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년, 영양왕 - 수나라의 끊임없는 침공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낸 제26대 국왕으로,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하는 대담함과 강력한 의지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의 요서 선제 공격에 분노한 수 문제는 육군과 수군 30만 명을 동원해 첫 번째 원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전례 없는 이른 장마와 거센 폭풍우가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의 보급선과 함대를 집어삼켰고, 병력의 태반을 질병과 굶주림으로 잃은 수나라는 비참하게 후퇴해야 했습니다. 당시 관련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의 전투가 벌어졌는지는 아직 역사적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대결은 612년 수 양제 - 수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대규모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결국 수나라가 빨리 멸망하게 만든 군주입니다. 때 일어났습니다. 그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11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를 침공했습니다. 고구려의 요동성 - 고구려의 서쪽 국경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철옹성 중 하나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많은 대군을 상대로 성벽을 굳게 지켜낸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이 철옹성처럼 버티며 시간을 끌자, 초조해진 수 양제는 30만 명의 정예 별동대를 꾸려 곧장 수도 평양성으로 진격시키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 - 고구려의 위대한 장군으로,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기막힌 지략으로 물리친 구국의 영웅입니다.은 직접 적진에 거짓 항복하며 들어가 수나라 군대의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해 냈습니다. 이후 고구려군은 하루에 7번을 싸워 7번 모두 일부러 져주는 척하며, 굶주림에 지친 수나라 군대를 평양성 인근까지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보급이 끊겨 한계에 달한 적장에게 을지문덕은 시(여수장우중문시 -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적장 우중문에게 보낸 유명한 오언고시 형태의 시입니다. 겉으로는 적장의 공을 칭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만족함을 알고 물러가라는 강력한 경고이자 통렬한 조롱을 담은 문학적이고 심리적인 무기였습니다.[여수장우중문시]神策究天文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妙算窮地理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戰勝功旣高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기를 바라노라.))를 보내 철수를 권유했고, 마침내 수나라 군대가 다급히 퇴각하며 살수(청천강 - 한반도 서북부 평안남북도 지역을 흐르는 강으로, 역사적으로는 '살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612년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이 퇴각하는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강물과 수공을 이용해 거의 전멸시킨 '살수대첩'의 역사적인 현장입니다.)를 반쯤 건널 때 뒤에서 일격을 가했습니다. 30만 명 중 살아 돌아간 사람이 고작 2,700명에 불과했던 '살수대첩'은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큰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수 양제는 613년과 614년에도 고구려 원정을 강행했지만, 수나라 내부에서 일어난 양현감의 반란과 각지의 농민 봉기에 부딪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무리한 대규모 원정으로 국력을 탕진한 수나라는 민심을 잃고 건국 37년 만에 멸망의 길을 걸었으며,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독자 세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