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1년 후계 문제를 둘러싼 오랜 내홍을 수습하고 대칸에 오른 몽케 칸 - 몽골 제국의 행정 체계를 바로세운 개혁가이자 유라시아 양쪽을 휩쓴 대원정을 직접 이끌었던 정복 군주입니다. 1209년에 태어나 1259년 중국 사천성 원정 중 향년 50세로 서거하였습니다.은 제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정복을 기획했습니다. 그는 동쪽의 남송과 서쪽의 이슬람 영토로 제국의 세력을 동시에 확장하는 복안을 세우고, 서방 원정을 그의 동생 훌라구 - 서아시아 지역을 대대적으로 정복하고 페르시아 일대에 일한국을 건국한 몽골 제국의 황족이자 총사령관입니다. 칭기즈 칸의 손자로서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하여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켰고 아사신파의 본거지를 분쇄하여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에게 맡겼습니다. 훌라구는 몽골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전역에서 징집한 정예 기병들과 함께 석조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석기와 화약 장비를 갖춘 한인 기술자 수천 명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훌라구 원정군이 마주한 첫 요충지는 이란 고원 북쪽 알보르즈 산맥 곳곳에 요새를 거점으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암살 전술을 펼치던 니자리 이스마일파(아사신)의 산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산성이 난공불락이라 여겼으나, 훌라구는 꼼꼼한 봉쇄 작전과 대대적인 공성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결국 1256년 말 아사신파의 마지막 수장이 알라무트 요새를 열고 항복하면서, 중동 지역에서 위세를 떨치던 이들 정파 세력은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원정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슬람 세계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아바스 왕조 - 아바스 왕조는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삼촌인 아바스의 후손들이 세운 이슬람 제국의 세 번째 왕조입니다. 이전 왕조였던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만 특별대우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차별하자, 화가 난 여러 민족이 힘을 합쳐 혁명을 일으키고 아바스 왕조를 세웠습니다. 아바스 왕조는 나라의 수도를 이라크에 있는 바그다드로 옮기면서 대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바그다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동그란 원형 모양으로 지어진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도시였습니다. 이 제국은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와 과학을 꽃피운 이슬람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학문을 깊이 사랑하여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이라는 거대한 도서관이자 연구소를 세우고, 전 세계의 책들을 모아 아랍어로 번역했습니다. 덕분에 수학의 기본이 되는 대수학(문자를 사용해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과 오늘날 컴퓨터를 움직이는 원리인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이 시기의 학자 이름에서 탄생했으며, 지구의 크기를 재거나 종이를 널리 퍼뜨리는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 아라비안 나이트(천일야화) 전설의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이 황금기 시절의 바그다드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대한 칼리프(이슬람 제국의 최고 지도자를 부르는 말)인 하룬 알 라시드는 밤마다 평범한 서민의 옷으로 변장하고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살피며 억울한 사람들의 사연을 직접 해결해 주었다고 합니다. 요술 램프 속의 거인 지니나 알리바바와 도둑들 같은 신비로운 신화와 마법 같은 민담도 이 찬란했던 아바스 왕조 시대를 배경으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시간이 흘러 몽골 제국의 침공으로 멸망했지만, 인류 문명의 발전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선물을 남겨준 신비롭고 위대한 제국이었습니다.의 수도 바그다드 - 762년 아바스 칼리프국의 수도로 건설된 바그다드는 학문, 문화, 교역의 세계적 중심지였습니다. '평화의 도시'라 불린 이곳은 '지혜의 집'이 위치한 곳이었으며, 이슬람의 황금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세련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1258년 몽골군에 의해 함락되고 파괴된 사건은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뼈아픈 전환점이 되었습니다.였습니다. 칼리프 알 무스타심이 훌라구의 항복 권고와 조공 요구를 거절하자, 훌라구는 1258년 초 성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견고했던 성벽은 보름도 버티지 못하고 뚫렸고, 뒤이어 일주일 동안 자행된 약탈로 전설적인 도서관 '지혜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값진 문헌들이 강물에 던져져 강물이 책 먹물로 까맣게 변했습니다. 칼리프는 피를 보지 않고 왕족을 죽이는 몽골 관습에 따라 비단 양탄자에 말린 채 말발굽에 짓밟혀 생을 마감했으며, 이로써 500년 아바스 왕조는 멸망했습니다.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훌라구는 기세를 몰아 시리아로 진격하여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이집트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1259년 말 대칸 몽케가 남송 원정 중 조어성에서 병사했다는 급보가 도달하자, 훌라구는 다음 칸을 선출하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부분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철수했습니다. 시리아에는 킵차크 장군 키트부카가 이끄는 1만 명의 소수 병력만 남게 되었고, 1260년 9월 팔레스타인 아인잘루트에서 바이바르스가 이끄는 이집트 맘루크 왕조 - 맘루크 왕조는 1250년부터 1517년까지 이집트와 시리아,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 서부(헤자즈 지방)를 다스린 이슬람 제국입니다. 재미있게도 맘루크라는 단어는 소유된 자, 즉 노예를 뜻합니다. 원래 이 제국은 이슬람 왕들이 경호원으로 쓰기 위해 사들인 유목민 출신의 용맹한 노예 기병 군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뛰어난 무예와 끈끈한 단결력으로 스스로 왕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아 세운 나라가 바로 맘루크 왕조입니다. 맘루크 왕조는 세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260년, 당시 세계를 휩쓸며 무적이라 불리던 몽골 제국의 군대가 시리아를 거쳐 이집트로 쳐들어왔습니다. 이때 맘루크 왕조의 영웅적인 장군 바이바르스와 술탄(왕) 쿠투즈는 아인 잘루트 전투에서 지략을 발휘해 몽골군을 유인하여 전멸시켰습니다. 이 승리로 맘루크 왕조는 이슬람 세계의 파괴를 막아내고 성지 메카와 메디나를 지켜내는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아인 잘루트 전투의 영웅 바이바르스는 이후 술탄이 되어 수많은 용맹한 무용담을 남겼는데, 사자를 무척 좋아하여 자신의 방패와 동전에 사자 문양을 새겼습니다. 그가 몽골군과 기독교 십자군을 상대로 승리하며 남긴 전설적인 전투 일화들은 오늘날 중동 유목민과 서민들 사이에서 마치 영웅 신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흥미진진한 민담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카이로는 학문과 예술, 무역의 대도시로 번창하여 역사상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의 군대에게 패하면서 훌라구의 서방 정복은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