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케 칸(1209~1259)은 몽골 제국의 4대 대칸(황제)으로, 1251년 대칸의 자리에 올라 1259년 향년 50세의 나이로 서거할 때까지 제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는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인 툴루이와 지혜로운 여장부 소르칵타니 베키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었습니다. 2대 대칸인 오고타이가 서거한 후 오랜 왕위 다툼이 벌어졌을 때, 몽케는 서쪽 킵차크 칸국의 지배자인 바투 칸과 굳건한 동맹을 맺었습니다. 결국 1251년 42세의 나이에 부족 대표 회의인 쿠릴타이(몽골 제국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던 귀족들의 회의)를 통해 대칸으로 추대되며 툴루이 가문의 제국 통치 시대를 열었습니다.
대칸의 자리에 오른 몽케 칸은 흐트러진 제국의 법과 제도를 바로잡는 뛰어난 행정가이자 정복 군주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괴롭히던 무거운 세금 제도를 정비하고 뇌물을 받던 부패한 관리들을 처벌하여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었습니다. 기틀이 잡히자 그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 두 개의 거대한 원정을 기획했습니다. 동생인 훌라구에게는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 지역을 정복하게 하였고, 또 다른 동생인 쿠빌라이에게는 중국의 남송 왕조를 정복하게 하여 동서양을 동시에 공략했습니다.
몽케 칸은 화려한 궁궐 생활보다는 전통적인 유목민의 검소한 삶을 사랑했으며, 다른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도 무척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온 가톨릭 수도사인 루브루크 신부를 만났을 때, 몽케 칸은 '하느님이 손에 서로 다른 모양의 손가락을 주신 것처럼, 세상 사람들에게도 신에게 나아가는 다양한 길을 주셨다'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그는 제국 영토 안의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를 차별하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장려했습니다.
하지만 몽케 칸은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몽골의 옛 전통 점술인 골점(양의 어깨뼈를 불에 구워 나타난 금을 보고 길흉을 치는 점)에 깊이 의존하는 다소 신비롭고 미신적인 면모도 있었습니다. 그는 중국 남송 원정을 결심할 때도 이 뼈점을 치고 길하다는 괘를 얻은 후에야 길을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1259년 여름, 그는 사천성의 험난한 조어성(낚시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우던 중, 전염병(이질 또는 콜레라)에 걸려 향년 50세로 급사하고 말았습니다. 대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전 세계에 나가 있던 몽골군의 진격을 멈추게 만들었고, 동생인 쿠빌라이와 아릭베케 사이에 제국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거대한 내전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