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칸은 몽골 제국의 뛰어난 황족이자 킵차크 칸국(금장칸국)의 건국자입니다. 칭기즈 칸의 첫째 아들인 주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영지였던 몽골 제국의 가장 서쪽 영토를 상속받았습니다. 1235년 대칸 오고타이는 바투를 서방 영토 정복을 위한 10만 대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이 원정에는 이전에 1차 정찰을 수행했던 전설적인 명장 수부타이가 수석 참모로 동행하여 바투을 보좌했습니다.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은 1236년 원정을 시작하여 볼가 불가리아를 정복하고 키예프 루스의 여러 공국을 공략했습니다. 이 전쟁은 1240년 역사적 수도인 키예프를 포위해 완전히 파괴하면서 중대한 국면을 맞았습니다. 이어 몽골군은 부대를 나누어 서쪽으로 계속 진격했고, 1241년 레그니차 전투에서 폴란드와 튜턴 기사단 연합군을 대파하고 모히 전투에서 헝가리 국왕의 군대를 격멸했습니다. 그러나 1241년 말 대칸 오고타이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바투는 황위 계승 회의인 쿠릴타이에 참석하기 위해 서유럽 침공을 멈추고 볼가강 유역으로 군대를 회군하여 사라이를 수도로 삼아 킵차크 칸국을 세웠습니다.
역사적 전설과 기록에 따르면, 바투는 백성들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다스렸던 군주로 기억됩니다. 이 때문에 몽골인들은 그를 '세인 칸'(착하고 자비로운 칸)이라는 호칭으로 불렀는데, 이는 유럽인들에게 남겨진 무시무시한 정복자로서의 이미지와 대비됩니다. 또한 그가 세운 킵차크 칸국의 다른 이름인 '금장칸국(Golden Horde)'은 바투가 볼가강가에 세운 금빛으로 빛나는 찬란한 황금 군막(오르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루스 지역에는 바투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보이지 않는 신비의 도시 '키테시'가 호수 밑으로 가라앉아 화를 피했다는 전설도 전해집니다.
한편, 바투 칸의 막강한 군사력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직접 대칸에 즉위하지 못한 결정적인 배경에는 아버지 주치의 출생을 둘러싼 정통성 시비가 있었습니다. 칭기즈 칸의 장남이었던 주치는 어머니 보르테가 메르키트족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직후 태어났기 때문에, 친부의 혈통을 둘러싸고 오고타이와 차가타이 등 삼촌들로부터 칭기즈 칸의 진짜 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평생 받았습니다. 이 출생의 비밀이라는 꼬리표는 바투에게도 대칸 지위를 노리기에는 정통성 면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바투는 직접 왕위에 오르기보다,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 툴루이의 장남으로서 확실한 정통성을 가진 몽케를 지지하는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1251년 쿠릴타이에서 몽케를 대칸으로 옹립함으로써 자신을 해하려 했던 오고타이 가문을 견제하고, 킵차크 칸국의 독자적인 지배권을 확고히 보장받아 제국의 실질적인 보호자이자 2인자로서 실리를 챙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