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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4년 – 기원전 36년

로마-파르티아 전쟁

라이벌인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에 필적하는 군사적 영광을 원했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제1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으며 로마 최고의 부자였습니다.파르티아 제국 -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 기원후 224년) 또는 아르사케스 왕조는 고대 이란의 주요 정치 및 문화 세력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든 파르니 부족의 아르사케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유프라테스 강 북부(오늘날의 터키 중동부)에서 이란 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지중해의 로마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사이 실크로드 교역로에 위치하...을 침공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원정은 파르티아 기병 전술에 로마 -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 – 기원전 27년)은 고대 로마 문명 중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띠었던 시기입니다.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작되어 약 45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일련의 내전 끝에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군이 전멸당한 카르헤 전투에서 처참한 패배로 끝났습니다.

위치카르헤 - 카르헤는 로마와 파르티아 세계가 만나는 중요한 교차로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53년 이곳에서 파르티아의 수레나가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물리친 유명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유프라테스 - 유프라테스강은 티그리스강과 함께 고대 서아시아의 두 큰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같은 나라들의 국경 역할을 했습니다.
교전국로마 공화국 -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 – 기원전 27년)은 고대 로마 문명 중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띠었던 시기입니다.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작되어 약 45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일련의 내전 끝에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파르티아 제국(아르사케스 왕조) -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 기원후 224년) 또는 아르사케스 왕조는 고대 이란의 주요 정치 및 문화 세력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든 파르니 부족의 아르사케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유프라테스 강 북부(오늘날의 터키 중동부)에서 이란 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지중해의 로마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사이 실크로드 교역로에 위치하...

전개 과정

기원전 54년, 로마 -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 – 기원전 27년)은 고대 로마 문명 중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띠었던 시기입니다.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작되어 약 45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일련의 내전 끝에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를 지배하던 제1차 삼두정치는 위태로웠습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고 있었고 폼페이우스는 이미 동방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로마 최고의 부자였던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제1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으며 로마 최고의 부자였습니다.에게는 그에 비할 만한 군사적 승리가 없었습니다. 영광과 막대한 전리품을 원했던 크라수스는 동방의 부유한 파르티아 제국 -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 기원후 224년) 또는 아르사케스 왕조는 고대 이란의 주요 정치 및 문화 세력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든 파르니 부족의 아르사케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유프라테스 강 북부(오늘날의 터키 중동부)에서 이란 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지중해의 로마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사이 실크로드 교역로에 위치하...을 노렸습니다. 흉조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는 4만 명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유프라테스 - 유프라테스강은 티그리스강과 함께 고대 서아시아의 두 큰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같은 나라들의 국경 역할을 했습니다.강을 건너 기존 조약을 위반했습니다.

파르티아의 오로데스 2세는 침략자에 맞서기 위해 뛰어난 장군 수레나 - 로마의 크라수스를 카르라이 전투에서 꺾어 로마사 최악의 패배 중 하나를 만든 파르티아 지휘관입니다.를 보냈습니다. 크라수스는 파르티아군이 도망치거나 전통적인 보병전을 벌일 것이라 예상하고 메소포타미아의 평탄한 사막 평원으로 군대를 진격시켰습니다.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탁 트인 지형은 파르티아 기병에게 완벽한 장소였으며, 수레나는 함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53년 카르헤 전투 에서 로마 군단은 악몽을 마주했습니다. 그들은 안전거리에서 화살을 퍼붓는 파르티아 궁기병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습니다. 로마군이 돌격을 시도할 때마다 궁기병들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화살을 쏘는 '파르티아 샷'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한편, 중무장한 파르티아 카타프락토이 기병들은 대열이 무너진 틈을 노리고 돌격 대기 중이었습니다. 로마군의 귀갑 대형(테스투도)은 어느 정도 방어력을 제공했지만, 그들을 움직일 수 없는 표적으로 만들 뿐이었습니다.

패배는 처참했습니다. 크라수스의 아들은 필사적인 반격을 이끌다 전사했고, 크라수스 자신도 협상 도중 발생한 난투극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탐욕을 비웃기 위해 녹인 황금을 목구멍에 부어 넣었다고 합니다. 로마는 2만 명을 잃고 1만 명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군단기(독수리 깃발)를 빼앗긴 치욕은 수십 년간 로마의 자존심에 상처로 남았습니다.

전쟁은 산발적인 습격으로 이어졌고, 훗날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동맹으로서 옥타비아누스와 맞서 싸웠습니다.가 기원전 36년에 크라수스의 복수를 위해 대규모 원정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험난한 지형과 파르티아의 기동 전술에 고전하며 간신히 목숨만 건져 후퇴했습니다. 유프라테스강은 두 강대국 사이의 경계로 남았으며, 이곳에서 형성된 라이벌 관계는 이후 수백 년간 로마와 동방의 관계를 규정하게 됩니다.

