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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년 – 614년

수나라의 고구려 원정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가 동북아시아의 강대국이었던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를 복속시키기 위해 598년부터 61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감행한 전쟁입니다. 수나라는 전무후무한 규모의 대군을 동원했으나 살수대첩 등 고구려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참패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나라는 막대한 국력을 탕진하고 민심을 잃어 결국 37년 만에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위치한반도 북부 및 만주 지역
교전국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

배경 및 맥락

6세기 말

동북아 패권 다툼의 시작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는 동방의 강자인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에게 고개를 숙일 것을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영양왕 - 수나라의 끊임없는 침공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낸 제26대 국왕으로,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하는 대담함과 강력한 의지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수나라의 압박에 맞서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598년

고구려의 요서 선제 공격

영양왕은 수나라의 전쟁 준비를 방해하기 위해, 고구려의 백성이자 용맹한 전사들이었던 말갈족 기병 1만 명을 이끌고 요서 지역을 먼저 공격하는 대담한 작전을 펼쳐 수나라의 콧대를 꺾어 놓았습니다.

전개 과정

598년, 영양왕 - 수나라의 끊임없는 침공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낸 제26대 국왕으로,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하는 대담함과 강력한 의지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의 요서 선제 공격에 분노한 수 문제는 육군과 수군 30만 명을 동원해 첫 번째 원정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전례 없는 이른 장마와 거센 폭풍우가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의 보급선과 함대를 집어삼켰고, 병력의 태반을 질병과 굶주림으로 잃은 수나라는 비참하게 후퇴해야 했습니다. 당시 관련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의 전투가 벌어졌는지는 아직 역사적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대결은 612년 수 양제 - 수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대규모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결국 수나라가 빨리 멸망하게 만든 군주입니다. 때 일어났습니다. 그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113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를 침공했습니다. 고구려의 요동성 - 고구려의 서쪽 국경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철옹성 중 하나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많은 대군을 상대로 성벽을 굳게 지켜낸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이 철옹성처럼 버티며 시간을 끌자, 초조해진 수 양제는 30만 명의 정예 별동대를 꾸려 곧장 수도 평양성으로 진격시키는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 - 고구려의 위대한 장군으로,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기막힌 지략으로 물리친 구국의 영웅입니다.은 직접 적진에 거짓 항복하며 들어가 수나라 군대의 식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해 냈습니다. 이후 고구려군은 하루에 7번을 싸워 7번 모두 일부러 져주는 척하며, 굶주림에 지친 수나라 군대를 평양성 인근까지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보급이 끊겨 한계에 달한 적장에게 을지문덕은 시(여수장우중문시 - 살수대첩 당시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이 적장 우중문에게 보낸 유명한 오언고시 형태의 시입니다. 겉으로는 적장의 공을 칭찬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만족함을 알고 물러가라는 강력한 경고이자 통렬한 조롱을 담은 문학적이고 심리적인 무기였습니다.[여수장우중문시]神策究天文 (신기한 책략은 하늘의 이치를 다하였고)妙算窮地理 (오묘한 계획은 땅의 이치를 다하였도다.)戰勝功旣高 (전쟁에 이겨서 그 공이 이미 높으니)知足願云止 (만족함을 알고 그만 돌아가기를 바라노라.))를 보내 철수를 권유했고, 마침내 수나라 군대가 다급히 퇴각하며 살수(청천강 - 한반도 서북부 평안남북도 지역을 흐르는 강으로, 역사적으로는 '살수'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612년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 장군이 퇴각하는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강물과 수공을 이용해 거의 전멸시킨 '살수대첩'의 역사적인 현장입니다.)를 반쯤 건널 때 뒤에서 일격을 가했습니다. 30만 명 중 살아 돌아간 사람이 고작 2,700명에 불과했던 '살수대첩'은 동아시아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큰 승리로 기록되었습니다.

수 양제는 613년과 614년에도 고구려 원정을 강행했지만, 수나라 내부에서 일어난 양현감의 반란과 각지의 농민 봉기에 부딪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무리한 대규모 원정으로 국력을 탕진한 수나라는 민심을 잃고 건국 37년 만에 멸망의 길을 걸었으며, 고구려는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독자 세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습니다.

주요 사건

598년

수 문제의 제1차 고구려 원정

📍임유관 (지도 보기)

영양왕 - 수나라의 끊임없는 침공에 맞서 고구려를 지켜낸 제26대 국왕으로, 요서 지역을 선제 공격하는 대담함과 강력한 의지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의 요서 선제 공격에 분노한 수 문제는 30만 대군을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전례 없는 이른 장마가 육로를 진흙탕으로 만들어 보급이 끊겼고, 굶주림 속에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해로에서도 함대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 침몰하며 병력의 80~90%를 잃는 궤멸적인 참패를 당하고 허망하게 후퇴해야 했습니다.

