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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년 – 630년

수나라의 멸망과 당나라의 건국

수나라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 실패와 대규모 토목 공사로 인해 전국적인 민란이 발생하며 수나라는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혼란 속에서 태원이연이세민 부자가 군사를 일으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나라를 건국했으며, 이후 내부 권력 투쟁을 거쳐 동돌궐을 정벌하며 세계 제국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위치중국 중원 및 동아시아
교전국당나라, 수나라, 동돌궐

배경 및 맥락

610년대 초반

수나라의 통제력 상실

수 양제의 거듭된 고구려 원정 실패와 대운하 건설 같은 무리한 토목 공사로 인해 국력이 크게 쇠퇴했습니다. 가혹한 징발에 견디지 못한 농민들과 지방 군벌들이 중국 전역에서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전개 과정

수나라 양제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과 대운하 같은 거대한 건축 공사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결국 참지 못한 농민들과 지방의 군인들이 곳곳에서 반란(나라를 뒤집어엎기 위해 싸움을 일으키는 것)을 일으켰습니다. 나라가 크게 흔들리던 617년, 북쪽의 중요한 방어 도시인 태원(타이위안)을 지키던 당국공 이연과 그의 뛰어난 아들 이세민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군대를 모았습니다. 이들은 주변의 세력들을 하나씩 설득하거나 물리치며 빠르게 남쪽으로 진군하여 수도 장안을 점령했습니다. 이듬해인 618년, 피난을 가 있던 수 양제가 부하들에게 배신당해 목숨을 잃으면서 수나라는 완전히 무너졌고, 이연은 새롭게 당나라를 세우며 황제(고조)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당나라가 세워지긴 했지만, 아직 중국 전체가 하나로 통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왕세충, 두건덕 등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진 여러 군벌(군대를 이끌고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우두머리)들이 곳곳에서 당나라를 위협했습니다. 건국 초기의 위기 속에서 아들 이세민의 군사적 재능이 빛을 발했습니다. 621년, 이세민은 호로관이라는 좁고 험한 요새에서 왕세충과 두건덕이 힘을 합친 거대한 연합군을 상대하게 되었습니다. 이세민은 적의 약점을 끈기 있게 기다리다가 기습하는 훌륭한 작전으로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당나라는 중국의 중심지인 화북 지방을 완전히 차지하며 통일의 가장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통일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둘째 아들 이세민이었습니다. 하지만 황위를 물려받을 첫 번째 후계자는 형인 태자 이건성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형제들 사이에는 다음 황제가 되기 위한 무서운 권력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형 이건성과 동생 이원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한 이세민은 결국 626년, 황궁의 북쪽 문인 현무문에서 군사들을 숨겨두었다가 형제들을 기습하여 목숨을 빼앗는 끔찍한 사건(현무문의 변)을 일으켰습니다. 큰 충격을 받은 아버지 고조 이연은 얼마 뒤 이세민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고, 이세민은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인 당 태종이 되었습니다.

황제가 된 당 태종 이세민은 훌륭한 정치를 펼치며 나라 안을 빠르게 안정시켰습니다. 그러고는 수나라 때부터 끊임없이 중국을 괴롭히던 북쪽의 강력한 유목 제국, 동돌궐로 눈을 돌렸습니다. 630년, 태종은 명장 이정에게 큰 군대를 맡겨 동돌궐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눈보라가 치는 매서운 날씨 속에서 당나라 군대는 벼락같은 기습 작전을 펼쳐 동돌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그들의 최고 지도자인 힐리가한을 생포하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당나라는 아시아 중앙의 실크로드(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무역로)까지 장악하게 되었고, 이후 수백 년 동안 이어질 눈부신 전성기를 열게 되었습니다.

주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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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퀴즈

1 / 5

수나라가 멸망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양제가 무리하게 추진했던 대규모 토목 공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