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88–85년)은 미트리다테스가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자로 환영받으며 소아시아를 휩쓸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십 년간 로마의 조세 청부업자 '푸블리카니'들은 부패한 총독들과 결탁해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고, 빚을 갚지 못한 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겨 깊은 원한을 샀습니다. 미트리다테스는 이러한 분노를 이용하여 모든 부채를 탕감하고 5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약속으로 그리스 도시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러한 대중 영합 전략은 '아시아의 만종' 사건으로 정점에 달했는데, 하루 만에 8만 명의 로마인과 이탈리아 출신 사람들을 학살함으로써 도시들이 자신과 운명을 같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는 그리스로 눈을 돌려 장군들을 보내 아테네를 장악했습니다. 그곳에 철학자 출신의 독재자 아리스티온을 세워 공포 정치를 펼치게 했습니다. 또한 미트리다테스는 로마의 주요 거점이자 노예 시장이었던 신성한 섬 델로스를 공격하여 2만 명의 이탈리아 출신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하지만 냉철하고 유능한 로마 장군 술라가 도착하면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술라는 아테네와 피레우스를 포위하고 결국 도시를 함락시켰습니다. 이어진 카이로네이아와 오르코메노스 전투에서 술라의 정예 군단은 수적으로 우세한 폰투스군을 격파했습니다. 전쟁은 다르다노스 조약으로 끝났으며, 미트리다테스는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모든 정복지에서 물러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며 함대 일부를 양도해야 했지만, 자신의 왕국은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제2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83–81년)은 짧지만 중요한 막간극이었습니다. 술라가 아시아에 남겨둔 부관이었던 로마 장군 무레나가 개선식을 탐내어, 미트리다테스의 재무장을 구실로 폰투스를 기습 공격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미트리다테스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반격하여 할리스 전투에서 무레나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겼습니다. 평화를 원했던 술라의 명령으로 전쟁은 멈췄지만, 이 승리로 미트리다테스는 로마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습니다.
제3차 미트리다테스 전쟁(기원전 73–63년)은 비티니아의 왕 니코메데스 4세가 자신의 왕국을 로마에 유산으로 남기며 사망하자, 이를 위협으로 느낀 미트리다테스가 비티니아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로마는 루쿨루스를 파견했고, 그는 키지쿠스 포위전에서 뛰어난 전술로 미트리다테스를 농락하며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어진 카비라 전투에서도 패배한 미트리다테스는 자신의 왕국을 버리고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는 사위인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대왕에게 망명했는데, 루쿨루스의 신병 인도 요구를 티그라네스가 '장인어른을 배신한다면 세상이 비난할 것'이라며 거절하자 전쟁은 아르메니아로 확전되었습니다. 이는 결국 티그라노케르타 전투로 이어지게 됩니다.
루쿨루스의 눈부신 승리에도 불구하고, 길어진 전쟁과 가혹한 군율에 지친 로마 병사들은 종군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틈을 타 미트리다테스는 폰투스로 돌아와 왕국을 되찾았습니다. 기원전 66년, 로마는 사령관을 폼페이우스로 교체했습니다. 압도적인 전력을 갖춘 폼페이우스는 미트리다테스를 완벽하게 몰아붙였습니다. 결국 크림반도까지 쫓겨난 노왕 미트리다테스는 아들 파르나케스의 배신에 절망하여 기원전 63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전쟁은 막을 내리고 동방에서 로마의 지배권이 확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