결과자연재해와 질병으로 인한 수나라의 참패
휴전 / 공백기 (14년)
612년

수 양제 - 수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대규모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결국 수나라가 빨리 멸망하게 만든 군주입니다.의 대침공 (113만 대군)

📍요동성 일대 (지도 보기)

수 양제 - 수나라의 두 번째 황제로, 대규모의 무리한 고구려 원정에 실패하고 백성들을 괴롭혀 결국 수나라가 빨리 멸망하게 만든 군주입니다.는 역사상 유례없는 113만 명의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 - 고대 한국의 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상을 떨쳤던 나라로, 한반도 북부와 드넓은 만주 대륙을 호령했던 제국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구려는 하늘의 아들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한 유화 부인이 낳은 '황금 알'에서 태어난 주몽(동명성왕)이 세웠다고 합니다. 주몽은 어릴 때부터 활쏘기 실력이 신의 경지에 달해 파리를 쏘아 맞출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고구려는 어떤 거대한 제국도 쉽게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 같은 요새들과 용맹한 철갑 기병으로 수나라와 당나라의 대침공을 막아내며 민족의 방패 역할을 했습니다.를 침공했습니다. 군사들의 행렬이 수백 킬로미터에 달했고 보급 인원까지 합치면 수백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군세는 오히려 보급의 어려움을 초래했고, 고구려의 끈질긴 성곽 중심 방어 전략에 막혀 초기부터 고전하게 됩니다.

612년

요동성 방어전

📍요동성 (현 랴오양) (지도 보기)

고구려 국경의 핵심 요새인 요동성 - 고구려의 서쪽 국경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철옹성 중 하나입니다. 수나라와 당나라의 수많은 대군을 상대로 성벽을 굳게 지켜낸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은 수 양제의 파상공세를 수개월간 완벽하게 차단했습니다. 수나라 - 589년, 무려 400년 가까이 갈라져 있던 중국을 다시 하나로 통일했던 왕조입니다. 수 문제는 검소하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수 양제는 대운하와 같은 어마어마한 토목 공사를 벌였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수 양제는 대운하를 팔 때 하늘의 노여움을 사 토지와 물의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전해질 만큼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백성들의 반란으로 37년 만에 허망하게 멸망했지만, 수나라가 남긴 통일의 기운은 훗날 당나라로 이어지게 됩니다.는 공성탑과 굴을 파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으나, 성안의 장병들은 죽음을 각오한 항전으로 성을 지켜냈습니다. 요동성에서 시간이 지체되자 다급해진 수 양제는 보급의 위험을 무릅쓰고 30만 명의 별동대를 편성하는 무리수를 둡니다.

결과고구려의 끈질긴 항전과 수비 성공
612년

살수대첩

📍살수 (청천강) (지도 보기)

을지문덕 - 고구려의 위대한 장군으로, 612년 살수대첩에서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기막힌 지략으로 물리친 구국의 영웅입니다. 장군이 30만 별동대를 살수로 유인해 격파한 전투입니다. 장군은 적을 깊숙이 유인해 지치게 만든 뒤, 쫓기듯 강을 건너는 적을 일격에 몰아쳤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제방을 터뜨려 적을 휩쓸었다고 전해지며, 살아 돌아간 적군이 단 2,7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수나라 군대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습니다.

결과고구려의 대승
613년

양현감의 난과 수나라의 퇴각

📍낙양 인근 (지도 보기)

수 양제가 다시 요동성을 공격하던 중, 본국에서 병참을 담당하던 양현감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낙양이 위협받자 황제는 다 잡은 요동성을 뒤로하고 다급히 철군해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고구려군이 후퇴하는 적을 공격하여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사건은 수나라 내부 권력이 붕괴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합니다.

614년

마지막 원정과 형식적인 화친

📍고구려 국경지대 (지도 보기)

수나라 내부의 반란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고구려도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된 상황이었습니다. 영양왕은 수나라의 체면을 세워주는 형식적인 항복 사신을 보내 시간을 벌었고, 수 양제는 이를 빌미로 원정을 중단했습니다. 하지만 양제는 고구려 왕이 직접 입조하지 않자 다시 공격하려 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수나라는 멸망의 길로 들어섭니다.

예술 및 유산

여수장우중문시 (수나라 장수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

을지문덕, 612년 (삼국사기에 수록)

🏛️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인 삼국사기에 전해짐

전쟁 한가운데에서 고구려의 사령관이 적장에게 다섯 글자씩 네 줄로 된 짧은 한시를 보냈다. 칭찬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후퇴를 부추기는 조롱이었고, 물러나던 수나라 군대는 살수에서 무너졌다. 현재 전해지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시 중 하나이자, 심리전의 무기였다. 神策究天文 (신책구천문) 신묘한 계책은 하늘의 이치를 다 꿰뚫었고 妙算窮地理 (묘산궁지리) 뛰어난 셈은 땅의 이치를 모두 밝혔네 戰勝功既高 (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 (지족원운지) 만족할 줄 알고 이만 그치기를 바라오

관련 영상

영상한국사 ㅣ 131 을지문덕, 계획된 패배로 수군을 유인하다

역사 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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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년, 113만 명이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의 황제는 누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