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혁명의 불씨는 우마이야 왕조에 대한 깊은 불만이었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아랍 귀족들만을 우대했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비아랍인들을 마왈리(Mawali, 새로 개종한 비아랍계 무슬림)라 부르며 차별했습니다. 이들은 무슬림이 되었음에도 무거운 세금을 계속 내야 했죠. 여기에 '이슬람의 지도자(칼리프)는 반드시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문에서 나와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 더해지면서 아바스 가문의 명분이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터지기 전, 아바스 가문은 수십 년 동안 '하시미야'라는 비밀 조직을 통해 힘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우마이야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멀리 떨어진 동쪽 끝 호라산(오늘날의 이란 동부와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비밀 요원들을 보내 지지자들을 모았습니다. 당시 우마이야 왕조는 왕위 다툼과 계속되는 반란으로 힘이 빠져 있었기에, 아바스 가문의 은밀한 포교 활동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747년, 전설적인 장군 아부 무슬림이 호라산의 메르브에서 아바스 가문을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높이 들어 올리며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에 지친 페르시아인들과 불만을 품은 아랍 부족들이 이 깃발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혁명군은 거침없이 서쪽으로 진격해 페르시아 전역을 장악하고 이라크로 들어갔습니다. 749년, 쿠파의 커다란 모스크에서 아부 알 아바스(훗날의 아스 사파)가 스스로 칼리프임을 선포하며 우마이야 왕조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
750년, 자브 강가에서 양측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우마이야의 칼리프 마르완 2세는 더 많은 병력을 이끌고 나왔지만, 사기가 떨어진 군대는 아바스 정예군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참패한 마르완 2세는 이집트로 도망쳤으나 결국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이 승리는 아바스 칼리프국이 우마이야 칼리프국을 대신하여 이슬람 세계의 정당한 지배자가 되었음을 선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혁명의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기존의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 지역으로 옮겨졌고, 곧 새로운 수도인 바그다드가 건설되었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아랍인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을 관리로 등용했고, 이러한 개방적인 분위기는 과학, 철학, 예술이 꽃피는 이슬람의 황금기를 여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편, 우마이야 가문의 왕자 중 한 명인 압드 알 라흐만은 멀리 알-안달루스(스페인)로 탈출해 그곳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맥을 이어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