhou) 왕조로 진화했습니다. 북주의 무제는 '부병제(Fubing)'라는 강력한 군사 제도를 도입하여 막강한 정예병을 키워냈습니다. 마침내 577년, 북주의 규율 잡힌 군대는 사치와 부패에 빠져 있던 동쪽의 경쟁국 북제를 멸망시키고 화북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이것은 남조 정벌을 위한 거대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581년, 화북을 통일한 북주의 대승상이자 군부의 실력자였던 양견(Yang Jian)이 어린 황제에게서 제위를 빼앗고 스스로 황제(문제)에 올라 수(Sui)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양견은 매우 실용적이고 치밀한 군주였습니다. 그는 빠르게 경제를 안정시켜 군수 물자를 비축하고, 양쯔강 일대에서 거대한 전함들을 극비리에 건조하며 남조의 마지막 국가인 진(Chen)나라를 정복할 완벽한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588년, 마침내 수나라의 50만 대군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양쯔강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습니다.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는 양쯔강이라는 천혜의 방어선만 믿고 술과 음악에 빠져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수나라의 전함들은 강폭의 장애물을 부수고 거침없이 도하했고, 결국 589년 수도 건강이 함락되었습니다. 우물에 숨어 있던 진숙보가 사로잡히면서, 무려 300년에 달하는 끔찍한 분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국은 다시 거대한 하나의 통일 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