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반, 당나라는 현종 시기 경제적 번영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 유민 출신의 명장 고선지는 '안서절도사(안서사절)'로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의 여러 나라를 복속시키며 당나라의 영토를 중앙아시아 깊숙이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거침없는 기세는 실크로드의 핵심 거점인 석국(타슈켄트) 근처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동양과 서양의 거대 세력이 마주하는 긴장감이 고조되었습니다.
750년, 고선지는 석국과 평화 조약을 맺어 안심시킨 뒤, 곧바로 조약을 깨고 석국을 기습 공격하는 비정한 전술을 펼쳤습니다. 석국의 국왕 차비시는 저항을 포기하고 성문을 열어 항복했으나, 고선지는 이를 무시하고 국왕을 체포했으며 수도를 철저히 약탈해 수많은 금은보화를 빼앗았습니다. 결국 압송된 석국 왕은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참수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나라의 서역 지배력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항복한 왕을 처형하고 조약을 어긴 당나라의 잔혹함에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은 큰 충격을 받고 등을 돌렸습니다. 간신히 탈출한 석국의 왕자는 주변 서역 국가들과 당시 신흥 강국이었던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대식국)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는 751년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탈라스 전투의 발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751년, 두 제국의 대군은 탈라스 강 유역에서 마주쳤습니다. 3만에서 7만 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와, 많게는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이슬람 연합군이 맞붙었습니다. 숫자는 당나라가 적었지만,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고 무려 5일 동안이나 팽팽하고 치열한 대결을 벌였습니다.
전투의 승패는 예상치 못한 배신으로 갈렸습니다. 당나라의 용병으로 참전했던 유목 민족 카를루크족이 갑자기 아바스 왕조 편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카를루크족은 평소 당나라의 강압적인 중앙아시아 지배 방식과 고선지 장군의 무자비한 처사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특히 석국 왕의 처형을 보며 당나라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당나라 군대의 뒤를 기습하면서 당나라는 뼈아픈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 때문입니다. 당나라는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고, 불교와 도교를 믿던 이 지역은 영원히 이슬람 문화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포로로 잡혀간 당나라 기술자들을 통해 중국의 '제지술(종이 만드는 법)'이 서양으로 전해져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