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양옥환으로, 원래 당 현종의 아들인 수왕 이모의 부인이었으나 그의 미모와 재능에 반한 현종에 의해 황귀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음악과 춤에 뛰어났으며 현종의 정치를 잊게 할 만큼 지극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오빠인 양국충의 부패와 권력 다툼은 결국 '안사의 난'이라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756년 피난길의 마위역에서 분노한 병사들은 양씨 일가의 처단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현종은 눈물을 머금고 양귀비의 처형을 허락했습니다. 그녀는 마위역 인근 불당의 배나무 아래에서 하얀 비단 천(백릉)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때 현종은 소매로 얼굴을 가린 채 차마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하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죽음에 관한 애절한 일화는 백거이의 시 '장한가'를 통해 불멸의 사랑 이야기로 남았습니다. 시에서는 죽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을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는 맹세로 묘사합니다. 현종은 장안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의 초상화를 보며 매일 밤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 내려오는데, 사실 그녀가 마위역에서 죽지 않고 탈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시녀가 대신 죽고 양귀비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본 야마구치현에는 그녀가 살았다는 마을과 묘가 남아 있으며, 그곳 사람들은 그녀를 '요코'라 부르며 수호신처럼 모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