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반, 당나라 -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금시대라 불리며, 전 세계의 문화가 실크로드를 통해 모여들었던 화려한 제국이었습니다. 당나라 황제들이 도교를 만든 '노자'의 후손이라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이 시기에는 이백, 두보와 같은 시인들이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고, 서유기 속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모험도 바로 이때의 실제 승려 현장의 기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도 장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번화하고 앞선 문명을 가진 도시로, 모든 길은 장안으로 통한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번성했습니다.는 현종 시기 경제적 번영과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구려 유민 출신의 명장 고선지 -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 최고의 서역 정벌 명장이 되었으나,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고 훗날 안록산의 난 중에 억울하게 처형당한 인물입니다.는 '안서절도사 - 당나라 시기 서역의 핵심 요충지인 '안서사진(쿠차, 호탄, 카슈가르, 카라샤르)'을 관할하던 최고 군사 직책입니다. 실크로드의 무역로를 보호하고 서방 제국들로부터 국경을 방어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습니다. 고구려 유민 출신의 명장 고선지가 이 직책을 맡아 파미르 고원을 넘는 대원정과 탈라스 전투를 이끌었습니다.(안서사절)'로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의 여러 나라를 복속시키며 당나라의 영토를 중앙아시아 깊숙이 확장했습니다. 이러한 거침없는 기세는 실크로드 - 실크로드(비단길)는 아주 먼 옛날 동양과 서양을 이어주던 길고 긴 무역로(물건을 사고파는 길)입니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아주 비싸고 예쁜 '비단'이 서양으로 많이 전해졌기 때문에 '비단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상인들은 낙타를 타고 사막과 산을 넘으며 향신료나 보석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나라의 종교나 새로운 기술,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았습니다. 훗날 당나라나 몽골 제국 같은 거대한 나라들은 이 길을 안전하게 지키고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와 힘을 얻었답니다.의 핵심 거점인 석국(타슈켄트 -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지역에 위치했던 고대 오아시스 국가로, 실크로드의 핵심 교역로를 장악하며 번영했습니다. 중국 기록에는 '돌'을 뜻하는 '석(石)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750년, 당나라 고선지 장군이 평화 조약을 맺은 뒤 기습적으로 석국을 공격한 사건은 중앙아시아 역사의 거대한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국왕 차비시가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선지는 수도를 약탈하고 왕을 장안으로 압송하여 처형했습니다. 이 무자비한 배신에 분노한 서역 국가들과 석국 왕자가 아바스 왕조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탈라스 전투가 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근처까지 도달하게 되었고, 동양과 서양의 거대 세력이 마주하는 긴장감이 고조되었습니다.
750년, 고선지는 석국과 평화 조약을 맺어 안심시킨 뒤, 곧바로 조약을 깨고 석국을 기습 공격하는 비정한 전술을 펼쳤습니다. 석국의 국왕 차비시는 저항을 포기하고 성문을 열어 항복했으나, 고선지는 이를 무시하고 국왕을 체포했으며 수도를 철저히 약탈해 수많은 금은보화를 빼앗았습니다. 결국 압송된 석국 왕은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참수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나라의 서역 지배력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항복한 왕을 처형하고 조약을 어긴 당나라의 잔혹함에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 국가들은 큰 충격을 받고 등을 돌렸습니다. 간신히 탈출한 석국의 왕자는 주변 서역 국가들과 당시 신흥 강국이었던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대식국)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는 751년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탈라스 전투의 발발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751년, 두 제국의 대군은 탈라스 강 -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흐르는 강입니다. 751년, 이 강 유역에서 이슬람 세계의 아바스 왕조와 중국 당나라가 격돌한 역사적인 '탈라스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이 전투의 결과로 당나라의 서역 진출이 좌절되었고 중앙아시아에 이슬람교가 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역에서 마주쳤습니다. 3만에서 7만 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와, 많게는 20만 명으로 추정되는 어마어마한 이슬람 연합군이 맞붙었습니다. 숫자는 당나라가 적었지만, 양측 모두 물러서지 않고 무려 5일 동안이나 팽팽하고 치열한 대결을 벌였습니다.
전투의 승패는 예상치 못한 배신으로 갈렸습니다. 당나라의 용병으로 참전했던 유목 민족 카를루크 - 카를루크는 중앙아시아의 알타이 산맥과 제티수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튀르크계 유목 민족 연맹입니다. 8세기경 이들은 당나라와 같은 주변 강대국들의 용병이나 동맹군으로 활약하며 중요한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건은 751년 탈라스 전투로, 당시 당나라의 용병으로 참전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바스 왕조 편으로 돌아서서 당나라 군대를 뒤에서 기습했습니다. 이러한 배신은 당나라의 강압적인 세력 확장과 고선지 장군의 무자비한 석국 왕 처형 사건 등으로 인해 쌓였던 불만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전투 이후 카를루크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며 카라한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고, 중앙아시아가 이슬람화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족이 갑자기 아바스 왕조 편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카를루크족은 평소 당나라의 강압적인 중앙아시아 지배 방식과 고선지 장군의 무자비한 처사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고, 특히 석국 왕의 처형을 보며 당나라를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당나라 군대의 뒤를 기습하면서 당나라는 뼈아픈 패배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전투가 정말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 때문입니다. 당나라는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고, 불교와 도교를 믿던 이 지역은 영원히 이슬람 문화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한 포로로 잡혀간 당나라 기술자들을 통해 중국의 '제지술(종이 만드는 법)'이 서양으로 전해져 인류 문명의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