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년, 서진 - 사마염이 세운 서진은 기나긴 삼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 대륙을 하나로 통일한 왕조입니다(266-316). 전설에 따르면 사마씨 가문의 부상은 하늘의 계시로 예견되었으며, 280년 오나라를 정복하고 거둔 통일은 천명을 다시 얻은 일로 칭송받았습니다. 하지만 통일의 기쁨도 잠시, '8왕의 난'이라 불리는 황족 간의 처절한 내분이 일어나 국력이 급격히 약해졌고, 결국 북방 유목 민족들에게 밀려 멸망하면서 다시 긴 혼란기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은 오나라를 정복하며 마침내 천하를 하나로 통일했습니다. 무제 사마염 - 삼국시대를 통일하고 서진을 건국했으나, 말년의 방종과 정책적 실책으로 제국의 몰락을 초래한 서진의 초대 황제입니다.은 정무에 힘썼으나, 통일 이후 점차 사치와 향락에 빠졌고 후계자 문제와 국경 안으로 들어온 유목 민족들에 대한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사마염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인 혜제 사마충 - 서진의 2대 황제로, '곡식이 없으면 고기 죽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로 유명한 비운의 군주입니다.이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혜제는 지적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여 나라를 이끌어갈 능력이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정의 실권은 그의 아내인 가남풍 황후 -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서진의 황후로, '팔왕의 난'이라는 대재앙을 촉발시킨 장본인입니다.에게 넘어갔고, 그녀의 지나친 권력욕은 결국 황실 내부의 처절한 내분인 '팔왕의 난 - 291년부터 306년까지 서진 황실의 제왕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벌인 처절한 내전입니다. 16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으로 국력은 바닥났고, 이는 결국 북방 유목 민족들이 침입하는 '영가의 난'과 서진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으로 이어졌습니다. 16년 동안 황족들이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면서 나라는 황폐해졌고, 중앙 정부의 권위와 군사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북쪽 국경 안에 정착해 살던 유목 민족들이 일어났습니다. 흉노 - 묵특 선우에 의해 강력한 제국을 형성한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 연맹체.족의 지도자였던 유원 - 한조(전조)를 건국하며 5호 16국 시대의 서막을 연 흉노족의 지도자입니다.은 스스로 한나라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서진의 통제력은 삽시간에 무너졌습니다.
311년, 유목 민족의 연합군이 수도 낙양을 함락시키고 혜제를 사로잡는 '영가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5년 뒤인 316년에는 남은 거점이었던 장안마저 무너지면서 서진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살아남은 황족들과 소수 세력들은 양쯔강 너머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 건강 - 건강은 위진남북조 시대 동진과 이후 남조 왕조들의 수도였던 도시로, 현재의 난징(남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삼국시대 오나라의 수도였을 때는 '건업'이라 불렸으나, 서진 시기에 '건강'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서진 멸망 후 한족 세력이 남쪽으로 내려와 세운 동진의 중심지가 되면서, 북방 민족의 침입에 맞서 한족의 전통과 화려한 강남 문화를 지켜낸 상징적인 도시이기도 합니다.(현재의 난징)을 수도로 삼아 동진 - 서진이 유목민들에게 멸막하자 사마씨 가문이 남쪽으로 내려와 세운 나라로, 강남 지방의 화려한 문화를 꽃피운 왕조입니다. 서예의 성인이라 불리는 왕희지와 화가 고개지가 활약했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도연명이 쓴 '도화원기(무릉도원)' 속의 신비로운 마을도 이때 어딘가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북쪽의 전란을 피하고 싶었던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비수대전의 기적 같은 승리는 중국 역사의 흐름을 지킨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을 세웠습니다. 반면, 화북 지역을 차지한 유목 민족들은 제각기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는데, 이를 5호 16국 시대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