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지도
글꼴 크기
언어
테마

Loading Map...

Map height
Scroll Sensitivity1.0
747년 – 750년

아바스 혁명

우마이야 왕조 - 제1차 이슬람 내전 이후 성립된 두 번째 칼리프 왕조입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661~744), 하란(744~750) 순으로 변경되었고, 스페인부터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를 무너뜨리고 아바스 왕조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를 세운 대규모 혁명이자 내전입니다. 이슬람 제국의 중심을 아랍 부족 중심에서 보편적인 이슬람 공동체로 옮기고, 수도를 이라크로 이전하는 등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된 사건입니다.

위치호라산 - 이란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드넓은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부를 포함합니다. 이름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8세기경 이곳은 아바스 혁명의 발원지 역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계 개종자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섞여 살던 이곳의 역동적인 분위기는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교전국아바스 가문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우마이야 칼리프국 - 제1차 이슬람 내전 이후 성립된 두 번째 칼리프 왕조입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661~744), 하란(744~750) 순으로 변경되었고, 스페인부터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전개 과정

아바스 혁명 - 750년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된 거대한 역사적 변혁입니다. 아랍 귀족 중심의 차별 정책과 마왈리(비아랍계 무슬림)들의 불만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호라산에서 아부 무슬림 장군의 주도로 시작된 이 혁명은 성공 후 제국의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에 새로 건설된 바그다드로 옮기게 했으며, 이는 민족 간 융합이 이루어진 이슬람의 황금기가 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의 불씨는 우마이야 왕조 - 제1차 이슬람 내전 이후 성립된 두 번째 칼리프 왕조입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661~744), 하란(744~750) 순으로 변경되었고, 스페인부터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에 대한 깊은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귀족들만을 우대했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비아랍인들을 마왈리 - 초기 이슬람 시대에 '마왈리(Mawali)'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비아랍계 사람들(페르시아인, 이집트인, 베르베르인, 아람인 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 기간 동안 이들은 무슬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귀족들에 비해 차별을 받아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고, 비무슬림이 내는 세금을 여전히 부담해야 하는 등 2등 시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깊은 불만은 훗날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아바스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Mawali, 새로 개종한 비아랍계 무슬림)라 부르며 차별했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이 되었음에도 무거운 세금을 계속 내야 했죠. 여기에 '이슬람의 지도자(칼리프)는 반드시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 더해지면서 아바스 가문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의 명분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터지기 전, 아바스 가문은 수십 년 동안 '하시미야'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힘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우마이야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끝 호라산 - 이란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드넓은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부를 포함합니다. 이름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8세기경 이곳은 아바스 혁명의 발원지 역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계 개종자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섞여 살던 이곳의 역동적인 분위기는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습니다.(오늘날의 이란 동부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비밀 요원들을 보내 지지자들을 모았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왕위 다툼과 계속되는 반란으로 힘이 빠져 있었기에, 아바스 가문의 은밀한 포교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747년, 전설적인 장군 아부 무슬림이 호라산의 메르브에서 아바스 가문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에 지친 페르시아인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이 깃발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혁명군은 거침없이 서쪽으로 진격해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이라크로 들어갔습니다. 749년, 쿠파 - 이라크의 주요 도시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대에 정통 칼리프국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의 커다란 모스크에서 아부 알 아바스(훗날의 아스 사파 -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라크를 중심으로 새 왕조를 세운 아바스 왕조의 초대 칼리프입니다.)가 스스로 칼리프임을 선포하며 우마이야 왕조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750년, 자브 강가에서 양측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우마이야의 칼리프 마르완 2세 - 아바스 혁명에 맞서 싸웠으나 750년 패배 뒤 사망한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입니다.는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나왔지만,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아바스 정예군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참패한 마르완 2세는 이집트로 도망쳤으나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승리는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혁명의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기존의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 지역으로 옮겨졌고, 곧 새로운 수도인 바그다드 - 762년 아바스 칼리프국의 수도로 건설된 바그다드는 학문, 문화, 교역의 세계적 중심지였습니다. '평화의 도시'라 불린 이곳은 '지혜의 집'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이슬람의 황금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된 사건은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뼈아픈 전환점이 되었습니다.가 건설되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아랍인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을 관리로 등용했고,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는 과학, 철학, 예술이 꽃피는 이슬람의 황금기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편,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 중 한 명인 압드 알 라흐만은 멀리 알-안달루스 - 711년부터 1492년 사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이베리아 반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일컫는 역사적 명칭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문화와 과학 교류의 핵심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스페인)로 탈출해 그곳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맥을 이어나갔습니다.

