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씨는 그리스에서 타올랐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로마의 공식 속주가 아니었지만, 제2차 마케도니아 전쟁 이후 로마에 의해 '자유'를 선언받은 도시 국가들이 로마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로마 중심의 질서에 불만을 품은 아이톨리아 동맹이 그리스의 '해방'을 명분으로 안티오코스 3세를 끌어들였고, 그는 기원전 192년 그리스 반도로 진입했습니다. 그는 칼키스(Chalcis)를 점령하여 거점으로 삼고 겨울을 보내며 전력을 다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초기 병력은 소규모였고, 그리스 전역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여 로마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기원전 191년, 마니우스 아킬리우스 글라브리오가 이끄는 로마군은 테르모필라이 전투 에서 안티오코스의 군대를 결정적으로 격파했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전술적으로도 밀린 안티오코스는 그리스에서 소아시아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쟁의 다음 단계는 로마군이 아시아로 전장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도스와 페르가몬 동맹군의 지원을 받은 로마 함대가 에게 해의 제해권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190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시아티쿠스가 명목상 지휘했지만, 그의 더 유명한 형제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큰 영향을 받은 대규모 로마군이 헬레스폰트 해협을 건넜습니다.
결정적인 전투는 사르디스 근처 마그네시아 전투 에서 벌어졌습니다. 로마-페르가몬 연합군은 훨씬 더 큰 셀레우코스군에 결정적인 패배를 안겼습니다. 안티오코스 3세의 군대는 전투 코끼리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완패했으며, 이는 소아시아와 유럽에서의 셀레우코스의 야망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했습니다.
전쟁은 기원전 188년 아파메이아 조약 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조약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권력을 심각하게 제한하여 타우루스 산맥 서쪽의 모든 영토를 로마와 그 동맹국(페르가몬, 로도스)에 양도하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하며, 전투 코끼리와 함대를 넘겨주도록 강요했습니다. 안티오코스는 한니발을 넘겨주어야 했지만, 한니발은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