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군의 총사령관에는 주치의 아들인 바투 칸 -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킵차크 칸국(금장칸국)의 건국자입니다. 몽골 제국의 동유럽 대원정을 총지휘하여 루스 공국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폴란드와 헝가리 지역까지 깊숙이 침공했습니다.이 임명되었고, 백전노장 수부타이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20번이 넘는 원정을 지휘하며 32개 국가를 정복했고,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군대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습니다.가 실질적인 작전 및 전술 지휘를 맡았습니다. 이 서방 원정군의 목표에 대해서는 유럽 대륙 끝에 있는 '마지막 바다'까지 가려고 했다는 칭기즈 칸의 유언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주치 가문이 물려받은 서쪽 영토를 더 단단히 다지고, 몽골 - 몽골 제국은 13세기와 14세기에 존재했던 역사상 가장 큰 단일 육상 제국입니다. 동아시아의 현재 몽골 지역에서 시작된 몽골 제국은 전성기에 동쪽으로는 일본해에서 서쪽으로는 동유럽 일부까지, 북쪽으로는 북극 일부, 남쪽으로는 인도 아대륙, 동남아시아 본토, 이란 고원, 그리고 서쪽으로는 레반트와 카르파티아 산맥까지 뻗어 나갔습니다.에 저항하며 헝가리 등으로 도망친 유목 부족인 쿠만족 - 쿠만족은 유라시아 초원에서 활동했던 투르크계 유목민으로, 흑해 북쪽의 광대한 초원 지대인 '쿠마니아'를 지배하며 중세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유목민 전설에 따르면 쿠만족은 늑대를 조상이자 성스러운 수호신으로 숭배했습니다. 이들의 전사들은 밤마다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신호를 주고받아 기습 공격을 조율했으며, 늑대 정령이 전투에서 승리를 이끌어 준다고 믿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을 쫓아내어 서쪽 국경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실제 목표였다고 봅니다. 수부타이는 예전의 정찰 원정 경험을 바탕으로 꼼꼼하게 침공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정은 1236년 볼가 불가리아를 정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1237년 말 몽골군은 키예프 루스 - 키예프 루스는 9세기 후반부터 13세기 중반까지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그리고 러시아 서부 지역에 걸쳐 존재했던 동슬라브족의 거대한 연합 국가입니다. 이 나라는 북쪽의 발트해에서 남쪽의 흑해까지 뻗어 있는 거대한 강들을 따라 활발하게 교역하며 눈부신 번영을 누렸습니다. 키예프 루스에는 흥미로운 전설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역사책인 원초 연대기에 따르면, 슬라브 부족들이 서로 싸우다 북쪽 바다 건너의 현명한 바이킹 영웅인 류리크를 지도자로 초대했다고 합니다. 류리크의 뒤를 이은 올레크는 남쪽의 키예프를 점령한 뒤 '이곳이 모든 루스 도시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나라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또한, 나라를 가장 크게 발전시킨 볼로디미르 대왕이 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일 때의 이야기도 유명합니다. 왕이 보낸 사절단이 비잔티움 제국의 성 소피아 대성당을 방문한 뒤,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예배 모습에 감탄하여 '우리가 하늘에 있었는지 땅에 있었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천국 같았다'고 보고하자 이에 크게 감동한 왕이 정교회를 받아들였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키예프 루스는 법전인 루스카야 프라우다를 만들고 독창적인 슬라브 문화를 꽃피우며 황금기를 누렸으나, 시간이 흐르며 왕공들이 서로 왕위를 차지하려 싸우면서 점차 분열되었습니다. 결국 1223년 칼카강 전투를 시작으로 몽골군의 거센 침공을 받아 수도 키예프가 파괴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비록 나라는 멸망했지만, 키예프 루스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민족 모두가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의 공동 조상으로 여기는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나라입니다.의 공국들을 침공했습니다. 몽골 기병대는 겨울철 얼어붙은 강들을 천연 고속도로 삼아 울창한 숲을 우회하여 주요 요새들을 순식간에 포위했습니다. 이 무서운 침공 속에서 몽골군이 다가오자 신비의 도시 '키테시'가 호수 밑으로 가라앉아 화를 피했다는 전설이 루스 민간에 널리 퍼지기도 했습니다. 1240년 말, 루스의 영적이고 역사적인 수도였던 키예프 - 키예프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키예프 루스의 역사적 수도였습니다. 동슬라브 최초의 역사서인 《원초연대기》에 따르면, 5~6세기경 세 형제인 키이, 셰크, 호리브와 그들의 누이 리비드가 이 도시를 세웠으며 맏형인 키이의 이름을 따서 '키예프'라 불렀다는 창건 전설이 내려옵니다.'루스 도시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동슬라브 문명의 정치, 경제, 문화적 중심지로 성장했으나, 1240년 몽골 제국의 침공 당시 바투 칸이 이끄는 군대에 포위되어 거의 완전히 파괴되는 비극을 맞이했고 이는 키예프 루스의 황금기가 끝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마저 처참히 함락되면서 키예프 루스의 황금기는 비극적인 종말을 고했습니다.
