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혁명 - 750년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된 거대한 역사적 변혁입니다. 아랍 귀족 중심의 차별 정책과 마왈리(비아랍계 무슬림)들의 불만이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호라산에서 아부 무슬림 장군의 주도로 시작된 이 혁명은 성공 후 제국의 수도를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에 새로 건설된 바그다드로 옮기게 했으며, 이는 민족 간 융합이 이루어진 이슬람의 황금기가 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의 불씨는 우마이야 왕조 - 제1차 이슬람 내전 이후 성립된 두 번째 칼리프 왕조입니다. 수도는 다마스쿠스(661~744), 하란(744~750) 순으로 변경되었고, 스페인부터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에 대한 깊은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귀족들만을 우대했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비아랍인들을 마왈리 - 초기 이슬람 시대에 '마왈리(Mawali)'는 이슬람교로 개종한 비아랍계 사람들(페르시아인, 이집트인, 베르베르인, 아람인 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우마이야 왕조 기간 동안 이들은 무슬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랍 귀족들에 비해 차별을 받아 고위직에 오르지 못했고, 비무슬림이 내는 세금을 여전히 부담해야 하는 등 2등 시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깊은 불만은 훗날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린 아바스 혁명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Mawali, 새로 개종한 비아랍계 무슬림)라 부르며 차별했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이 되었음에도 무거운 세금을 계속 내야 했죠. 여기에 '이슬람의 지도자(칼리프)는 반드시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 더해지면서 아바스 가문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의 명분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터지기 전, 아바스 가문은 수십 년 동안 '하시미야'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힘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우마이야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끝 호라산 - 이란 고원과 중앙아시아에 걸쳐 있는 드넓은 역사적 지역으로, 오늘날의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일부를 포함합니다. 이름은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8세기경 이곳은 아바스 혁명의 발원지 역할을 했습니다. 페르시아계 개종자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섞여 살던 이곳의 역동적인 분위기는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필요한 강력한 지지 기반이 되었습니다.(오늘날의 이란 동부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비밀 요원들을 보내 지지자들을 모았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왕위 다툼과 계속되는 반란으로 힘이 빠져 있었기에, 아바스 가문의 은밀한 포교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747년, 전설적인 장군 아부 무슬림이 호라산의 메르브에서 아바스 가문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에 지친 페르시아인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이 깃발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혁명군은 거침없이 서쪽으로 진격해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이라크로 들어갔습니다. 749년, 쿠파 - 이라크의 주요 도시로,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시대에 정통 칼리프국의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의 커다란 모스크에서 아부 알 아바스(훗날의 아스 사파 -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라크를 중심으로 새 왕조를 세운 아바스 왕조의 초대 칼리프입니다.)가 스스로 칼리프임을 선포하며 우마이야 왕조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750년, 자브 강가에서 양측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우마이야의 칼리프 마르완 2세 - 아바스 혁명에 맞서 싸웠으나 750년 패배 뒤 사망한 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칼리프입니다.는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나왔지만,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아바스 정예군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참패한 마르완 2세는 이집트로 도망쳤으나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승리는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혁명의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기존의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 지역으로 옮겨졌고, 곧 새로운 수도인 바그다드 - 762년 아바스 칼리프국의 수도로 건설된 바그다드는 학문, 문화, 교역의 세계적 중심지였습니다. '평화의 도시'라 불린 이곳은 '지혜의 집'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이슬람의 황금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된 사건은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뼈아픈 전환점이 되었습니다.가 건설되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아랍인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을 관리로 등용했고,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는 과학, 철학, 예술이 꽃피는 이슬람의 황금기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편,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 중 한 명인 압드 알 라흐만은 멀리 알-안달루스 - 711년부터 1492년 사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았던 이베리아 반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일컫는 역사적 명칭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문화와 과학 교류의 핵심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스페인)로 탈출해 그곳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맥을 이어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