주요 사건

기원전 54년

크라수스 -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제1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으며 로마 최고의 부자였습니다.유프라테스 - 유프라테스강은 티그리스강과 함께 고대 서아시아의 두 큰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같은 나라들의 국경 역할을 했습니다.강 도하

📍유프라테스강 (지도 보기)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에 맞설 부와 군사적 영광을 쫓던 크라수스 -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제1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었으며 로마 최고의 부자였습니다.파르티아 - 파르티아 제국(기원전 247년 ~ 기원후 224년) 또는 아르사케스 왕조는 고대 이란의 주요 정치 및 문화 세력으로, 셀레우코스 제국에 반기를 든 파르니 부족의 아르사케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습니다. 전성기에는 유프라테스 강 북부(오늘날의 터키 중동부)에서 이란 동부까지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지중해의 로마 제국과 중국의 한나라 사이 실크로드 교역로에 위치하...와의 평화 조약을 깨고 로마 - 로마 공화정(기원전 509년 – 기원전 27년)은 고대 로마 문명 중 공화제 정부 형태를 띠었던 시기입니다. 로마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작되어 약 450년 이상 지속되었으나, 일련의 내전 끝에 로마 제국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군단을 이끌어 유프라테스 - 유프라테스강은 티그리스강과 함께 고대 서아시아의 두 큰 강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와 파르티아 같은 나라들의 국경 역할을 했습니다.강을 건넜습니다.

기원전 53년

카르헤 전투

📍카르헤 (지도 보기)

로마 역사상 가장 큰 패배 중 하나로, 수레나 - 로마의 크라수스를 카르라이 전투에서 꺾어 로마사 최악의 패배 중 하나를 만든 파르티아 지휘관입니다.의 궁기병과 중장 기병은 지형을 활용해 크라수스의 군대를 전멸시켰습니다. 크라수스는 전사했고 군단기를 빼앗겼습니다.

결과파르티아의 결정적 승리
지휘관:
⚔️ 공격측: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로마인) 🛡️ 방어측: 수레나
병력:
⚔️ 공격측: 약 4만 명 🛡️ 방어측: 약 1만 기병
휴전 / 공백기 (17년)
기원전 36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동맹으로서 옥타비아누스와 맞서 싸웠습니다.의 후퇴

📍유프라테스강 (지도 보기)

수십 년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으로, 제2차 삼두정치의 일원이자 클레오파트라의 동맹으로서 옥타비아누스와 맞서 싸웠습니다.카르헤 - 카르헤는 로마와 파르티아 세계가 만나는 중요한 교차로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53년 이곳에서 파르티아의 수레나가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물리친 유명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의 복수를 위해 대규모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염병, 혹독한 겨울, 파르티아의 게릴라 전술로 인해 처참하게 후퇴해야 했고, 전선은 교착 상태로 굳어졌습니다.

예술 및 유산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로마 조각가, 기원후 1세기 초

🏛️ 바티칸 박물관, 로마

팔을 들어 연설하는 자세의 대리석 황제상이다. 화려한 갑옷 한가운데에는 파르티아 사람이 로마 군기를 돌려주는 장면이 새겨져 있다. 그 군기는 수십 년 전 카르헤에서 잃은 것이었고, 아우구스투스는 전투가 아니라 협상으로 되찾았다. 그러나 조각상은 정복처럼 보이게 만든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로마의 조각가와 건축가들, 203년

🏛️ 로마 포룸, 로마, 이탈리아

높이 23미터의 대리석 개선문으로, 메소포타미아 공성전 장면이 판마다 새겨져 있다. 로마는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여러 번 점령했지만 그때마다 물러났다. 개선문에는 황제의 작은아들 이름도 있었는데, 형에게 죽임을 당한 뒤 글자가 깎여 나갔다. 파낸 자국이 지금도 보인다.

파르티아 기마 궁수

파르티아 기마 궁수

파르티아의 장인들, 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

🏛️ 대영박물관 및 이란의 소장처

말 위에서 몸을 뒤로 틀어 뒤쫓는 적을 향해 활을 쏘는 기병을 새기거나 찍어 낸 작은 조각들이다. 물러나는 파르티아군을 뒤쫓던 로마 병사들은 이 전법을 호되게 겪었고, 영어의 파르티안 샷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기원전 53년 카르헤에서 훨씬 큰 로마군을 무너뜨린 것도 이런 기병이었다.

관련 영상

파르티아 제국(부제 : 로마에 맞서 300년을 버틴 강국)

역사 퀴즈

1 / 3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를 침공한 주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