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씨는 그리스에서 타올랐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로마 -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 – 기원전 27년)은 고대 로마 문명 중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띠었던 시기입니다.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작되어 약 45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일련의 내전 끝에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의 공식 속주가 아니었지만,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이후 로마에 의해 '자유'를 선언받은 도시 국가들이 로마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로마 중심의 질서에 불만을 품은 아이톨리아 동맹 - 고대 그리스 아이톨리아 지역의 부족 공동체와 도시들의 연합체. 헬레니즘 시대의 강력한 군사 세력으로, 마케도니아에 대항하여 로마와 동맹을 맺었습니다.이 그리스의 '해방'을 명분으로 안티오코스 3세 - 안티오코스 3세 대왕(기원전 241년경–187년)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6대 통치자입니다.를 끌어들였고, 그는 기원전 192년 그리스 반도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칼키스 - 그리스 에우보이아 섬의 중심 도시로, 에우리푸스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Chalcis)를 점령하여 거점으로 삼고 겨울을 보내며 전력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기 병력은 소규모였고, 그리스 전역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여 로마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원전 191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가 이끄는 로마군은 테르모필라이 전투 에서 안티오코스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전술적으로도 밀린 안티오코스는 그리스에서 소아시아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의 다음 단계는 로마군이 아시아로 전장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도스 - 로도스는 헬레니즘 시대 에게 해에 위치한 강력한 섬 도시 국가였습니다. 강력한 해군력과 무역, 문화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독립적인 주요 세력이었습니다. 로마-셀레우코스 전쟁에서 로도스는 로마와 동맹을 맺고, 뛰어난 해군 기술을 제공하여 해상 우위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와 페르가몬 - 페르가몬은 소아시아에 위치한 고대 그리스 도시로, 헬레니즘 시대에 강력한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과 경쟁할 만큼 유명한 도서관을 보유했던 문화와 학문의 주요 중심지였습니다. 로마의 핵심 동맹국으로서 페르가몬 왕국은 로마-셀레우코스 전쟁 당시, 특히 결정적인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지상전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동맹군의 지원을 받은 로마 함대가 에게 해 - 에게 해는 그리스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지중해의 길쭉한 만입니다. 역사적으로, 특히 고대 그리스 시대에 중요했으며, 최초의 두 문명인 미노아 문명과 미케네 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9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 -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는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동생입니다.가 명목상 지휘했지만, 그의 더 유명한 형제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의 장군입니다.의 큰 영향을 받은 대규모 로마군이 헬레스폰트 - 에게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며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좁은 해협입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의 배다리와 알렉산더 대왕의 도하로 역사적으로 유명합니다. 해협을 건넜습니다.
결정적인 전투는 사르디스 근처 마그네시아 전투 에서 벌어졌습니다. 로마-페르가몬 연합군은 훨씬 더 큰 셀레우코스군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의 군대는 전투 코끼리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완패했으며, 이는 소아시아와 유럽에서의 셀레우코스의 야망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전쟁은 기원전 188년 아파메이아 조약 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셀레우코스 제국 - 기원전 312년부터 기원전 63년까지 서아시아에 존재했던 주요 헬레니즘 국가입니다.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전성기에는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및 인도 일부를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초기 수도는 티그리스 강변의 셀레우키아였으나, 지중해와 가까워 교류에 유리하고 서방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오론테스 강변의 안티오크로 천도했습니다(기원전 300년경).의 권력을 심각하게 제한하여 타우루스 산맥 서쪽의 모든 영토 - 아파메이아 조약(기원전 188년)에 따라 셀레우코스 제국이 포기해야 했던 타우루스 산맥 서쪽의 소아시아 광활한 영토입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로마의 동맹국인 페르가몬 왕국과 로도스 공화국에 재분배되었으며, 이로써 해당 지역에서 셀레우코스의 영향력은 사실상 종식되었습니다.를 로마와 그 동맹국(페르가몬, 로도스)에 양도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며, 전투 코끼리와 함대를 넘겨주도록 강요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한니발 -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지휘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카르타고 장군으로, 알프스를 넘어 로마와 싸운 것으로 유명합니다.을 넘겨주어야 했지만, 한니발은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