루스를 평정한 몽골군은 중부 유럽으로 진격을 개시했습니다. 수부타이는 유럽 왕국들이 힘을 합치는 것을 막기 위해 부대를 여러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바이다르가 이끄는 북로군은 폴란드로 진격하여 1241년 4월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 영주들과 튜턴 기사단 - 튜턴 기사단은 12세기 후반에 결성된 중세 독일의 기독교 무사 집단(기사단)입니다. 이들은 훗날 동유럽으로 이동하여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거대한 마리엔부르크 성을 중심으로 강력한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1241년 레그니차 전투에서 몽골군에 맞서 유럽을 지키기 위해 폴란드 연합군과 함께 싸웠습니다.옛 전설에 따르면 기사단의 본부였던 마리엔부르크 성은 밤마다 하늘에서 천사가 떨어뜨려 준 붉은 벽돌로 성벽을 튼튼히 쌓아 올렸다는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또한, 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성 아래 잠들어 있던 기사단장들의 유령이 깨어나 성벽을 순찰하며 성을 지켜준다는 전설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연합군을 대파했습니다. 동시에 바투와 수부타이가 이끄는 본대는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헝가리로 들이닥쳤습니다. 사요강 - 사요강(슬로바키아어로는 슬라나강)은 슬로바키아 중부에서 시작해 헝가리 북동부를 흐르는 강입니다. 1241년 몽골의 바투 칸과 수부타이가 이끄는 군대가 헝가리 국왕 벨라 4세의 정예군을 포위 섬멸한 모히 전투가 일어난 역사적 장소입니다.헝가리 민담에서 이 전투는 침략자들을 '개의 머리를 한 괴물'로 묘사하며 큰 공포로 기억됩니다. 전설에 따르면 벨라 4세 왕이 극적으로 탈출하는 동안, 사요강의 물줄기가 쓰러진 기사들의 피와 눈물로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집니다.가에서 벌어진 모히 전투에서 몽골군은 공성 무기를 동원한 화력 지원과 야간 도하를 통한 후방 포위 전술로 헝가리 왕 벨라 4세의 정예군을 완전히 섬멸했습니다.
1241년 말 몽골군의 정찰대는 오스트리아 빈 근교와 아드리아해 -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 반도 사이에 위치한 바다입니다. 몽골의 유럽 침공 당시인 1241년 말, 몽골군의 정찰대가 이 바다의 해안선까지 진출하자 온 서유럽이 공포에 휩싸였습니다.아드리아해 연안의 크로아티아 전설에 따르면, 밤마다 활동하는 요정들이 산에서 무거운 돌을 날라 해안가에 아레나(원형경기장)를 건설했으나, 새벽녘 닭이 울자 미처 지붕을 다 만들지 못하고 도망쳐 오늘날과 같은 지붕 없는 아레나가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안까지 진출하여 서유럽 전체를 극심한 공포에 빠뜨렸습니다. 그러나 1241년 12월 대칸 오고타이 -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입니다. 동아시아와 유럽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완성했으며, 수도 카라코룸 건설과 역참제 정비를 통해 제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가 서거했다는 급보가 본국으로부터 날아왔습니다. 몽골 황족으로서 다음 대칸을 선출하는 최고 회의인 쿠릴타이에 참석해야 했던 바투 칸은 즉각적인 회군을 명령했습니다. 몽골군이 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리면서 서유럽은 정복의 위기를 극적으로 모면했습니다. 회군 길에 바투는 볼가강 - 볼가강은 유럽에서 가장 긴 강으로, 러시아 서부를 가로질러 카스피해로 흘러갑니다. 몽골의 침공 당시 이 강은 군대 이동과 물자 수송의 중요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원정을 이끈 바투 칸은 볼가강 하류에 킵차크 칸국의 수도인 사라이를 세웠습니다.러시아 문화에서 볼가강은 생명과 힘의 원천으로서 '어머니 볼가'(볼가 마투슈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많은 민요와 전설의 무대가 되었고, 슬라브 신화 속 전설적인 거인 영웅인 볼가 부슬라예비치와 얽힌 이야기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류에 수도 사라이 - 사라이는 13세기 중반 바투 칸이 볼가강 하류에 건설한 킵차크 칸국(금장칸국)의 수도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거대한 무역 도시로 번창했으며, 아름다운 이슬람 사원과 궁전, 공중목욕탕을 갖춘 부유한 도시였습니다.전설에 따르면, 칸의 위세를 뽐내기 위해 실물 크기의 순금 말 두 마리가 사라이 성문 앞을 지키고 있었으나, 제국이 멸망할 때 감쪽같이 사라져 지금도 볼가강 인근 평원 어딘가에 묻혀 있다고 전해집니다.를 건설하고 킵차크 칸국을 건국했는데, 그가 머물던 황금빛 군막의 전설에서 기원해 이 나라는 '금장칸국'으로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