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반, 당나라는 찬란한 전성기를 누렸으나 현종이 정사를 돌보지 않으면서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북방의 실력자 안록산은 16살이나 어린 양귀비의 환심을 사 양아들을 자처하며 이례적인 총애를 받았습니다. 양귀비가 거구의 안록산을 아기처럼 목욕시키는 '세아' 의식을 행할 정도로 둘의 관계는 밀접했으며, 이를 통해 안록산은 황궁을 자유롭게 출입하며 막강한 권력을 쌓았습니다. 이러한 안록산의 성장은 재상 양국충과의 치명적인 권력 다툼으로 번졌습니다. 결국 양국충이 안록산의 측근들을 체포하며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자, 정치적 위기에 몰린 안록산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755년 말, 안록산은 마침내 '간신 양국충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반란의 칼날을 뽑아 들었습니다. 오랜 평화로 인해 당나라의 중앙군은 형편없이 약해져 있었고, 모든 정예병은 국경의 절도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외중내경'의 상태였습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안록산의 정예병들은 거침없이 남하하여 순식간에 낙양을 점령했고, 안록산은 스스로 '대연'의 황제라 칭했습니다.
반란군이 장안을 향해 진격하자, 당 현종은 험준한 산세로 둘러싸인 촉(사천) 땅으로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피난 도중 마위역에서 황실 친위대가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망친 양국충을 처단하고 현종이 총애하던 양귀비의 죽음을 강요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 이후 당나라 지휘부는 중대한 갈림길에 섰습니다. 현종은 계속해서 안전한 사천으로 가려 했지만, 태자 이형은 주변의 권유와 백성들의 지지에 힘입어 도망치는 대신 끝까지 남아 제국을 되찾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현종은 사천으로 향했고, 태자는 북서쪽의 국경 요새인 영무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곳에서 태자는 스스로 당 숙종으로 즉위하여 반격의 새로운 중심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당나라는 수도를 잃고 행정 체계가 마비된 절망적인 상태였으나, 영무에 세워진 새로운 조정은 흩어진 군사들을 모으고 위구르족에게 지원을 요청하며 반격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란이 장기화되면서 반란군 지도부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안록산은 심각한 비만과 당뇨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어가고 있었으며, 그 고통 때문에 성격이 극도로 포악해졌습니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시종들과 장군들을 매질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자주 매를 맞으며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장남 안경서는 아버지가 다른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결국 757년 초, 안경서는 평소 안록산에게 구박받던 내시 이정아와 공모하여 잠든 안록산을 살해했습니다. 거구였던 안록산은 배에 칼을 맞고 내장이 쏟아질 때까지 옆에 둔 칼조차 찾지 못한 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안록산이 죽은 뒤 반란군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습니다. 한때 당나라에 항복했던 사사명은 다시 반기를 들고 세력을 키워 안경서의 지위를 위협했습니다. 759년, 안경서가 업성에서 당나라 대군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빠지자 사사명은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포위를 풀었습니다. 하지만 승리 직후, 사사명은 안경서와 그의 형제들을 자신의 진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곳에서 사사명은 안경서가 아버지를 죽인 '천인공노할 패륜'을 저질렀다고 꾸짖으며 그들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사사명은 안록산의 죽음을 명분 삼아 스스로 대연의 황제 자리에 올랐으며, 이로써 전쟁은 더욱 잔혹하고 치열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반란군의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안경서를 죽이고 권력을 잡은 사사명 역시 뛰어난 장군이었으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그는 작은 실수라도 저지른 부하들을 가차 없이 처형하여 군 내부의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사사명 또한 큰아들 사조의 대신 막내아들을 아꼈으며, 급기야 사조의를 죽이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사조의가 761년 군사를 일으켜 아버지를 교살했습니다. 두 번이나 반복된 아들의 아버지 살해 사건은 반란군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습니다. 결국 당나라는 위구르족의 지원과 곽자의, 이광필 같은 명장들의 활약에 힘입어 763년 분열된 반란군을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당나라의 황금기는 막을 내렸고 지방 절도사들이 득세하는 혼란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