주요 사건

747년

메르브 혁명 선포

📍호라산 메르브 (지도 보기)

아부 무슬림이 메르브 인근 마을에서 아바스 가문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의 상징인 검은 깃발을 공개적으로 내걸며 혁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는 우마이야 왕조 - 제1차 이슬람 내전 이후 성립된 두 번째 칼리프 왕조입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661~744), 하란(744~750) 순으로 변경되었고, 스페인부터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에 대한 노골적인 반역을 의미했습니다. 아부 무슬림은 우마이야 총독이 지역 부족 간의 갈등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이 거사를 단행했습니다. 검은 깃발은 카르발라 전투 등에서 우마이야 왕조에 잔혹하게 처형당한 예언자 무함마드 가문의 순교자들(후세인과 그의 가족 등)을 애도하고 그들의 피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강렬한 상징이었으며, 억압받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타도 우마이야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습니다.

749년

쿠파 - 이라크의 주요 도시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대에 정통 칼리프국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점령

📍이라크 쿠파 (지도 보기)

페르시아를 가로질러 진격한 혁명군이 이라크의 전략적 요충지인 쿠파 - 이라크의 주요 도시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대에 정통 칼리프국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를 점령했습니다. 쿠파는 전통적으로 우마이야 왕조에 반대하고 예언자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이 강했던 곳입니다. 749년 11월, 아부 알 아바스가 쿠파의 대모스크에서 공식적으로 칼리프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로써 혁명은 단순한 지역 반란을 넘어, 제국의 정당한 주인을 가리는 전면전의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750년

자브 전투

📍이라크 자브 강 유역 (지도 보기)

우마이야 왕조의 마르완 2세 - 아바스 혁명에 맞서 싸웠으나 750년 패배 뒤 사망한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입니다.가 이끄는 군대와 아바스 혁명 - 750년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된 거대한 역사적 변혁입니다. 아랍 귀족 중심의 차별 정책과 마왈리(비아랍계 무슬림)들의 불만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호라산에서 아부 무슬림 장군의 주도로 시작된 이 혁명은 성공 후 제국의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에 새로 건설된 바그다드로 옮기게 했으며, 이는 민족 간 융합이 이루어진 이슬람의 황금기가 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군 사이의 마지막 대격돌이었습니다. 혁명군은 긴 창을 이용한 보병 방진으로 우마이야의 기병대를 효과적으로 방어했습니다. 숫자는 적었지만 사기가 높고 조직력이 탄탄했던 혁명군은 결국 우마이야의 전열을 무너뜨렸습니다. 후퇴하던 많은 우마이야 병사들이 강물에 빠져 죽었으며, 이 승리로 우마이야 왕조는 군사적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아바스 왕조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결과아바스 혁명군의 결정적 승리
750년

다마스쿠스 함락

📍시리아 다마스쿠스 (지도 보기)

자브 전투에서 승리한 혁명군은 시리아로 진격하여 우마이야 왕조의 오랜 영광이 깃든 심장부이자 마르완 2세가 불과 몇 년 전 수도를 하란으로 옮기기 전까지 제국의 공식 수도였던 다마스쿠스를 포위했습니다. 도시는 짧은 저항 끝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다마스쿠스는 여전히 우마이야 권력을 상징하는 최고의 도시였기에, 이 도시의 함락은 옛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대한 상징이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새로운 정권에 대한 미래의 위협을 근절하기 위해 우마이야 가문의 일원들을 샅샅이 추적해 처형했으며, 이는 이슬람 지도권의 잔혹하고도 절대적인 교체를 의미했습니다.

예술 및 유산

바그다드 원형 도시

바그다드 원형 도시

칼리프 알만수르가 건설, 762년 착공

🏛️ 박물관과 도서관에 복원도와 지도

완벽한 원형으로 설계한 새 수도로, 이중 성벽과 네 개의 문을 두고 한가운데에 칼리프의 궁전과 모스크를 놓았다. 수만 명이 동원되어 지었다. 원래 도시는 땅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아, 글로 남은 묘사와 그것을 바탕으로 학자들이 그린 도면으로만 알 수 있다.

아바스 왕조 금화(디나르)

아바스 왕조 금화(디나르)

칼리프의 조폐소, 8~9세기

🏛️ 대영박물관 등

초상이 전혀 없는 금화로, 양면 모두 단정한 아랍 글씨로 연도와 주조지, 신앙의 문구가 가득 채워져 있다. 이전 제국들은 돈에 통치자의 얼굴을 새겼지만, 여기서는 글 자체가 디자인이 되었다. 이 금화는 에스파냐에서 중앙아시아까지 두루 쓰였다.

타바리의 역사

타바리의 역사

무함마드 이븐 자리르 알타바리, 915년경 완성

🏛️ 삽화가 든 페르시아어 번역본 등 여러 사본

천지창조부터 저자 당대까지를 다룬 역사서로, 현대 번역본으로 마흔 권에 이른다. 그는 한 사건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전한 사람들의 계보까지 밝히며 나란히 적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자기 후원자들을 권좌에 올린 이 혁명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도 대부분 이 책을 거쳐 왔다.

관련 영상

이슬람 역사의 뼈대 _ 압바스 제국

역사 퀴즈

1 / 4

우마이야 왕조 시절, 이슬람교로 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2등 시민 취급을 받으며 무거운 세금을 내야 했던 비아랍계 무슬림들을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